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3일의 탄생화
1월 13일의 탄생화는 맑고 우아한 자태의 수선화(水仙花, Narcissus)입니다. ‘물에 사는 신선(神仙)’이라는 뜻을 가진 이 꽃은 겨울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도 고요히 피어나 맑은 향기를 전합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1월의 또 다른 탄생화 역시 수선화입니다. 이미 지난 글에서 노랑수선화(黃水仙花)의 전설과 의미를 다루었기에, 오늘은 그와는 다른 시선으로 ‘수선화와 뗄래야 뗄 수 없는 인물,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의 삶 속에서 수선화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학문과 예술, 그리고 인간 정신의 고결함을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선생과 수선화의 인연은 매우 깊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중국 문인들의 시와 그림을 연구하며, 그들이 수선화를 ‘군자의 꽃’이라 부르며 사랑한 이유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셨습니다. 수선화의 청아한 품격을 학문적 이상으로 삼으신 추사 선생께서는 직접 연경(燕京, 지금의 베이징)에서 귀한 수선화 구근을 구해와 정성껏 가꾸셨습니다.
특히 그 수선화를 고려자기(高麗磁器)에 심어 스승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선생께 선물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1828년 다산의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대 최고의 학자와 예술가 사이에서 오간 이 한 송이의 꽃은 단순한 선물이 아니라, 지적 우정과 예술적 정신의 상징이었습니다.
그 시절 조선에서 수선화는 매우 희귀한 꽃이었지만, 추사 선생께는 이미 학문과 예술, 그리고 인품의 완결을 상징하는 존재였습니다. 선생께서는 “군자는 추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향기를 숨기지 않는다.”라는 구절을 자주 인용하시며 수선화를 군자의 마음과 예술가의 정신이 함께 깃든 존재로 여기셨습니다.
1840년(헌종 6년), 54세의 김정희(金正喜) 선생께서는 정치적 모함으로 인해 제주도 대정현(濟州道 大靜縣)으로 유배되셨습니다. 유배지에서 선생께서는 우연히 들판에 자생하는 야생 수선화를 발견하셨습니다. 그 꽃은 현지인들에게 ‘몰마농(말마늘)’이라 불리며 잡초로 취급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편지에서 이렇게 쓰셨습니다. “이 고장 사람들은 이것이 귀한 줄 몰라 소와 말에게 먹이고 발로 밟아버리기도 합니다. 사물이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이와 같습니다(此地之人不知其貴, 餵牛馬而踐踏, 物不得其所如此).” 세상에서 존중받던 자신이 권력 다툼에 밀려 외딴 섬에 버려진 현실, 그리고 천대받으면서도 꺾이지 않고 피어나는 수선화의 운명은 서로 닮아 있었습니다.
선생께서는 제주에서도 다시 구근을 심고 꽃을 가꾸며, 고난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한 송이의 정신을 수선화 속에서 보셨습니다. 그에게 수선화는 세속의 풍파 속에서도 자신의 품격을 잃지 않는 존재, 곧 예술가의 마음이었습니다.
유배의 세월 속에서 선생께서는 수선화를 노래하는 시 한 수를 남기셨습니다.
一點冬心朶朶圓
品於幽澹冷雋邊
梅高猶未離庭砌
淸水眞看解脫仙
‘한 점의 겨울 마음이 송이송이 둥글고, 그윽하고 담담한 기품은 냉철하며 빼어나다. 매화가 고상하다 하나 뜰을 벗어나지 못하는데, 맑은 물 속에서야 비로소 해탈한 신선을 보는구나.’
그에게 수선화는 고독의 상징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 완성되는 정신적 해탈(精神的 解脫)의 존재였습니다. 차가운 바람과 외로움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꽃의 모습에서, 그는 예술이 도달해야 할 궁극의 자유를 보셨던 것입니다. 이 정신은 훗날 그가 완성한 추사체(秋史體)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유배의 겨울은 선생께 예술적 각성을 안겨주었습니다. 대표작 《세한도(歲寒圖)》는 바로 그 시기에 탄생했습니다. 이 그림은 스승을 잊지 않고 정성을 다한 제자 이상적(李商迪, 1804~1865)에게 전한 감사의 표시였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세한(歲寒)’, 즉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절개(節槪)를 뜻합니다. “날이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 이 문장은 곧 선생의 삶을 대변합니다. 외로움과 시련 속에서도 향기를 잃지 않는 존재, 그것이 수선화이자 추사였습니다. 《세한도》는 단지 한 폭의 그림이 아니라, 고결한 정신의 선언문이었습니다.
예산의 추사 고택(秋史古宅)에는 지금도 봄이 오기 전 흙 속에서 맑은 수선화가 피어납니다. 그곳의 수선화는 후손들이 세심히 가꾸어온 것으로, 추사 선생께서 제주 유배에서 다시 들여온 구근의 후예라 전해집니다.
세월이 흘러도 그 향기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꽃은 선생의 학문과 예술, 그리고 고결한 혼(魂)을 상징하며, 고택을 찾은 사람들에게 조용한 감동을 전합니다. 선생께서 평생 사랑하신 그 꽃은 이제 그의 정신을 증언하는 또 하나의 작품이 되어 있습니다.
✿ 맺음말
혹독한 유배의 겨울 속에서도 피어난 한 송이의 수선화처럼,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선생의 삶은 고난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간의 숭고한 기록입니다. 그의 그림 《세한도(歲寒圖)》와 고택의 수선화는 그가 남긴 예술과 정신이 결코 시들지 않았음을 오늘도 말해줍니다.
1월의 찬 바람 속에 피어나는 수선화를 바라보며 우리는 문득 그가 남긴 메시지를 떠올립니다. “진정한 품격은 외로움 속에서 더욱 빛납니다.”
그가 심은 수선화는 시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고결한 정신의 또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https://youtu.be/4otcbiKDDws?si=HwJ6FtpWzhy0q84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