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가온 Jul 25. 2024

1. 모든 직장인이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는 '그것'

그래, 나는 버스를 탄 게 아니라 택시를 탄 거야.

2024. 07.


전 날 저녁부터 몇 번이나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그 말'을 꺼낼 때 느껴질 회의실의 공기, '그 이야기'를 들으실 팀장님이 입고 계신 옷, 그리고 짓고 계실 표정. 난 어떤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살짝 미소 짓는 게 좋을까, 아니면 약간 심각한 표정이 좋을까?


그리고 나 떨지 않고 잘할 수 있겠지?



    "...... 그래서 다음 달 말까지만 출근하기로 했습니다......"



하루 더 생각해 보고 다음 날 다시 알려달라는 팀장님의 말씀에 약간 안도감이 들었다. 생각보다 조리 있게 말을 잘한 것 같은 나 자신이 대견했고, (뭐 이유야 어떻겠냐만은) 바로 대표님께 보고하지 않으시고 날 붙잡는 반응을 보여주셔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저녁, 남편과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주제는 다음 날 어떻게 말을 하는 것이 '붙잡히지 않고 깔끔하게 회사와 이별하는 법일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 불필요한 사정 설명은 필요 없으며, 이 마음이 하루아침에 결정한 것은 아님을 보여드릴 것.


그리고 나는 그다음 날,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간직하여 품고 다니는 그것, '퇴사 카드'를 확고하게 꺼내 들었다.






퇴사를 말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 내 결심이 온전히 섰다고 해도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그 말'을 하는 것은 왜 어려운 것일까? 남은 직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같은 미안한 마음 때문일까? 아니면 퇴사 직전까지도 고민하고 있는, 온전하지 않은 내 마음의 문제일까?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랬다.



   '하물며 버스를 타도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은 상황에서 중도 하차를 기사님께 말씀드리는 것을 주저하게 되는데, 퇴사는 당연히 그렇지. 목적지에 다다르지 않았는데 중간에 내린다는 의사 표현이 쉬울 리 없지.'



내 이야기를 들은 남편은 날 위로하며 말해주었다.



   '그러면 버스가 아니라 택시를 탔다고 생각해 봐. 목적지는 있지만 내 사정에 따라, 도로 상황에 따라 언제든 내릴 수 있는 택시를 탔다고 생각하면 퇴사를 말하는 것이 수월해질 거야.'



그래. 나는 버스를 탄 게 아니라 택시를 탄 거야. 나의 판단에 따라 상황은 언제든 바뀔 수 있어.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이 한 결 편안해졌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눈물 젖은 빵? 웃기고 있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