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커피가 맛있어야 좋은 카페가 아니다

<바그다드 카페> (퍼시 애들론, 1987)

by 가람

To. 커피 말고 공간에 목마른 이들에게


카페의 역할

슈필라움: 돈 만원으로 얻는 자기만의 공간


우리 아빠는 바깥에서 작업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식구들이 그러는 것도요. 여느 집들과는 달리 거실 벽면이 책장으로 꽉 차있고 한가운데에는 외교 회의에나 쓰일 법한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있어 밖으로 나갈 필요를 못 느끼는 걸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지금 이 글도 집 근처 카페에서 쓰고 있습니다. 공부할 거리나 생기거나 소재가 떠오르면 방에서 어느 정도 다듬은 뒤 최소한의 물건만 들고 나와 카페로 향합니다.


우리 집 거실. 그 흔한 텔레비전도 소파도 없어 처음 오는 분들은 놀라곤 한다.


하지만 이런 저도 일본 유학생 시절 자취생 시절에는 공부든 독서든 논문 쓰기든 모두 방 안에서 해결했습니다. 일본 특유의 민폐 끼치기 싫어하는 정서 때문에 카페에서 장시간 앉아 있는 게 눈치가 보이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취방 = 자유로운 내 공간’이었기 때문에 굳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며 또 다른 공간을 찾아 헤맬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죠.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물론 제 방이 있긴 하지만 방 문을 닫아도 들리는 생활 소음과 식구들의 존재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진 않습니다. 노래를 크게 틀고 향초를 켜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무언가에 몰두하기가 어렵습니다. 한편 도보 10분 거리에는 커다란 카페 체인점이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료는 6100원. 만 원도 안 되는 돈을 내면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격리된 작업 공간과 선선한 에어컨이 나오는 쾌적한 환경이 제공됩니다.






문화심리학자 김정운 교수는 저서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21세기북스, 2019)에서 자유로운 공간을 찾아 헤매는 심리를 ‘슈필라움 (Spielraum)’으로 설명합니다.


슈필라움 (Spielraum): 독일의 심리학 용어. ‘놀다 (Spiel)’과 ‘공간 (Raum)’의 합성어로 물리적 놀이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을 뜻한다.

인간이 자기다움을 찾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 공간 안에서 타인의 방해 없이 자기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어야 하고 잠시나마 사회적 가면을 내려놓고 재충전하며 사회성을 회복하는 슈필라움이 필요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20, 30대 젊은 친구들이 집 놔두고 블루보틀 같은 카페에서 몇 시간이고 줄 서 가며 그곳에 앉아 보려는 것”도 다 슈필라움을 찾아 헤매는 행위라고 설명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자취하던 시절 저에게 집은 슈필라움 그 자체였습니다. 온도, 공기, 향기 모두 제 통제하에 있었고, 씻고 나와 가운만 걸치고 크게 노래 부른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습니다. 가족들은 저에게 자유롭게 행동하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무래도 극복하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술 마시면서 노래 트는 것도 싫어하고 공부에 빠져 끼니를 거르는 제 열정을 이해 못 해주시기에 저는 잠시나마 자유로울 수 있는 곳으로 피신합니다.






커피 하우스: 카페는 원래 토론의 장이었다


태초의 카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근대 카페의 시초는 17세기 영국 런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650년 런던에서 ‘커피 하우스 (coffee house)’란 이름으로 처음 등장했다고 합니다. 신분 제도가 존재하던 시절, 커피 하우스는 남성이라면 누구나 들어가 커피와 홍차를 즐기고 무료로 신문을 읽고 정치, 문학, 과학, 상업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훗날에는 여성들도 출입할 수 있는 커피 하우스가 등장했다고 합니다.) 계층 차이를 극복하고 다양한 분야에 관해 토론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자연스레 근대 영국의 저널리즘을 비롯한 정치, 경제, 문학 분야에서 근대 문화의 꽃을 피울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었죠.


17세기 영국의 커피 하우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17세기 카페가 여론 형성의 장소였다면 오늘날의 카페는 많은 이들의 도피처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가정, 학교, 회사 등에서 도망쳐 몇 시간 동안 본인의 사회적 역할(누군가에게 신경 써야 할 의무, 눈 앞에 앉아 감시하는 상사의 눈칫밥을 먹어야 하는 상황 등)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충전을 하고 가는 개인적인 공간으로 변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대화하는 것이 카페의 목적이다’ 아니다, ‘카페는 혼자 와서 조용히 할 일을 하다 가는 곳이다’ 식의 논쟁이 2000년도 중반부터 꾸준히 일어나고 있습니다. 두 의견 모두 맞기 때문에 한쪽 편을 드는 것은 힘들지만 저 멀리 있는 테이블까지 들릴 정도로 시끄럽게 떠들지 않기, 혼자서 많은 공간을 차지하지 않기, 장시간 머물 시에는 음료 더 시키기 등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가짐을 갖고 커피하우스로서 혹은 슈필라움으로서 카페의 역할을 모두 수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브렌다와 야스민이 만든 사막 위 오아시스

<바그다드 카페> (퍼시 애들론, 1987)


카페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많습니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 (샤오 야 췐, 2010),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치앙슈치웅, 2014), <더 테이블> (김종관, 2016), <커피와 담배> (짐 자무쉬, 2003) 등. 그중에서 <바그다드 카페>를 들고 온 이유는 바로 커피 맛이 아닌 ‘공간의 의미’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래 날리는 사막 위, 아무 의미 없던 공간이 전혀 다른 두 여인의 만남을 통해 생기를 찾는 과정을 그린 이 영화는 잠시 쉬어가며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카페를 그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사막 위 오아시스 같은 존재로 말이죠.


바그다드 카페의 전경을 보여주는 와이드 숏. 모든 이야기가 이 무대 위에서 일어난다. 이하 이미지 출처 : <바그다드 카페> (퍼시 애들론, 1987)


미국 캘리포니아 주 모하비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바그다드 카페. 카페 겸 주유소 겸 모텔 역할을 하지만 찾아오는 손님이라고는 화물 트럭 운전수들뿐입니다. 카페지만 커피 머신이 고장 나 손님들에게 커피를 대접할 수도 없습니다. 이 곳의 주인 ‘브렌다’는 능력 없는 남편을 내쫓고 사춘기 아이 둘과 아기 하나를 키우며 홀로 카페를 운영합니다.


사막 위를 달리는 자동차에는 독일인 신혼부부가 타고 있습니다. 남편과 싸운 ‘야스민’은 트렁크를 챙겨 차에서 내리고 사막 위를 걸어 바그다드 카페에 도착합니다.


뭐 하나 닮은 점 없는 사람들이 처음 만나 똑같은 행동을 한다


달라도 너무 달라 아이러니한 두 여인의 첫 만남. 하지만 두 사람이 바그다드 카페에 있다는 사실과 야스민은 신혼여행 중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사실, 브렌다는 남편을 내쫓았다는 사실에 가슴 아파하고 있는 점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가까워지며 바그다드 카페에도 변화의 바람이 붑니다.






낯선 것이 불어넣는 활기

관계와 공간의 재생


야스민에게 바그다드 카페는 남편과 가려고 했던 신혼 여행지가 아닌 낯선 곳입니다. 브렌다에게 야스민은 차도 없이 사막 위를 걸어 카페까지 온 수상한 관광객일 뿐입니다. 하지만 가끔은 이 낯설고 어색한 것들이 일상에 활기를 불어넣어 줍니다. 먼지만 날리던 바그다드 카페 역시 야스민의 방문으로 점차 변화해 야스민 자신에게는 잠깐 쉬어가며 상처를 치유하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장소로서, 바그다드 카페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는 웃고 떠드는 커뮤니티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친 마음을 열고 낯선 것을 받아들이기 위해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특히 브렌다는 자기 사무실을 청소하고 아이들을 봐주는 등 호의를 베푸는 야스민에게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습니다. 사소한 오해들까지 생겨 내쫓고 싶지만 손님이니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죠. 브렌다와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야스민은 과묵하지만 눈치가 빠르고 착해 바그다드 카페에서 손님 이상의 역할을 해냅니다. 그리고 브렌다에게 자기와 비슷한 상처가 있다는 것을 느끼고 공감하며 까칠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가오는 야스민의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된 브렌다는 야스민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두 여인을 친구가 됩니다.


브렌다와 야스민의 사이가 가까워진 것을 보여주는 장면. 마술을 보여 주겠다며 야스민은 장미를 꺼내 브렌다에게 건네고 브렌다는 그걸 받아들인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친구가 되어갈 무렵, 바그다드 카페에도 좋은 변화가 생깁니다. 삭막하기 그지없던 바그다드 카페에 야스민은 손님들에게 마술 쇼를 보여주기로 합니다. 뭐 특별한 마케팅을 한 게 아닌데도 바그다드 카페는 기존 고객층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 활기를 띠게 되죠.








바그다드 카페의 성공 요인

이 집 마술 맛집이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이 카페의 커피 맛은 그대로라는 겁니다. 커피 머신이 고장 나 대접조차 할 수 없었던 영화 초반에 비하면 커피를 팔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맛은 그냥 원두 태운 물 맛입니다.


그냥 주류 판매 허가증을 얻어서 맥주를 파는 게 어떨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그다드 카페가 성공한 것을 보면 어쩌면 사람들은 커피 말고 다른 것을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손님들을 끌어 모으는 열쇠는 브렌다가 애타게 찾던 새 커피 머신이 아니라 공간에 있었습니다. 바그다드 카페에 마법같이 등장한 야스민이 선사하는 마술 쇼는 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에게 저마다의 공간의 의미를 찾게 해 줍니다. 트럭 운전수들에게는 잠시 쉬어 가며 목을 축이는 곳, 브렌다 가족에게는 집이자 생활의 터전, 주민들에게는 담소를 나누는 곳, 그리고 야스민에게는 자신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고 마음을 달래는 쉼터로 조용하던 카페가 왁자지껄해집니다.







카페의 역할 변천사를 한 군데 모아놓은 것 같은 바그다드 카페는 왁자지껄 하지만 정돈되었고, 그 안에서 개성 강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 자기 할 일을 합니다. 커피 말고 편안한 공간에 목마른 이들이 목을 축이는 오아시스로 변신할 수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그러나 낯선 게 익숙해질 무렵에는 이별이 찾아오는 법. 미국 관광 비자 기간은 얼마나 될까요? 잘은 모르겠지만 헤어짐이 아쉽게 느껴질 정도, 막 정들었는데 보내야 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관광 비자를 가지고 카페에서 일한다는 소식을 접한 보안관은 야스민에게 독일로 귀국할 것을 권고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바그다드 카페에 생기를 불어넣고 사람들과 부대끼며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보듬은 야스민은 카페를 떠납니다. 야스민의 존재가 카페 활력의 원동력이었던 것만큼 그녀가 떠나고 난 빈자리는 많이 커 보입니다. 과연 야스민은 바그다드 카페로 다시 돌아와 브렌다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바그다드 카페는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이번 편지에서는 두서없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한 것 같네요. 내가 나 다울 수 있고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러분만의 공간은 어디인가요? 있다면 그곳에서 편안하게 재충전을 하길 바라고, 없다면 마음을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From. 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