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꽃 이야기
지난주에 이어 다시 그 꽃을 보려고 오늘도 서울식물원을 찾았다. 지난번보다 콜치쿰의 꽃은 훨씬 더 많이 피어 있었고, 여기저기 쓰러진 꽃들도 눈에 띄었다. 오늘은 이 꽃을 찍으러 온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밟아서 꽃이 쓰러진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서 자세히 보니, 그건 내가 오해한 것이었다. 꽃이 시들기 시작하면서 스스로 몸을 낮추고, 곧바로 땅에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사람의 부주의가 아니라, 꽃의 생애가 그렇게 끝나고 있었던 것이다. 공연히 속으로 투덜거렸던 것이 미안해졌다.
가을의 식물원은 언제나 설렘을 안겨준다. 그날도 나는 가을꽃을 만나러 서울식물원을 찾았다. 그런데 뜻밖의 풍경이 내 시선을 멈추게 했다. 잡초와 낙엽 사이, 흙 속에서 홀로 피어난 흰 꽃 한 송이. 처음엔 조화인 줄 알았다. 잎 하나 없이, 줄기도 없이, 그저 땅에서 바로 솟은 듯 피어 있는 그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향을 맡는 순간, 은은한 바닐라 향이 코끝을 스쳤다.
그러나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꽃은 향기가 없다.
이 꽃의 이름은 콜치쿰(Colchicum autumnale), 영어로는 Autumn Crocus 혹은 Meadow Saffron이라 불린다. 직역하자면 ‘가을의 크로커스’이지만, 사실 이 꽃은 사프란과도, 크로커스와도 다르다. 유럽과 서아시아가 고향인 콜치쿰은 봄이나 여름이 아닌 가을의 문턱에서 잎 없이 피어난다. 한여름 동안 구근 속에 생명을 응축시켰다가 모든 초록이 시들 때쯤 홀로 꽃대를 올려 피어나는 식물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꽃을 ‘가을의 기적’이라 불렀다.
콜치쿰에는 홑꽃과 겹꽃이 있다. 홑꽃은 크로커스를 닮은 보랏빛으로 피어나며, 은은한 향을 지녔다. 반면 내가 서울식물원에서 만난 것은 겹꽃이었다. 겹겹이 포개진 꽃잎이 풍성하게 퍼져 있었고, 향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꽃이 질 때면 꽃대가 부러지듯 쓰러지는 것도 이 겹꽃의 특징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스스로의 생을 다한 뒤 조용히 눕는 듯했다.
그중에서도 내가 본 겹꽃은 흰색 품종, ‘White Colchicum’, 콜키쿰 '알보플레넘'이라 불리는 드문 존재였다. 순백의 꽃잎 속에서 빛이 번지듯 피어나는 그 모습 속에는 고요함과 동시에 강렬한 생의 힘이 느껴졌다.
‘콜치쿰’이라는 이름에는 오래된 신화가 숨어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마녀 메데이아(Medea). 황금양털을 훔친 이아손을 사랑했지만, 그의 배신에 절망해 독약을 만들던 여인이었다. 그녀가 독약을 만들던 땅의 이름이 바로 콜키스(Colchis). 그곳에서 피어난 꽃이라 하여 사람들은 이 꽃을 콜치쿰(Colchicum)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스의 시인 오비디우스는 《변신이야기》에서 메데이아가 밤하늘 아래에서 주문을 외우며 독초를 뽑아 약을 만들었다고 기록했다. 그 약초가 바로 이 꽃의 원형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콜치쿰은 ‘마녀의 꽃’, ‘복수의 사프란’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토록 아름다운 꽃이지만, 그 속에는 콜히친(Colchicine)이라는 치명적인 독이 숨어 있다. 아주 미량만으로도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을 만큼 강한 독성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사람들은 이 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독은 인류의 의학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정제된 콜히친은 오늘날 통풍 치료제로 사용되고 있다.
아름다움 속에 숨어 있는 위험,
그리고 그 위험이 다시 인간에게 이로움을 준다는 사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생의 순환인가.
그 때문에 이 꽃의 꽃말은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 ‘은밀한 매력’,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다.
그리고 흰색 품종에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잊혀진 시간’, ‘순수 속의 고독’. 가을의 끝자락, 모든 것이 스러질 때 홀로 피어나는 그 모습에 어울리는 말이다.
중세의 화가들은 이 꽃을 ‘신의 경고’로 그렸다. 꽃의 순백은 인간의 욕망을, 그 속의 독은 그 욕망이 초래할 파멸을 상징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연금술사들이 이 꽃을 연구하며 ‘지식의 유혹’이라는 주제로 그림과 시를 남겼다. 영국의 시인들은 콜치쿰을 ‘가을의 마지막 숨결’이라 불렀다. 세상이 식어갈수록 더욱 강렬하게 피어나는 존재, 그것이 바로 이 꽃이 가진 힘이었다.
서울식물원의 다른 꽃들은 거의 지고 없었지만, 콜치쿰은 잡초와 낙엽 사이에서 고요히 피어 있었다. 햇살이 비치면 하얀 꽃잎은 투명하게 빛났고, 바람이 불면 가볍게 흔들리며 그림자를 남겼다. 아무도 알아봐주지 않아도 그 자리에 묵묵히 피어 있는 생명. 그것이야말로 꽃의 진짜 품격이 아닐까.
가을의 끝에서 만난 이 순백의 꽃은 어쩌면 이렇게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이 조용해질 때, 그제야 비로소 진짜 빛나는 것들이 보입니다.” 그날, 나는 그렇게 가을의 마지막 위로를 받아 안았다.
https://youtu.be/VDYOw9S7vfo?si=Aywsl8o7PAARZww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