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댓값으로만 보면 누구에게나 주어진 동일한 양이다. 그러나 꼭 같을 수 없다. 벌어먹고 사는 방법, 주로 가지고 있는 관심 영역, 자기 관리와 개발 정도, 클럽 활동, 건강 상태, 개인적인 성향 등에 따라 잘게 쪼개지기 때문에. 그 속에 삶의 악센트가 있다. 각자의 분기점이 존재한다. 진한 향기도 나는 때가 있고, 흐지부지 사라지는 순간들이 켜켜이 존재한다. 그래서 꼭 같은 24시간일 수는 없다. 1440분의 쓰임이 같을 수는 없다. 86400번의 매 초가 같은 무게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나에게도 그렇다.
#나의 몸이 한방에 풀리는 스트레칭 (투자) 시간 / 오전 4시 15분부터 4시 20분 사이
... 잠이 깨려는 순간, 바로 일어나지 않는 게 포인트다. 팔을 들어 기지개를 켠다. 그 자세로 두 다리를 쭈욱 뻗어 준다. 바로 엎드린 후 코브라 자세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한다. 배꼽을 최대한 침대에 붙이는 게 중요하다. 정수리가 허리가 가 닿을 듯 머리를 젖히는 것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미는 게 중요하다. 최소 다섯 번을 한다. 그러면 온몸에 혈관이, 신경망이 가둬져 있는 게 느껴진다. 그렇게 몇 초간, 몇 회를 반복한다. 심장이 머리로 달려가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나의 몰입도가 가장 높은 생산적인 (투자) 시간 / 오전 4시 28분부터 6시 5분까지
... 이 시간은 쓰는 시간이다. 여기에는 떠오르는 키워드, 표현 등을 미리 기록해 두는 '틈나는' 시간은 제외이다. 이런 '틈나는' 시간이 누적이 되면 이 새벽 시간에 훨씬 더 몰입도가 높아진다. 아, 하고 떠오를 때 움직이고 있으면 멈춘다. 자동차 안에 있을 때도 잠깐 갓길에 세우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중에 읽을 때에도 그때의 아, 가 고스란히 꼭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주의할 점은 이 시간에는 (되도록이면) 업무를 처리하지는 않는다.
#업무를 처리하기에 가장 좋은 (소비) 시간 /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10분 사이
... 나는 십여 년 전부터 업무처리 방식을 바꾸어 왔다. 업무가 생길 때마다, 진행하던 업무를 이어가면서 새로운 업무를 동시에 그때그때 처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업무는 언제나 끝도 없이 밀려온다. 게다가 늘 하나, 둘씩 여유 있게 생기는 게 아니다. 없다가 한꺼번에 세 개, 네 개가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업무는 마감시한이 있다. 원고 마감처럼 언제까지 어떤 형태로 누구에게 보내야 한다는. 그걸 리스트화한다. 구글시트에 마감 시한별로. 동기화되어 있는 구글시트는 폰에서 언제나 확인이 가능하다. 그다음은 업무 하나의 '양'을 표시해 둔다. 그리고 마감 전날 오후 2시 30분부터 4시 10분 사이에 몰아서 처리한다. '양'이 많은 업무면 일주일 정도부터 이 시간에 그렇게 반복한다.
#지치고 피곤한 (소비) 시간 / 오후 5시 45분에서 6시 20분 사이
... 특별한 일이 없으면 퇴근 중이거나 지하주차장에 도착했을 시간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무엇을 먹을까를 결정하는 시간이다. 위험한 시간이다. 이때가 내일의 1440분, 86400초의 질을 좌우한다. 달려드는 허기에 붕어빵 2개, 비빔밥 크게 한 그릇, 쿠키 1개, 이러면 온몸이 나른해진다. 요일에 관계없이 나갈까 말까, 할까 말까, 잘까 말까의 싸움을 매번 해야 한다. 그래서 나이쓰 한 연속 동작을 반복하는 게 중요하다. 죽을 때까지 고민거리 중 하나다. 저녁은 항상 '헤비 하지 않게 해피하게'. 새하얗게 거대한 (탄수) 화물만 잘 피해도 훨씬 낫다. 어깨 위에 화물을 올려놓고, 양손으로 화물을 들고 있는 것 같은 온몸의 묵직함은 적어도 피할 수 있다.
#이메일을 처리하기에 좋은 (소비) 시간 / 오전 9시 50분부터 10시 50분 사이
... 나에게 전달되는 (거의) 모든 것들은 메일 계정을 활용한다. 인스턴트 메시지를 포함해서. 학생들이 제출하는 과제, 질문, 동료가 보내는 업무를 포함해서 (거의) 모든 것들을. 그리고 이 시간에 확인한다. 그런 후 (바로) 답변, 유보, 삭제로 나뉜다. 그리고 그 다음날 같은 시간에 유보된 메일에 대한 답변을 작성한다. 위에서 살펴본 업무를 처리하게 좋은 시간에. 이 시간에는 분류만 한다. 그러면 50분, 1시간이면 충분하다. 아 참, 요즘에는 메일을 보내고 받는 과정을 잘 모르는 10대들이 (의외로) 많다. 아니, 메일 계정을 아예 가지고 있지 않은 학생들도. 매 학기 3월 첫째 주, 교과 OT시간에 나와 메일을 보내고 받는 방법을 꼭 이야기 나누는 이유다.
#취침에 가장 좋은 (투자) 시간 / 저녁 8시 40분에서 9시 30분 사이
... 나는 우리 집에서 쉰생아다. 아내가 그렇게 (몇 번) 불렀다. 지금은 당연히 이 시간에 졸린다. 물론 이 시간이 되기 전에 몇 가지 준비(?)를 해야 한다.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산책)은 건너뛰더라도 (탄수) 화물은 최대한 적게 먹기다. 월화수목은 무조건. 금요일, 토요일은 치팅데이이지만, 최대한 자제한다. 안 그러면 가슴을 쥐어짜는듯한 역류성 식도염이 도진다. 그리고 침대에는 8시 40분 전에는 올라가지 않으려 한다. 월화수목은 적어도. 하지만 말똥말똥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8시 20분 정도 되면 멜라토닌을 한 알 녹여 먹는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 정도는.
#가장 생산적인 (투자) 장소 / 우리 집 13층 서재, 학교 본관 5층 창가, 동네 투썸 가운데 문옆 자리
... 이 장소들은 읽고 쓰는데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장소이다. 이곳에서는 그 시간에 읽고, 관찰하면서 떠오르는 장면, 그 장면과 연결되는 키워드, 장면에서 이야기하고 싶은 핵심 문장. 이런 것들을 기록한다. 여시 '틈나는' 시간, 틈틈이. 단, 휴대폰을 항상 옆에 가지고 다니지만, 메일을 포함한 모든 알림은 꺼둔다. 기록하려는 순간, 들어오는 알림을 따라 들어가 다른 곳에서 헤매는 (낭비되는) 시간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이러면 기록도 답변도 모두 마음을 담을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 폰은 아무것도 나에게 말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 좀 많이 편하다.
#나의 최고의 알람 / 반려견 타닥이
... 가장 몰입도가 높은, 생산적인 시간이 될 무렵. 어김없이 내 근처에 나타난다. 짓는 대신 내 얼굴 주변에서 킁킁거린다. 내가 움직임이 없으면 아예 배위로 뛰어오르는 경우도 가끔 있다. 내게 최고의 알람은 하얀 심장, 타닥이다. 타닥이의 본명(?)은 코코다. 8살 몰티즈. 그런데 그 새벽에 건넌방에서 거실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오는 타다닥, 타다닥 소리가 먼저 나를 깨운다. 발톱을 깎아줘도 참 빨리 자란다. 그 덕인 것 같다. 어느 글에서도 썼는데, 그래서 나는 우리 코코를 타닥이라고 부른다. 신기한 건 다른 식구들이 코코라고 부를 때나 내가 타닥아라고 부를 때나 다 돌아보고 달려온다. 코코도 이름이 두 개인 걸 좋아하는 것 같다.
롭 무어의 표현을 빌리면 1440분 하루는 낭비된 시간, 소비된 시간, 투자된 시간의 총합이다. 결국은 자기만의 라이프스타일대로 시간을 쪼개어 강약으로 잘 활용하면 되는 거란 이야기겠다. 하지만 먹기 위해 이동하고, 구입하고, 그래서 먹고, 몸과 마음의 충전을 위해 자야만 하는 절대적인 시간을 제외하더라도 어떤 라이프 스타일이건 낭비된 시간을 줄이고 투자된 시간을 늘려야 하는 것이다. 투자된 시간은 그 사람의 라이프 스타일에서 더 '의미있는' 시간인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는 부동산을 사드리고, 주식을 사서 관리하는데 많은 의미를 두는 것처럼, 지금 나에게 투자 시간중 가장 많은 지분이 읽고 쓰는 데 있는 것일 뿐이다. 10개월간 매일 쓰기를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내가 거기에 가장 투자를 많이 하고 싶다는 의미를 두었을 뿐. 그러다 보니 450개의 글이 쌓이게 된 것일뿐일꺼다. 하지만 이게 어느 날, 어떤 이유로 멈출지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힘든 건 억지로 오래 할 수는 없는 거니까. 내가 매일 살아 있는 건 숨쉬는 게 힘들지 않기 때문이니까. 인생이 그렇다. 다 이유가 생기고, 상황이 생기니까. 그래서, 가능했던 그 때, 그 기간 동안, 그 나이였을때. 항상 마음을 담아 의미를 두어 시간을 활용하는 강약 조절, 속도 조절이 원활하게 이루어졌다. 나도 그랬었다. 그런 행복한 기억이 되살아나는 그 시간만큼 더 내 인생을 의미있게 만들어 주는 게 아닐까. 그 기억 자체가 성공적인 인생을 의미하는 것일테니까.
성공은 일상에 숨겨져 있다. 450개의 글을 자축하고, 500개의 글을 (나에게)기대하며 오늘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