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섬의 탄생
2024년에 진행한 잠시섬 연대기를 공유합니다. 이야기는 2013년 협동조합 청풍의 시작에서 출발해, 2024년까지 이어집니다. 이 기록은 2015년부터 꾸준히 잠시섬을 찾아온 강화유니버스의 친구, 새보미야와 함께 써 내려갔습니다.
2017년 1월과 2월, 청풍상회는 친구들을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한 명은 강화 출신이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시에서 지내며 귀향을 고민하고 있는 친구였고, 다른 한 명은 몇 차례 강화를 방문한 단골로, 마침 아르바이트에서 부당하게 잘린 상태였죠.
숙박비를 받지 않고, 아삭아삭순무민박·스트롱파이어와 동네 카페 ‘조커피랩’에서 사용 가능한 ‘어서오시겨’ 쿠폰을 만들어 지급했어요. 유일한 참가 조건은 일기를 쓰는 거였고요. 친구들은 일주일가량 아삭아삭순무민박에 머물면서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제대로 한 것이 하나도 없다. 내가 짜 온 계획은 분명 나들길 걸으며 쓰레기 줍, 미디어 프리 데이, 우연으로 결정된 길을 따라 걷기, 방콕하고 영화와 음악, 춤, 맥주 그리고 친구들과의 대화… 이런 것들이었는데 말이지. 아삭이 형제는 내게 뭘 애써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쉬고 놀면 된다고 말해준다. - 경미 3일, 자아성찰
청풍이와 아삭이가 오늘 산마을고등학교에 강연을 하러 가는데 따라가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마음이 혼란스러웠는데 마침 잘 됐다. 강연을 들으며 나의 20대 초반이 떠올랐다. 안정적이고 주류적인 삶을 좇다가 방황하며 터널같이 어둡고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던 시절이다.
오히려 힘들고 외로운 시간 속에서 삶, 사람, 행복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만들어졌다. 강연 중에 진솔하게 들려준 청풍상회 멤버들의 삶이 그 질문에 맞는 하나의 답지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 경미 4일, 계속 걷는 중
초대에 특별한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정말로 친구들이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는 경험을 하길 바랐죠. ‘프로젝트: 잘 먹고, 자고, 쉬기’, 잠시섬 프로젝트의 프로토타입이었습니다.
친구를 초대하거나 파티를 여는 건 전부터도 항상 해 왔지만, 잠시섬을 시작한 건 속도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어요. 일종의 테스트 베드였던 셈이죠. 쉬었다 가는 재충전의 순간이 모두의 삶에 필요하겠다는 확신을 얻었어요. - 유마담
잠시 섬에서 아무것도 해보지 않고 늘어져 볼 참가자를 모집합니다. 당장 마감이 급하지도 않은데 마음만 바쁜 청년,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청년, 바쁘게 살다가 잠깐 쉴 시간이 생긴 청년, 고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청년, 일상에서 도피하고 싶은 청년, ‘잠시 섬 프로젝트’는 이러한 청년을 만나고 싶습니다. - 2017년 4월 27일, 서울시 청년허브 페이스북
2017년 봄, 청풍상회는 서울시 청년허브의 지원을 받아 정식으로 ‘잠시 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참가자는 기간 중 최소 2박 이상을 머물고, 일기만 작성하면 되었죠. 로컬 상점에서 사용 가능한 쿠폰을 지급하고, 스트롱파이어에서 직접 점심밥을 해 먹이기도 했습니다.
통화 매니저는 쉬지 않고 누가 전화를 했는지 알려준다. 통화를 하는 중에도 전화가 온다. 하루에 오십 통이 넘는 전화가 오기도 하는데 그런 날은 퇴근 시간이 되면 입술이 얼얼하다. 그렇게 일을 하다 보면 명단에 있는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가 하나의 물건처럼 느껴진다. (중략) 앞날이 불안해질 때면 너무 무턱대고 일을 그만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 미소 1일, 잠자리가 낯설어서
무겁지만 그래도 타자기랑 다리미를 가지고 오길 잘한 것 같다. 평소에는 일 때문에 다림질을 했다면 지금은 순전히 나를 위해 다림질을 하는 것. 그 지겹던 게 꽤 할 만하다. - 다시곰 2일, 빛이 많이 들어오는
호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5월에는 1기 50명, 7월에는 2기 40명이 강화를 찾았어요. 안온한 멈춤의 경험을 한 청년들은 가을에 열린 ‘홈커밍데이’를 통해 다시 강화를 찾고, 각자의 지역에서 꾸준히 만남을 이어가기도 했죠.
잠시섬의 시작과 더불어, 청풍상회는 활발하게 활동을 전개해 나갔습니다. 강화 특산품인 완초와 소창 굿즈를 제작하거나, 강화의 감성을 필름 사진으로 담아내는 프로젝트 등, 적극적으로 지역을 담아내는 프로그램도 있었고요.
스트롱파이어를 중심으로는 쎈불파티, 포트럭 파티와 공연, 연말 크리스마스 파티 등 연중 다양한 행사가 열렸어요. 게스트들은 강화 여행의 허브처럼 스트롱파이어를 활용하고, 파티에 초대를 받아 강화에 재방문하는 식으로 관계를 쌓아갔죠. 연말에는 스트롱파이어의 활용을 높이기 위해 공간 리모델링도 이루어졌습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2017년 9월, 협동조합 청풍이 출범한 것이었습니다. 첫 여성 멤버 총총과 수리가 합류하며 조직의 인적 구성이 다양해지고, 규모도 늘었죠.
Editor 새보미야 (2015년부터 꾸준히 잠시섬을 찾는, 강화유니버스의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