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시대, 철학은 왜 다시 정신과 직관으로 돌아갔을까

틸리의 서양철학사 제20장 현대철학의 관념론적 경향들

by 지경선

과학 시대, 철학은 왜 다시 정신과 직관으로 돌아갔을까?


19세기는 과학의 시대였다. 다윈의 진화론, 맑스의 유물론, 콩트의 실증주의가 사람들의 사고를 지배했다. 자연과학은 눈부시게 발전했고, 사회까지도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뒤따랐다. 이런 흐름 속에서 철학 역시 위축된 듯 보였다. 하지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의외의 반전이 일어난다. 철학자들이 다시 ‘정신, 가치, 직관’이라는 오래된 주제로 되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절대적 관념론


영국과 미국에서는 헤겔의 영향을 받은 절대적 관념론이 활기를 띠었다. 토마스 힐 그린, 브래들리, 로이스 같은 사상가들은 “세계는 단순한 사실들의 집합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적 정신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학이 개별 사실을 분석해 설명하려 했다면, 관념론은 그 사실들을 하나의 의미망으로 묶어내려 한 것이다. 인간은 단순한 분자나 세포의 집합이 아니라, 더 큰 정신적 구조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이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인간을 설명하려는 시대에, 우리는 여전히 “삶의 전체적 의미”를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관념론


대륙에서는 관념론이 문화와 정치와 맞물리며 새로운 힘을 얻었다. 프랑스의 르누비에, 푸이예, 부트루 같은 철학자들은 칸트의 유산을 이어받아 자유와 가치의 문제를 탐구했다. 이탈리아에서는 크로체와 젠틸레가 등장했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관념론은 단순히 철학적 담론에 머물지 않고, 역사철학과 정치 이념과 결합했다. 특히 젠틸레의 경우, 파시즘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철학과 정치의 위험한 만남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묻는다. 철학은 언제 사회를 이끄는 힘이 되고, 언제 권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되는가?


주지주의와 낭만주의의 긴장


관념론의 부활과 함께 또 하나의 흐름은 낭만주의적 반작용이었다. 18세기 계몽주의와 주지주의가 이성을 최고의 기준으로 삼았다면, 낭만주의는 감정과 개성을 부각시켰다. 이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인간의 세계가 있다는 직관이 철학자들을 자극했다. “인간은 논리적 동물일 뿐 아니라, 상상하고 느끼는 존재다”라는 외침이 다시 울려 퍼진 것이다.


이 흐름은 교육·예술·종교 등 삶의 영역 전반에서 새로운 빛을 던졌다.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을 철학이 다시 끌어안으려 했던 것이다.


베르그송의 직관주의


이 흐름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앙리 베르그송이다. 그는 인간의 지성이 사물을 고정된 단면으로만 파악한다고 비판했다. 진정한 삶의 본질은 ‘지속(durée)’, 즉 흐르는 시간과 창조적 생명에 있다고 보았다. 이 흐름을 이해하는 길은 논리적 분석이 아니라 직관이다.


베르그송의 철학은 20세기 초 유럽을 휩쓸었다. 과학이 삶을 설명하는 데 점점 더 정교해졌지만, 동시에 사람들은 그 설명 속에서 ‘살아있는 생명’을 잃어버린 듯한 허기를 느꼈다. 베르그송은 그 허기에 대한 응답이자 대안이었다.


과학의 시대, 철학의 대답


결국 20장의 흐름은 한 가지 답으로 모아진다. 과학과 실증주의가 사실을 설명하는 데 성공할수록, 철학은 오히려 의미와 가치를 더 강하게 요청받는다. 과학은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말해줄 수 있지만, “왜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침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국과 미국의 관념론은 정신의 전체성을,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자유와 역사적 가치의 의미를, 낭만주의는 감정과 개성을, 베르그송은 직관과 생명의 흐름을 강조했다. 모두 같은 질문에 대한 다른 답이었다.


“과학이 인간을 설명할 때, 인간은 여전히 더 큰 의미를 묻는다.” 이것이 바로 20세기 초 관념론적 철학이 과학 시대 속에서 다시 살아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