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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지담'은 <정원에>

[ 잘 놀줄 아는 사람 ] 07

by 정원에

몇 주 전. 200쪽이 넘는 한글 파일을 날려 버렸다. 그동안 읽었던 책에서 만난 귀한 문장에 생각을 덧붙인 내 살 같은 파일을. 블로그, 브런치, 메모장에 어느 시점 이후에는 옮겨 놔 조금은 다행이다.


하지만 몇 주를 멍하니 보내야만 했다. 그나마 얕은 내 생각마저 봄바람에 다 흩어져 사라진 듯해서. 그러던 어느 새벽. 문득, 필명을 바꿀까 하는 생각이 올라왔다. 핑계를 기회삼아 글을 '짧게'쓰자는 다짐을 다시 한번 실천하는 시도를 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그렇게 2주 가까이 머릿속에만 담아 두다, 다시 엊그제 토요일 오후. 출장을 다녀오는 서너 시간 내내 이런저런 필명들을 떠올리고 가라앉히기를 반복했다. 오후를 지나 저녁을 맞고, 일요일 새벽까지 이런저런 필명들을 짓고, 부수고, 잡고, 흔들면서 혼자 놀았다.


다음은 그렇게 혼자 놀다 떠오른 필명들이다.



<짤쓰>

→ '짧게 잘 쓰'고 싶다는 의미. 발음하기 좋다. 작가명을 검색해도 없다. 하지만 '짤'의 느낌이 강했다. 1~2분 안에 울림을 주는 글은 시다. 시를 쓸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


<찰쓰>

→ <짤쓰>의 의미를 담으면서 '짤'의 느낌을 지울 수 있다. '찰나'를 잘 포착해서 '찰'지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작가명을 검색해 봐도 당연히 없다. 하지만 결정적인 문제. 올드하다. 영국 황태자도 쓰지 않을 필명 같다.


<잘쓰>

→ <짤쓰>과 <찰쓰>의 부정적 느낌을 지우면서, 잘 쓰고 싶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하지만 발음상 답답하다. '브런치 작가, 잘쓰!입니다'. 내뱉다 말아 버리는 어감이다.


<잘쓰지>

→ 문득 떠올랐지만, 떠오르자마자 꾸욱 밟아버린 필명이다. 글 한 두 개 발행하고 나면 이런 댓글이 달릴 게 뻔해서. '(좀) '잘 쓰지'.....


<에쿠스>

→ 특정 자동차 브랜드가 아니다. 요즘 깊게 만나고 있는 에피쿠로스를 줄인 말이다. 그런데 솔직히 오래전. 이 이름의 차가 길거리를 돌아다니기 시작할 무렵. 그의 이름에서 따온 게 아닐까 하고 바보 같은 상상한 적도 있다.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월등하고(E) 고품격의(Q) 독특한(U) 명품(S) 자동차'라는 의미를 가지지만. '에피쿠로스'를 필명으로 그대로 쓰기에는 너무 건방지고, 내 그릇이 안되고, 그의 정신으로 제대로 노는 경지에 이를 수는 있을까 싶기 때문에 슬쩍 줄여서 말한 거였다.



필명도 나다. 그렇게 불리고 들으면 그렇게 인이 박여 그런 사람의 글이 (서로)되어 간다. 글이 나를 밀고 가고, 내가 글이 된다. 태어나면서 얻은 이름에는 엄마의 다짐과 바람이 들어 있지만 필명은 그렇게 살고 싶은, 내가 가득 들어차 있다.


절룩거리며 서울 출장을 다녀오면서 지하철 안에서 정했다. 한 달 내내 내 손에 들려 있는 에피쿠로스의 책에서 황홀하게 만나고 있는 <에피쿠로스의 정원>. 맞다. 에피쿠로스가 놀았던 그 정원이다.

<정원에> 나도 같이 있는 상상을 하며 놀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잠들기 전에. 필명을 <정원>이 아니라 <에>라는 장소격조사를 붙인 이유다.


에피쿠로스의 정원을 갖고 싶은 게 아니라 그의 정원((at the garden)에서 그와 함께 있고, 그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을 뿐이다.


내가 '책'으로 만난 작가들 중 (거의) 유일하다. 나에게 큰 울림을 주는, 대단한 글을 쓰는 범접하기 어려운, 다른 세상에 사는 위대한 '작가'가 아닌, 한 문장 한 문장에서 나를 앉아주고 울리고 토닥여 주는 '사람'.



물론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지담'을 버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필명은 에피쿠로스를 따라가지만 여전히 가르치는 아이들이 사용하는 내 교재 안에, 나의 블로그, 메일 주소에서 남아 있을 거다.


40개월을 넘게, 700개가 넘는 글에서 함께 한 글정 때문이라도. 못 쓰는 나인데 구박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게 밀고 나와 준, 지혜로워 지려고 애쓴 이야기꾼이 <지담>이었다.


그 정을 온기삼아 오늘 글부터 지담은 <정원에> 있으려 한다. 나가 놀려한다. 제대로 더 잘 놀아 보려 한다. 아직 어떻게 놀아야 잘 노는 건지, 그의 정원은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모른다. 그래서 글이 갑자기 좋아지지는 않겠지만 짧게 쓰려고 (노력)할 것은 분명하다.


내용은 없어도 일단, 짧을 거다. 별 사유도 없는 이유로 이글도 또 길게도 썼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를 그리고 기리는 마음은 나의 마음이다. 어떻게 생겼을까, 목소리는 어땠을까, 눈빛은.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내가 누군가에게 빠져 매달려 보기는 참 오랜만이다.


매일 점심 도시락을 챙겨 나가듯 그가 언제나 내곁에서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좀 해주었으면 정말 좋겠다.



https://blog.naver.com/ji_da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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