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관 저 <우리가 모르는 일본인> 서평
일본이라고 하면 참 많은 것을 떠올리게 된다. 스시와 라멘, 만화와 게임, 유카타와 기모노, 신사와 성(城)의 나라. 사실 정치, 역사, 사회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우리나라와 오묘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행기를 타면 불과 2~3시간 안에 갈 수 있지만 왠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일본 아키히토 일왕도 자신이 백제인의 후손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즉 한국인과 일본인이 그리 먼 처지가 아니란 이야기다. 그럼에도 양국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전혀 다른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와 관련해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최관 교수가 쓴 ‘우리가 모르는 일본인’은 일본 문화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한국인이 쓴 책인만큼 우리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쉽게 일본의 문화를 설명한다. 일본인에 대해 우리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 그 중 일부를 여기서 알아보기로 한다.
“국화가 일본인의 미를 추구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친절하고 축소지향적인 면을 나타낸다면, 칼은 날카롭고 잔인하고 합리적이고 대담한 확대지향적인 면을 나타낸다...” (책 ‘우리가 모르는 일본인’, 최관 저)
일본에는 ‘타테마에(建前)’와 ‘혼네(本音)’라는 개념이 있다. ‘타테마에’란 쉽게 말해 ‘가면’과 같은 것이고, ‘혼네’란 그 가면 속에 가려진 ‘본심’을 뜻한다. 우리는 일본인과 만났을 때, 친해지기가 쉽지 않고 언제 만나든 그 관계가 얕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최 교수가 말하듯이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인은 철저히 혼네를 감추고 자기 속셈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느낀 탓이다. 아마도 일본인의 이중성 때문일 수 있다. 최 교수는 이와 같은 일본인의 양면성(이중성)의 근원을 일본의 형성 과정에서 찾는다. 일본은 촌락공동체라는 폐쇄적인 집단들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집단의 구성원 간에는 철저한 혼네가 존재하지만, 집단 밖에 있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정반대로 완벽한 타테마에를 구현한다. 따라서 혼네를 공유할 수 있는 집단 내에서는 결속력이 강하지만, 집단 내에서 혼네를 어기게 되면 따돌림을 당하게 되는 단점도 있다. 몇몇 일본 대기업이 외부적 변화에 둔감하여 몰락하게 된 것도 변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집단 속의 혼네를 거스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기 때문이었을 수 있다.
“고대 일본에서 성은 신성한 것이며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책 ‘우리가 모르는 일본인’, 최관 저)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본 성문화가 개방적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건국신화에는 일본 열도가 천상신의 성교를 통해 탄생한 것으로 나와있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고대부터 성을 신성한 것으로 간주해왔다. 이후 불교와 유교 등 여러 관습이 일본에 전해지면서 성에 대한 의식이 많이 변했지만, 이러한 관습도 무사 계급에서만 철저히 지켜졌고, 비(非)무사계급인 조닌(町人) 계급이나 농촌에서는 성문화의 자유로움이 유지되었다. 중세 일본을 지배했던 막부가 유곽과 사창가를 공인하여 일본 각지에 번성하였고, 경제력을 갖춘 조닌들이 이곳에 북적댔다. 최 교수는 “가문 존속을 위한 성과 유흥으로서의 성이라는 양면이 사회적으로 공인, 분리되어 있었던 시대였다.”라고 설명한다. 그러다가 20세기에 들어서 공창제도가 폐지되고 매춘금지법이 실시되면서 일본 전역의 유곽들이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근래에는 유곽 대신에 ‘풍속산업’이라 불리는 섹스 산업이 “이미 일본 경제의 한 부분을 담당할 만큼 성장”했다. 그러나 이러한 성 문화는 역사, 문화적인 영향으로 인해 남성 편의적인 요소가 대부분인 만큼, 여성들도 ‘성의 자유’를 끊임없이 요구하며 이러한 성 문화의 개선을 도모하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성에 대한 개방성’을 떠나 ‘성 모럴(moral)’에 대해 더욱 고민하는 시대가 도래하였다.
“…화(和)는 소중한 것이다. 함부로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을 근본으로 한다… 사람들이 상하가 조화를 이루어 화목하게 의론하여 합의를 하면 저절로 도리에 맞으며 어떤 일이든 못 이룰 것이 없다.” (책 ‘우리가 모르는 일본인’, 최관 저)
식도락가들은 잘 알고 있듯이 일본산 소고기는 ‘와규(和牛)’라고 부르고, 일본 음식을 통틀어 ‘와쇼쿠(和食)’라고 일컬는다. 일본 민족을 또 다른 말로 야마토 민족이라고도 하는데, 그 야마토의 한자도 ‘대화(大和)’이다. 일본 여행을 하면 여기저기서 ‘화(和)’자를 자주 본다.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화’란 가장 중시하는 마음가짐으로서 “자기주장을 하거나 대립된 상태보다는 인간관계에 마찰이 없고 집단 전체가 원만하고 화목한 평화로운 상태”를 의미한다. 이 ‘화’ 사상이 자리 잡게 된 데에는 일왕 섭정을 맡았던 쇼토쿠 태자의 역할이 컸다. 당시 쇼토쿠 태자는 604년 대륙에서 전래된 유교와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당시 조정 관료가 지켜야 할 소양으로 ‘17조 헌법’을 제정하였는데, 이 헌법의 중심 키워드가 바로 ‘화’였다. 위의 인용글이 바로 이 ‘17조 헌법’에서 제시하는 ‘화’의 뜻이다.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과의 조화를 우선시하는 조화의 정신이라는 좋은 의미를 갖고 있지만, 조화를 너무 강조하게 되면 그에 따른 부작용도 뒤따른다. 즉, “개인이 화(和)를 위해 희생하며 집단에 협조하는 것이 우선적 가치이며, 그 일이 옳은가 그른가 하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자칫 주객이 전도된다. 결국 가치의 올바른 실현은 ‘화’ 정신의 ‘중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