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여러분, 오랜만입니다.
롤러코스터 같던 2020년이었다. 한 번의 이별과 두 번의 이직, 동료들의 잦은 퇴사와 깜깜한 앞날이 나를 들었다 놨다 했다. 액운을 행운으로 바꿔보겠다며 작년 8월부터 주말 없이 참 많은 일을 했다. 일주일에 한 개 꼴로 기획서를 찍어 내고, 짬을 내어 내 글을 쓰고, 취준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겠다며 목이 터져라 녹음을 했다. 운세 따위 돈 낭비라며 보지도 믿지도 않지만 연초에는 그간 뿌려 놓은 씨앗이 잘 싹트길 바라는 마음으로 신년 운세도 쳐봤다. 심심풀이로 본 운세는 그야말로 운수대통이었다. 직업운 연애운 재물운 모두 탄탄대로란다.
너무 많은 기대를 한 탓일까. 2021년 1월이 밝아도 상황은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광고대행사의 카피라이터로 제안서를 일주일에 하나씩 찍어내고 있고, 여전히 애인은 없고, 여전히 내 작품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로 자기 위로를 하며 출근을 하지만 보람이란 걸 느낀 지 오래되었다.
‘새해에는 괜찮아지겠지’라며 과도하게 긍정 회로를 돌려버린 탓에 조그만 불행에도 감정을 쉽게 다쳤고 결국 나는 무너졌다. 그동안 감정 컨트롤에 능숙해진 줄 알았는데 감정을 내비치면 내가 무너질까 봐 무의식 중에 감정을 셧다운하고 있었나 보다. 최근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은 감정의 기폭제가 되어 나를 망가뜨렸다. 한 달 가까이 울다 지쳐 잠에 들고 일을 해도 일을 하는 것 같은 기분이 아니었다.
MZ세대는 태어날 때부터 참으로 애써왔다. 밀레니얼과 젠지의 중간에 끼어 있는 입장에서 지난날을 돌아보면 우리는 학생 때부터 1분 1초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가 끝나면 마음껏 뛰놀기보다는 각자 피아노나 영어, 수학, 논술 학원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교복을 입은 이후에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야간 자율학습에 이어 심야 야간 자율학습까지 하며 12시까지 학교에 남아있었다. 대학만 가면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만 대학생활의 절반은 먹고살 길을 모색하기 위한 고민의 연속이었다. 먹고살 길을 찾은 이후에는 광고 업계 특성상 매일같이 야근에 시달리며 성과를 강요받는 일상을 살고 있다.
열심히 노력한 거, 그걸로 됐다고 말해주면 좋았을 텐데 현실은 음주 측정하는 경찰관처럼 더더더더더를 외친다. 성적이 낮으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실적이 없으면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얼마만큼의 진심으로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쓸모 업는 바로미터가 아닐까. 공부, 일, 사랑 모두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사회 풍토가 사람들을 채찍질한다. 그래서 우리 MZ세대는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즉각 반응이 오는 SNS에 집착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뭐든 적당히 해야 정신 건강에 이로운데 열심히 노력하는 게 기본자세가 된 MZ세대는 취미로 하는 SNS조차 열심히 하다가 결국엔 한순간도 맘 편히 쉬지 못하고 피로해진다.
인생을 즐기기 위해서는 매 순간 에너지의 80%만 사용하라고 하지만 결과주의와 열정 페이를 당연한 법칙으로 세뇌당한 MZ세대에게는 뚱딴지같은 소리다. 나만 봐도 그렇다. 1등을 해야만 혹은 늦게까지 남아 일을 해야만 인정받아온 습관이 굳어져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하고 타인의 인정에 허덕이는 신세가 되었다. 이 한 몸 불사지른다고 해결될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이 있는데 칭찬에 목말라 모든 일에 100%가 넘는 에너지를 끌어당겨 써왔다.
번아웃이 찾아오는 이유는 일이 너무 많거나 (몸이 지치거나) 혹은 노력에 비해 대가가 너무 없거나 (정신이 지치거나) 이 두 가지다. 혼자 처리해야 하는 업무량이 너무 많은데 돌아오는 건 동료들의 퇴사와 200만 원이 넘지 않는 월급뿐인 나는 두 가지 전부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사람들은 인정해주지 않았다. 얼마만큼 일에 진심이었는지는 상관없다. 박수를 받는 건 경쟁에서 1등을 한 업체나 공모전에 입상한 글뿐이다. 노력에 비해 부족한 인정 욕구를 채우기 위해 주말에도 낮이야 밤이야 글만 쓰거나 마음에도 없는 소개팅을 나가보았지만 결국 내가 나를 지치게 하는 일이었다.
더 이상 끌어당겨 쓸 에너지도 없다고 느꼈지만 일을 그만 둘 수가 없다. 이십 대 후반이란 그런 나이다. 코로나로 인해 취업난도 계속되는 중이기에 내 상황을 아는 주변 이들도 선뜻 그만두라는 조언을 해주지 못했다. 대신 출근하면 최소한의 근육과 감정만 발동시켜 내가 맡은 일을 완성시키는 데에만 집중했다. 주말에는 글도 만남도 다 뒤로 미룬 채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잤다.
조금이라도 더 자극을 주면 정신줄이 뚝하고 끊어져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옛 동료에게서 결려온 전화 한 통 덕분에 내 정신줄은 아주 약간 튼튼해졌다.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잃지 말라는 말에, 잘 쉬고 나를 먼저 다독이라는 위로에 ‘나도 사랑받고 싶고 대접받고 싶어요’라고 말하며 펑펑 울었다. 한참을 울고 나니 배가 고파서 씻고 밥을 먹었다. 내 글을 쓸 정도의 힘은 나지 않았지만 무언가 쓰고 싶어서 좋은 글을 골라 필사를 했다. 남이 쓴 글을 한 글자 한 글자 따라 쓰다 보니 마음 한 구석에서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움직임이 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번아웃 극복의 마지막 과정은 ‘만남’이라고 한다.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데이비드 O. 러셀, 2012) 속 두 주인공 ‘티파니’와 ‘팻’은 시한폭탄 같은 감정을 안고 서로를 만난다. 조금이라도 상처를 내비치는 순간 터져버릴 것만 같기에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워 서로를 대하지만 결국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건 타인과의 교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의 모난 구석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타인의 모난 구석을 보듬어주는 노력으로 티파니와 팻은 서로에게 구름 속 한 줄기 빛 (실버라이닝)이 되어준다.
성장 영화 <벌새> (김보라, 2020)에서도 슬픔에 갇힌 주인공을 구해주는 조력자가 등장하는데, 친구와 가족들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홀로 외딴섬에 떨어진 듯한 기분으로 세상을 살던 중학생 ‘은희’에게 찾아온 ‘영지’ 선생님이 그 구원자다. 어른이 아닌, 같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고민을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영지 선생님에게 은희는 큰 위안을 얻는다.
극 중에서 영지 선생님이 은희에게 남긴 편지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맞는 걸까.
어느 날 알다가도 정말 모르겠어.
다만 나쁜 일들이 닥치면서도
기쁜 일들이 함께 한다는 것.
우리는 늘 누군가를 만나 무엇을 나눈다는 것.
세상은 참 신기하고 아름답다.
우리에게도 그런 만남이 있다. 내 글에는 따뜻함이 있으니 절대로 글쓰기를 멈추지 말라는 응원, 감정에 복받쳐 있을 때 아무 말없이 어깨를 다독여주는 위로, 집에 돌아오면 안아주는 따뜻함, 내가 무기력함에 빠져 있어도 다그치지 않는 이해… 이 모든 게 만남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 효과다. 그리고 그런 만남 덕분에 지쳐있던 마음에 불씨가 일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치열하게 노력 중인 누군가에게 그들의 정신줄을 튼튼하게 만들어주는 한줄기 빛 같은 존재였음 한다.
2021년 3월
봄의 시작에서
가람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