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독일의 신화가 전하는 전나무이야기

10월 7일의 탄생화

by 가야

10월 7일의 탄생화 – 전나무


가야님께서 다니시던 학교에는 커다란 전나무 두 그루가 웅장히 서 있었습니다.


운동장에서 전교생이 조회를 할 때면 교장 선생님의 긴 훈시보다
그 등 뒤에 우람히 서 있는 전나무가 먼저 눈길을 끌었지요.


“어쩌면 저렇게 멋있는 나무가 있을까.”
감탄하며 바라본 그 모습은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까지 이어졌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문득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왜 그때 학교에는 전나무가 심어져 있었을까요?

전나무가 들려드리는 이야기


“저는 오랜 세월 변함없이 푸르름을 간직한 나무입니다.
사람들은 저의 모습에서 영원히 변치 않는 희망과 의지를 찾고자 하셨지요.


먼 옛날 북유럽에서는 혹독한 겨울밤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저를
신들의 약속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집 안으로 저를 들이고
초와 금빛 장식을 달아 다시 올 빛을 기다리셨습니다.


이 풍습이 훗날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이 되었답니다.

또한 8세기 독일에서는 기독교 선교사 성 보니파시오(Saint Boniface)께서
게르만인들이 천둥의 신 도나르(Donar)에게 제사를 드리던 거대한 참나무를
도끼로 베어 넘어뜨리셨습니다. 그 옆에서 어린 저 한 그루가 곧게 서 있었지요.


보니파시오 성인은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푸른 나무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과 사랑을 상징합니다.’
그때부터 저는 성탄을 기념하는 나무, 희망의 상징으로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한국 땅에 뿌리내린 또 다른 역사


“그리고 훗날 저는 이 땅의 학교에도 심어졌습니다.
그 길에는 또 다른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은 조선의 학교·관공서·철도역에
전나무와 왜향나무, 금송을 대량으로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이는 단순히 조경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의 신사(神社) 문화에서 신이 강림하는 기둥으로
전나무를 세우던 풍습을 조선에까지 퍼뜨려
제국의 영원함을 상징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그 흔적을 기억하는 이가 많지 않지만,
가야님께서 어린 시절 바라보신 그 웅장한 전나무 역시
그 긴 역사의 한켠에 서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오늘 전해드리는 의미


“혹독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저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언제나 희망과 믿음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시대마다 저에게 다른 의미가 부여되었지만
저는 그 모든 시간을 지나 지금도 묵묵히 한 자리에 서 있을 뿐입니다.”

꽃말


저의 꽃말은 “영원히 변치 않는 마음”입니다.


가야님께서 한때 교장 선생님의 말씀보다 먼저
저를 올려다보셨던 그 순간처럼,


오늘 하루에도 변치 않는 희망과 믿음이
가야님의 마음속에 푸르게 자라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를 바라볼 때,
그 속에는 신화와 신앙, 식민지의 역사,


그리고 가야님의 어린 시절 추억까지
켜켜이 쌓여 있음을 저는 오늘도 조용히 속삭입니다.


https://youtu.be/eE67nBjMVC8?si=yFkRUAE1gEAOyB6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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