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10대

by 정원에

지필고사 문항을 만들 다 갑자기 브런치로 달려왔다. 클릭 몇 번이면, 생각을 바꾸고, 방향을 전환할 수 있지만, 그 몇 번이 쉽지 않다, 는 건 아마 우리 모두의 화두이지 싶다. 어느 분야에서 무슨 고민을 하시건. 지금은 일단, 스스로를 토닥거리면서 갑자기 문항 만들다 떠오른 생각을 얼른 정리해야지, 하는 살짝 기분 좋게 흥분된 마음으로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다. 그런 고민을 하기를 23년이다. 계산기를 두드러 봤다. 하루 8시간 중 5시간만 가르쳤다고 하더라도, 일 년에 190일 - 우리 학교 다닐 때는 220일 정도였는데, 지금은 대략 190일 정도를 학교에 나가야 법정 수업 일수를 채워서 진급하고 졸업할 수 있다 - 을 가르쳤다고 하면 무려 22만 4천 250시간. 이 정도면 유명한 맛집으로 돈 냄새 좀 맛고 살 수 있겠다 싶다. 무슨 방송에 '생활의 달인' 정도로 몇 번은 출연했어야 할 경험치이다. 아니, 1만 시간의 법칙을 스무 배는 거뜬히 넘었으니 '대한민국 명장'에 도전은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현실 선생은 그렇지 못하다. 아직도 학교가, 내 일이 설익은 느낌이다. 뭐든 자신 있게 내 세울 게 그리 많지 않다. 항상 작은 거에 더 신경을 써야 하고, 스스로 위축되기 쉽다. 겉으로는 사자 같아 보일지라도 그 속에는 놀란 토끼 몇 마리쯤 늘 데리고 다니는 기분이랄까. 그게 교직의 마력이자 아킬레스다. 어렵지만 쉬운 몇 가지 이유가 번뜩 떠오른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 '선생님, 소주 한잔 사드릴까요?'라며 늘 안부 문자를 보내는, 아직 삼십대라고 몇 년을 우기던 올해 마흔의 그 '아이' - 두 남매의 엄마지만 나는 그렇게 부르는 게 좋다. 물론 사적으로는 - 가 고2일 때도, 올해 졸업을 시킨 아이도 모두 열여덟이기 때문이다. 내가 상대하는,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 어리디 어린 10대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여러 번 해봤지만, 그들은 10대를 처음 겪는. 우리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는 잘 모르지만 그때는 반도체보다 더 민감하다. 쎈찌해지다가 갑자기 킬로미터까지 뻗을 것처럼 버둥거리다가 밀리미터로 끝나는. 하지만, 무척 둔하지만 또 엄청 예민한 이중성을 지닌 그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두 남매처럼.


그런데 정말 중요한 포인트는 그들이 또 1년을 주기로, 늘 대상이 바뀐다는 데 있다. 1년마다 리셋 버튼을 꾹 눌러야 하는 거다. 빨리 잊고 싶어 11월이 지나기 전에 눌러버리고 싶을 때고 있지만, 어찌 되었던 2월까지 늘어지게 매달려 있다가, 하루 이틀 사이에 짜잔 하고 새로운 그들을 만나야 한다. 그렇게 23번을 했어도, 작년에 처음 한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살아내야 한다. 영혼까지는 아니더라도 조금만 신경을 쓰지 못하면 작년 버전에 올해 아이들을 강제로 삽입시켜 버리는 복붙 교실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 이제는 학교를 떠나신 지 꽤 되어서 잘 모르실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학교는 좋을 때는 시험을 본다. 몸이 자연에 반응하기 좋은 시기를 말한다. 시간의 흐름을 몸소 체험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또래와 어른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기. 그때만 되면 학교는 시험을 본다. 꽃피고 눈부시면 시험을 본다. 후끈한 땀이 등을 쓰러내리면 시험을 본다. 아침저녁으로 보드라운 바람에 짧은 여행이라고 가고 싶을 때 시험을 본다. 코끝, 손끝이 아려 올 때도 시험을 본다.


오늘 아침에도 나는 꽃필 무렵쯤, 막 열대야가 시작될 때쯤 보게 될 그 시험, 그 시험지속에 들어가 앉아 있을 문항을 만들다 이 글을 쓰고 있다. 우리의 기억 속 학교는 사실 시험보다는 친구, 선생님, 또 그 누군가와의 인연, 우연, 악연, 열연의 장면들이 더 가득하다. 물론 개인차는 있을 테지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배울 때는 몰랐던, 가르치면서 절절히 느끼는 아쉬운 진리 하나는 학교는 시험을 보기 위해 존재하는 거대한 약속 집단이다. 사회가 묵인하는 약속. 그 약속을 내가 아쉽다고 이야기하는 자체가 밥벌이 태도가 되어 있지 않은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늘 아쉽다. 물론 시험을 본다는 게 문제 될 건 하나도 없지만, 속초쯤에서 울산바위를 바라보는 정도로 생각하면 큰일 날일은 아니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조금씩은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0대, 그들의 삶을 위한 고민을. 갑자기, 시험문제 이야기하다 대한민국 교육을 논하는 게 아니다. 그저, 우리 일상 속에서 10대들이 몸도 마음도 더 건강할 수 있게, 우리처럼 어쩌다 어른이 되지 않게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줄 수 있게,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알아가 볼 수 있게 하는 시간과 공간을 학교가 조금 더 만들어 주면 안 될까.


전쟁이 나고, 대통령이 바뀌고, 지진에 흔들려도 학교는 언제나 열려 있다. 누구도 학교를 어떻게 바꿔야겠다는 계획이 2022년에도 없다는 게 어른의 한 사람으로, 교사의 한 명으로 참 안타깝다. 1980년대에도 계획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금에 와서도 흥분하게 되는데 말이다. 때만 되면 연일, 잡아 가둔 물고기쯤 된다는 건지 40대-60대 이상 퉁 쳐 두는 모양새고 그저 표가 되는 2030의 환심에 열을 올리는 사이, 그 틈에서 10대들은 여전히 버려져 있다. 20대도 불과 몇 년 전 그렇게 버려져 있었지만. 이렇게 표현하는 게 부족하지 않다. 10대들의 삶을 바꿔서, 준비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기적인 플랜을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격을, 삶의 질을, 시민의 미래를 좌우할 중요한 것임에도. 우리도 그렇게 했기 때문에 참아내야 한다?


그저 어리다는 이유인가. 너희가 학교에, 사회에 맞춰야 한다는 태생적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인가. 그 속에서는 공정, 정의, 민주주의, 삶의 가치, 공동체 의식, 세계 시민의 자질을 가지기 전에,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것도 어려워할 그런 위태로운 어른들만 나타날지도 모른다. 내가 열심히 안 했기 때문에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사는 건 당연하다고 스스로 받아들이고, 위축되어 삶을 살아가는, 패배적인 무서운 능력 우선주의에 절여져 있는 어른들. 그렇게 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공격성을 띠게 된다. 어떤 형태로든. 그리고 그 공격성은 다시 그들의 10대들에게 오미크론보다 더 빠른 속도로 감염될 테고. 10대 때 어떻게 어른들한테 존중받았는지, 배려받았는지, 안내를 받았는지를 평생 기억하며 살게 된다. 우리처럼. 그 기억 속에서 누군가를 다시 꼭 만나보고 싶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게 된다.


나는 지금 우리나라의 기온과 관련한 문항을 고민 중이다. 물론 내 주변에는 품질 좋은 기성품(?)이 넘쳐 난다. 하지만 나는 매년, 매번 핸드 메이드 방식으로 문항을 만든다. 문항을 만들기 전에 매년 가르칠 교재를 직접 만드는 이유도 같다. 2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원고를 치고, 지도를 직접 그리고, 기존의 기성품을 잘 품평해서 내 것으로 업데이트하고, 나를 만나는 아이들과 나눴던 이야기 속에서 그 얄팍한 정답을 찾아내도록 도와주기 위한 여러 장치를 만드는, 나만의 성스러운 의식. 기온 단원은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기 때문에 어른들이 가장 내기 좋아라 하는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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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그리다 문득 서귀포를 확대해 봤다. 모든 게 하나하나의 작은 픽셀이다. 문항은 내가 묻고 싶은 것을 정해 놓고 만들게 된다. 완전 답정너. 심지어는 시험지위에서는 논술형도 답정너. 하지만 인생은 픽셀도 시험지도, 재시험도 없다. 이걸 10대들 때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나만의 이 의식이 제대로 진행이 되면 그 이야기를 살짝살짝 건네 줄 여유가 생긴다. 등수를 가르고, 등급을 매기기 위해 애쓰는 사이, 10대들은 더더욱 고난도의 문항을 척척 풀어내는 사이, 그들의 삶의 능력은 엉망이 되어 가라앉고 있다. 나사 하나를 풀지 못하고, 움직이지 않고, 설거지를 하지 못하고, 앞에 놓인 건강한 음식을 챙겨 먹지 못한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가장 어른이다. 어쩌다 어른이 되었더라도, 자기 꺼만 열심히 하다 교사가 되었더라도, 10대들 앞에서는 어른이다. 어른은 안정적이어야 한다. 심리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래야 그때그때 터지는 크고 작은 사건 사고 처리는 말할 것도 없고, 10대들보다는 조금 덜 흥분한 상태로 그들을 돌볼 수 있다. 그래서 이걸 절실하게 깨달은 10여 년 전부터, 스스로 교과서를 만들기 시작했다. 나라가 정한 성취기준에 내 뉘앙스를 듬뿍 콜라보해서. 그 이전에는 기존 교과서에 아이들을 맞추면서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거에, 그들보고 강제로 맞추라고 억압했던 폭력적인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게 더 자연스러웠다. 내가 그렇게 배우고, 생각하고, 행동했었으니까.


이제 그 의식은 23년 나의 경험치에서 가장 소중한 자산 중 하나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안정적이어야 10대들을 도와줄 수 있다, 는 신념을 가지게 된 것이. 마스크를 잘 썼는지, 열은 내렸는지, 격리는 잘하고 있는지, 밥은 먹었는지, 집은 어떤지, 싸운 건 잘 풀었는지, 학교를 왜 안 다니려고 하는지, 그 대학을 왜 가려고 하는지,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나 스스로도 풀어 본 적 없는, 그들의 수많은 고민을 그냥 마냥 듣기만이라도 하려면, 내 정신상태가 온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안 하니 나라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두 아이의 엄마, 아빠가 되어서도, 앞으로 닥칠 수많은 시험에 실패하더라도, 그래도 나랑 같이 학교 다닐 때가 그나마 '정답'을 찾을 수 있어서 행복했었다고 기억될 수 있고, 그 기억을 충전해서 다시 뛸 수 있기 때문이다.


덩치는 나보다 두세 배는 큰 서른 넘은 아이가 불쑥 전화를 해서 그런다.


'선생님, 이런저런 일 때문에 힘드네요. 선생님은 어떻게 이겨내셨어요?'라고.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답을 한다. '나는 이겨낸 적이 없어. 그냥 지나온 거지. 지금 살아 있으면 이겨낸 거야'라고. 3월 2일에 처음 만나게 될 열아홉, 고3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자신감'을 갖고 졸업하기를, 수능 끝나고는 하루라도 다 같이 동네 여행이라도 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오늘 기온 단원 문항 출제를 꼭 끝내야겠다. 위에 있는 지도 한 점 한 점 속에서 멋진 어른으로 살아 낼, 아이들의 앞날을 두고 두고 응원한다. 내일 모레 목요일. 마흔을 바라보는 제자들이 늦은 세배를 하러 찾아 온다는 연락을 받았다. 자녀들을 키우면서 이제 조금 '학생때'의 나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너스레다. 이해받는 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다.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자체가 살아가는 힘이다. '그래. 그렇게 조금씩 서로 이해하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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