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에 대한 오해

'게으름'과 '개으름', 두 단어 사이의 철학적 거리

by Garden


“게으름”


‘게으름’이라는 단어는

흔히 누군가의 태도를 비하할 때 쓰인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게으르다’는 말이 곧

남에게 들어서는 안되는 말처럼 느껴지도록 배웠다.

“게으르면 안 돼.”
“게으르면 아무것도 못 해.”
“그렇게 게을러서 어떻게 큰 사람이 될래?”


그 말 속에는 늘 꾸준함근면함

인간의 기본값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었다.

하지만 이상하지 않은가.

인간이 원래 게으르지 않았다면,

왜 매일 아침 '오늘은 좀 부지런하게 살아야지'

하고 다짐해야할까.




최근 국어 어휘에 관해 알아보다가,

‘게으름’‘개으름’

서로 다른 단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단어 하나가 품은 미묘한 어감의 차이

우리의 을 얼마나 다르게 해석하게 만드는지 깨달았다.


‘게으름’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음을 뜻한다.

즉, 의무에서 도망친 상태다.

그 안엔 죄책감이 섞여 있고 자기검열이 따라온다.

“나는 게을러서 실패했어.”라는 말은 곧

“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실패작이야.”라는 자기비난이다.

반면 ‘개으름’은 옛말이다.

조선 후기 문헌들에 따르면 ‘개으름’은 단순히

움직이지 않음.”, “조용히 머묾”의 뜻으로 쓰였다.

무엇을 게을러서가 아니라,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어서 멈춘 상태를 가리킨다.


즉, ‘개으름’은 나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정지다.

움직임이 잠시 사라진 고요의 시간,

그 안에서 에너지가 다시 모인다.



우리는 ‘게으름’을 두려워하지만,

사실 필요한 건 ‘개으름’이다.


게으름은 의무에서의 도피지만,

개으름은 존재의 회복이다.


게으름은 자기혐오를 낳지만,

개으름은 자기이해를 낳는다.

게으름은 도망이지만,

개으름은 머묾이다.


이 단어의 차이는,

결국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의 방향이다.


게으름은 “나는 지금 해야 하는 걸 안 했어.”

개으름은 “나는 지금 충분히 머물고 있어.”

단어 하나가 삶의 온도를 바꿔놓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사치’로 여겼을까.

쉬면 불안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존재감이 흐려지는 세상.

누군가 열심히 사는 걸 보면 나도 뭔가 해야 할 것만 같다.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들리는 목소리.

“지금 이렇게 멍하니 있어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 불안은 사회가 만들어낸 환상에 가깝다.

‘늘 부지런해야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믿음

자본이 만든 신앙에 가깝다.


멈추면 실패자, 멈추면 무능한 사람이라는 공포.

그 틀 안에서 우리는 ‘쉼’소비하고

‘휴식’마저 성과의 일부로 만들었다.




그래서 요즘의 쉼은 오히려 더 피곤하다.

쉬는 동안에도 우리는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계획을 세운다.


책을 읽고, 스트레칭을 하고, 명상을 한다.

그조차도 ‘성장’을 위한 행위로 포장된다.

그건 쉼이 아니라 또 다른 ‘작업’이다.


진짜 개으름은 다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마음은 천천히 숨을 고른다.


해가 천천히 지고, 커피 잔의 열이 식어가는 동안,

비로소 내 안의 조급함이 조금씩 사라진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안다.

멈춘다는 건 낭비가 아니라 복원이라는 것을.

움직이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게으름’의 시대는 우리를 다그친다.

‘개으름’의 시대는 우리를 살린다.


이제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줄 수 있다.

“오늘 나는 게으르지 않았다.

단지, 개으르게 있었다.”


그건 아무일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삶을 다시 시작하기 위한 조용한 준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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