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의 부재

자립한 인간들 사이에서 관계는 어떻게 남을까

by Garden




우리는 관계 속에서 줄곧 기대를 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 기대는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한다. 메시지를 보냈을 때 너무 늦지 않게 답장이 오기를, 힘든 심정을 표현했을 때 최소한의 공감은 돌아오기를, 함께 시간을 보낸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어지지는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런 기대를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는다. 기대는 부담이 되고, 부담은 관계를 깨뜨릴 수 있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관계에서 독립미덕으로 배워왔다. 누군가에게 과하게 의존하지 않는 사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주체적인 사람. 감정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인간이 성숙한 존재하고 여겨졌다. 의존은 유약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으로, 기대는 기준에 못 미쳤을 때의 후폭풍이 두려운 감정으로 인식되었고, 관계는 가능한 한 가볍고 자율적인 형태로 유지되는 것이 이상적이라 여겨졌다.


그 결과 우리는 관계 안에서 이런 말을 쉽게 선택한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혼자서도 괜찮아.” 이 말들은 성숙하고 혼자서도 온전한 사람의 말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관계로부터 한발 물러나는 방식이기도 하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대를 접고, 실망하지 않기 위해 마음 자체를 열지 않는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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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 정말로 아무도 서로에게 기대하지 않고, 아무도 서로에게 의존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그곳의 관계는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기대와 의존이 완전히 제거된 세계에서 관계는 더 건강해질까, 아니면 더 얇아질까.


기대는 종종 가져서는 안 되는 감정으로 오해된다. 우리는 기대가 클수록 실망도 커진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기대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기대란 단순한 감정의 과잉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가 성립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방향성의 표현이다.


기대한다는 것은 ‘당신의 존재가 나에게 의미가 있다.’라는 신호이자, ‘나는 당신의 행동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을 허용한다.’라는 선언이다. 기대가 없는 관계는 상처를 주지 않지만, 이는 아무 흔적을 남기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서로를 향해 열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가 제거된 세계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실망하지 않는다. 관심이 부족해서 서운해하지 않고, 나에게 무언가 해주기를 요구하지 않으며, 감정적 갈등도 발생하지 않는다. 관계는 늘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다. 인간은 필요한 역할만 수행하고, 넘치는 감정은 정리된다. 그러나 그 안정성은 서로를 향한 마음이 사라진 결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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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의 부재는 곧 의존의 부재로 이어진다. 의존은 관계에서 가장 조심스럽게 숨겨지는 단어이다. 우리는 의존을 미성숙함이나 부족함의 징표처럼 여긴다. 하지만 관계는 본질적으로 완전한 자립 위에서 성립하지 않는다. 관계는 오히려 의존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상태에서만 유지된다.


우리는 타인의 존재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도움을 요청하고 싶을 때, 위로공감이 필요할 때, 혹은 누군가의 판단이 나의 선택을 지탱해 줄 때 비로소 깨닫는다. 의존은 단순히 약함이 아니라, 타인을 나의 세계 안으로 들이는 방식이다. 나의 삶에 타인의 무게를 허용하는 일. 그 허용의 틈에서 관계는 실체를 얻고, 삶은 혼자일 때보다 덜 흔들린다.


물론 모든 기대와 의존이 건강한 것은 아니다. 일방적인 기대는 부담이 되고, 타인의 영역을 통제하려는 의존은 관계를 망가뜨린다. 그래서 우리는 기대를 경계하고, 의존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기대와 의존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감당하고 조율할 수 있는 구조의 부재일지도 모른다.


의존이 제거된 사회에서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것이 기본값이 된다. 각자는 충분히 강하고, 충분히 독립적이며, 자기 삶을 스스로 운영할 수 있다. 돌봄은 제도화되거나 기술로 대체되고, 관계 안에서 발생하던 감정적 의존은 비효율적인 요소로 취급된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더 강해졌지만, 서로에게는 점점 무관심해진다. 서로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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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의존이 사라진 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갈등이 없다는 것이다. 아무도 상대에게 무엇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어긋날 일도, 실망할 일도 없다. 관계는 안전하고 조용하며, 효율적이다. 그러나 이 안전함은 관계를 깊게 만들지 않는다.


기대가 없다는 것은 상대의 행동이 나의 삶을 바꿀 수 없다는 뜻이고, 의존이 없다는 것은 상대가 없어도 삶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 결과 관계는 유지될지 몰라도, 그 관계가 왜 유지되는지는 설명되지 않는다. 관계는 목적이 아니라 상태가 된다.


이 세계에서 인간은 상처받지 않는 대신 감동받지도 않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삶의 방향이 흔들리는 일도, 타인의 선택으로 인해 자신이 변화하는 경험도 사라진다. 기쁜 소식을 들었을 때 가슴이 뛰는 일도, 따뜻한 위로 한마디에 하루가 달라지는 순간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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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의존이 없는 사회에서 자립완성된 미덕처럼 보인다. 그러나 완전한 자립은 관계가 필요 없다는 선언과도 닮아 있다. 관계는 원래 서로의 부족함이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된다. 완벽하게 자립한 인간들 사이에서는 그 부족함이 사라지고, 관계는 더 이상 필수적인 구조가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기대와 의존을 제거하면 관계는 더 자유로워지지만, 더 무의미해진다. 누구도 누구에게 빚지지 않지만, 누구도 누구에게 깊이 연결되지 않는다. 이 사회에서 신뢰는 더 이상 요구되지 않는다. 신뢰란 본래 상대에게 기대는 마음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세계에서는 배신도 없고 실망도 없지만, 그만큼 헌신도 존재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흔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관계가 유지될지는 몰라도, 더 이상 관계로 인해 인간이 변화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관계는 삶의 변수가 아니라 삶의 배경에서 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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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남는다. 기대와 의존이 없는 관계는 인간을 더 완전하게 만드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아마도 이 세계는 상처가 적고, 안정적이며,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관계를 통해서 단순히 안정만을 얻어온 존재는 아니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울고, 웃고, 흔들리고, 다시 조정하며 자기 자신을 재구성해 왔다.


기대는 부담이지만 동시에 관계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밀어주는 힘이고, 의존은 위험하지만, 관계를 인간답게 만드는 조건이다. 진짜 유토피아는 기대와 의존이 완전히 제거된 세계가 아니라, 기대와 의존이 존재해도 그것이 과해지지 않도록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갖춰진 세계일지도 모른다.


자립한 인간들 사이에서도 서로를 필요로 할 수 있는 용기. 기대가 실망을 낳더라도 관계를 다시 조율할 수 있는 여백. 관계의 결핍이란 기대와 의존이 너무 많은 상태가 아니라, 그 둘을 감당할 수 있는 구조가 사라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완전히 자립한 인간들 사이에서 관계는 정말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관계란 애초에 완전한 자립을 전제로 성립할 수 없는 구조였을까. 어쩌면 우리는 관계를 맺고, 울고 웃으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 애초부터 완전함이 아니라 흔들림을 허락받은 존재로 태어난 건 아닐까.



유토피아 실험실 – VI. 관계, 다양성의 결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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