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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Mar 23. 2016

언 땅을 깨우는 발걸음

프롤로그 


봄이 왔다.

한 차례 꽃샘추위가 남았다고는 하지만, 파종을 앞두고 있는 농심이 분주한 것을 보면 완연 한 봄이다.


강원도 갑천 하대리 물골.

내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며, 어머니의 묘지도 그곳에 있다.

물골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가 알콩달콩 살아가며 세상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그리고 몇 년 전, 할아버지가 먼저 귀천하신 후에 할머니 혼자서 물골을 지키며 살아가고 계신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첫 번째 맞는 봄날이었다.

늘 함께 농사를 짓다가 홀로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 그 봄날은 할머니에게 얼마나 황망했을까?

그 봄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할 수 있는 농사를 계획해야 했다.

마음과 생각만 분주하고, 무엇을 심어야 할지 몰라 밭을 서성이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면서 겨우내 언 땅을 깨우시는 중이라 생각했다. 


밭에는 할아버지의 손길이 닿지 않은 틈을 타서 잔가지를 무성하게 친 배나무가 막 꽃몽우리를 내고 있었다. 밭에는 긴 겨울이 갔음을 알리고 올라온 대파의 힘찬 초록빛이 힘찼고 드문드문 솟아난 망초대는 살짝 대쳐 나물로 먹으면 좋을 만큼 부드러웠다. 


아직은 겨울이 다 끝나지 않은 듯, 산골의 봄은 늦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할머니의 옷차림은 두텁다.

그런데 보랏빛 외투는 농사일을 하며 입기에는 너무 고급스럽다. 이유는 무엇일까?


할머니는 일하러 나오신 것이 아니라, 
언 땅을 깨우러 나오신 것이기 때문이다.

/포롤로그 /


사진에 얽힌 추억들을 꺼내어 놓으려고 한다.

아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해석되고 번역되는 사진이 진짜라고들 하지만, 사실 그 해석이나 번역은 나의 추억과 많이 다른 측면들이 있다. 사진 창고에 사진들이 많이 쌓였다. 사진 창고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추억여행을 떠나는 일이 잦아진다. 그 이야기들을 하나 둘 풀어보고자 한다.



이 글에 사용된 이미지의 저작권자는 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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