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의 기술

세바시 강연 - 최유나 변호사 -

by 은서아빠

부부 사이에 나눠야 할 것은 굉장한 것들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세상에서 가장 유한하고 한정적이고, 항상 부족한 바로 시간과 돈과, 노동력입니다.

엄청난 이해관계의 충돌이 오고, 어쩌면 부부라는 사람들은 이런 갈등이 당연한 걸지도 모릅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아내가 치약 뚜껑을 닫지 않습니다. 남편은 매일 같이 치약 뚜껑을 닫는데 시간과 노동력을 써야 합니다.

남편이 평소 비싼 물건을 잘 사는 사람일 경우 한정적인 가계 수입에서는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알뜰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24시간 365일 돌봄을 필요로 하는 어린아이가 집에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말합니다. "어디야?"

남편은 아내에게 말합니다. "술 한 잔만 하고 들어갈게"

이런 얘기 너무 흔한 이야기죠

아내는 생각합니다. "날 사랑한다고 해서 결혼해놓고 내가 하루 종일 아이 보느라 힘든데 집에 일찍 들어와서 아이를 못 재워 주나, 어떻게 이거 하나 못해주지."

남편은 생각합니다. "내가 하루 종일 일하느라고 너무 힘들었는데, 어떻게 한두 시간 스트레스 푸는 그 시간조차 이해를 못 해주지."

남녀의 성별이 바뀐다면 어떨까요? 남자분이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여성분이 밖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경우에 놀랍게도 성별만 바뀌었을 뿐 대사는 같습니다.

제가 여기에서 깨닫게 된 사실은 부부싸움이라는 것은 성별, 성격, 성향의 차이가 아니라 시간과 돈, 노동력을 분배하는 문제구나라는 것입니다.

아내는 하루 종일 아이를 안고 있어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잤어요.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잠깐 눕거나 밥을 먹는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습니다.

남편의 사정은 어떨까요. 하루 종일 회사에서 일에 치었는데 집에 들어가면 더 큰일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이가 놀아 달라 앉아 달라 재워 달라.

내가 아니면 상대방이. 상대방이 아니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이 정말 매 순간 매일 벌어지고 있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냥 나하나 고생하고 견뎌보자, 나하나 참으면 언젠가 끝나겠지 이러면 될까요? 사람이 견디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절대로 일방적인 인내는 해결책이 될 수 없습니다. 표현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나 오늘따라 애가 너무 많이 보채서 한 번을 못 누웠어. 밥도 못 먹었어. 오늘 조금만 일찍 와서 애 좀 봐주면 안 될까 당신도 힘든 거 아는데"

남편은 아내에게 말해야 합니다. "어떡하지 나 오늘 김 과장이랑 다툼이 있었는데, 오늘 이거를 풀지 않으면 사장한테 찍힐 것 같아. 내가 오늘 이것을 풀고 들어갈 테니까, 오늘만 좀 고생해주고 내일은 내가 애 재울게"

부부가 서로 소중한 것들을 서로 나누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면 서로에 대해 비난하기보다는 나 자신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상대방이 당연히 알아주길 바라고, 내가 하는 배려의 방식이 똑같이 상대방에게 먹힐 것이라고 생각하고, 언젠가 똑같이 돌아오겠지라고 기다리기만 하면 어느새 이별이 코앞에 다가와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에게 이유 있는 희생이라는, 인정받는 노력이라는 걸 서로 깨달으려면 자꾸 서로에게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소통이 필요합니다.

이거 하나 못해줘 라는 말이 아니라 나 대신 이거 해줘서 고마워라고 해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을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을 어필하고 상대방이 나를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을 캐치해야 부부관계는 단단해지는 것입니다.




이건 네가 하기로 했잖아.. 이건 니 책임이잖아

부부관계는 역할 분담이 책임분담으로 변질되기 쉬운 관계입니다.

우리가 처음 결혼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역할을 분담하죠. 한 사람이 돈을 벌고, 한 사람이 아이를 키우고 한 사람이 설거지를 하고, 한 사람이 분리수거를 하고

그런데 역할이 1년 2년 10년 이렇게 계속되다 보면 역할이 아니라 어느새 무거운 책임이 되어 버리는 것이죠

그리고 뭔가가 잘못되면 그 책임소재를 찾아서 자꾸 상대방을 꾸짖게 되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매월 급여를 계속 갖다 주는데 도대체 돈 다 어디가 쓴 거야? 왜 이렇게 돈이 모이지 않아? 다른 사람들은 집 샀다던데 너무 헤프게 쓰는 거 아니야."

아내는 남편에게 이야기 합니다. "얼마를 벌어다 준다고, 다른 남자들은 두 배 세배를 벌어다 줘도 그런 소리 안 해."

너무나 흔한 사례죠. 이것이 남녀의 성향 차이 성격차이 때문일까요?

각자가 맡았던 역할이 어느새부턴가가 너무 당연한듯이 책임이 되어버려서 양쪽 다 억울한 상황입니다.

남편은 자신이 힘들게 번 돈이 모이지 않으니까 이 책임에 너무 힘이 들죠. 언제까지 내가 일할 수 있을까? 60대 70대까지 내가 돈을 벌어도 집을 살 수 있을까? 언제쯤 내가 이 책임에서 가벼워 질까?

아내는 혼자서 독박으로 육아를 책임지고 알뜰살뜰 아끼고 아껴서 아기를 키우고 있는데 자꾸 돈 이야기를 하는 남편이 너무 밉습니다.

남성 분들은 "나는 돈 버는 기계가 된 것 같다", "현금 인출기가 된 것 같다"고 말합니다.

여성 분들은 "나는 결혼해서 내 자신을 잃어버리고 그냥 뒤치다꺼리 하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우리가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역할분담이 책임분담으로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가정 경제가 너무 어려워졌어요 이게 돈을 버는 역할을 하는 남편의 온전한 책임인가요?

아이가 반에서 꼴찌를 했어요 이게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던 아내의 온전한 책임일까요?

두 사람이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있다고 생각해봐요 둘 다 너무 열심히 노를 젓고 있어요 근데 폭풍우가 몰아쳐서 배가 가라앉고 물이 차고 있어요. 네가 노를 제대로 안저어서 그런 거잖아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니죠 폭풍우라는 외부적 요인 때문인거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 그동안 열심히 벌었는데 애들 좀 컸으니까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 좀 찾아볼게, 당신 평일에 애 보느라 한 시간도 자유시간 없지 내가 주말에는 애들 데리고 키즈카페 갈게 좀 쉬어

이러한 말들은 우리가 역할을 분담해서 한 방향 한 목표로 나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주는 말들입니다.

잠깐의 무거운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나서 행복한 꿈을 꾸게 해주는 말들인 거죠

네가 하기로 했잖아 이건 니 책임이잖아 라는 말 대신에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 함께 고민해보자라고 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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