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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Sep 05. 2023

시어머니의 말말말..

내겐 너무 아픈 당신의 말들

지금의 남편을 기른 것은 남편 보다 스무살 많은 시어머니다. 남편의 말들이 내게 가시처럼 따가운 것이라면 그 어머니의 말들은 내 마음을 난도질한 후 소금을 뿌려대는 정도의 것들이었다. 내게는 그런 아픈 말들이 너무 아프다고 남편에게 호소하면 “우린 엄만 나한테도 그래”하며 늘 이해하라는 식이었다.


남편은 그 강도높은 비난과 잔소리들을 평생 듣고 살아왔으니 익숙해진 것도 있지만 여전히 드센 자신의 어머니를 어떻게 할 수 없기에 어린 아내를 달래는 편이 더 쉬웠을 것이다. 나는 자식에게 비상식적인 말들을 거침없이 해대는 그녀의 심리가 정말 궁금했다.


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까?


결혼 7년차 4살 6살 아들을 둘이나 낳고 살고 있는 이 시점에도 여전히 어머니는 이런 말을 하셨다.


“나는 니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


“니는 먹고 놀라고 결혼했나? 맨날 천날 차타고 삘삘 돌아댕기는거나 좋아하고 낮에 뭐한다고 싸돌아댕기노? 집에서 딱 살림이나 하고 남편 좋아하는 반찬이 뭔지 시장에서 장봐가 만들 생각이나 안하고. 니가 남편을 그 따위로 대접하니까 툭하면 생활비나 뺏기고 하는거 아이가? 남자는 다 여자하기 나름이다”


그럼 나는 이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그렇게 마음에 안 드셨으면 처음부터 이 결혼을 뜯어 말리셨어야지요. 이제와서 어쩌라는건가요’


누가 들으면 밥도 안 차리고 놀러만 다니는 줄 알겠지만 우리집은 외식이라 해봐야 한 달에 한번, 배달은 일주일에 한번, 반찬 사 먹는 횟수도 1년에 몇 번 되지 않을 정도로 매번 집밥을 해서 먹는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남편이 안색이 안 좋은 것도, 아이들이 아픈 것도 모두 내가 ‘옳게 잘 해맥이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이다.


어느날은 아침부터 전화가 왔다. 상기된 목소리로 나에게 다짜고짜 물으셨다.


“니 요새 아침에 애비 밥 뭐 해주노?”


“아침에 밥은 잘 안 먹힌다고 해서 주로 토스트나 죽 해주는데요”


“내 그랄 줄 알았다. 밥을 옳게 잘 안 해맥이니까 애비가 안 내던 성질을 내는거 아니가? 아침에 밑에 집에서 차를 좀 빼달라고 전화가 와서 애비한테 전화를 했더니 안 그라던 애가 욕을 하고 까딱하면 이웃집이랑 싸움날뻔 했다. 만약에 혹시라도 싸움 나가 이 동네에 소문 안 좋게 퍼지면 그거 다 니 책임이다. 알긋나? 평소에 안 그러던 아가 얼마나 먹는 걸로 스트레스가 받았으면 그리 성질을 내겟노? 이게 다 니가 밥을 잘 안채리가 생기는 일 아이가?”


도무지 뭔 소린지 이해는 안 가지만 기분이 너무 나빠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따졌다. 사정은 이랬다. 시어머니집은 우리집과 걸어서 10분 거리이고 남편은 (어머니와 함께 사는)동생과 출퇴근을 함께 하기에 차를 항상 어머니집에 대놓고 걸어왔다. 혹시 몰라 차키는 동생에게 맡기는데 그날따라 깜박한 것이다.


오래된 빌라이다 보니 주차장이 좁았는데 일요일 아침이라 늦게 출근을 하는 남편에게 아랫집에서 차를 빼달라고 전화를 한 것이다. 남편은 상대방이 먼저 짜증을 냈다고 하면서 차를 일부러 늦게 빼주고 본인도 언성을 높였다 했다. 어머니가 그러시는건 별 대수롭지 않은 일이니 신경쓰지 말라했다.


“아니 내가 왜 매번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해?”


아니 무슨 논리가 이럴까. 남편이 밖에서 화내는 것 조차 내 탓이라니. 남편의 스트레스가 모두 내가 해주는 밥이 맛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그 사고의 전개방식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혼 5년차쯤 됐을때 남편이 어느날 이상하게 술을 많이 마신 날이 있었다. 평소 취하도록 마시는 편이 아닌데 그 날은 술 먹고 밖에서 넘어졌는지 만취 상태에서 다리에 피가 난 채로 새벽에 들어와서는 또 이불에 실수를 하기까지 했다.


무슨 일이 있는게 분명했다. 다음 날 해장국을 끓이고는 물었다. “왜 이러는거야? 당신?”


남편은 오랜 침묵 끝에 주식으로 돈을 좀 날렸다했다. 하지만 그 돈은 결혼전에 모은거라 나하고는 상관없는 돈이라 했다. 아파트 두채 값이 날아갔지만 앞으로 다시 모으면 된다고 하길래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주식에 대해서는 1도 모르는 내가 남편이 주식을 얼마나 하는지 알리가 없었고 남편 또한 나에게 굳이 말해주지도 않았기에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노발대발하며 또 나에게 따졌다.


“니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남편이 주식을 얼마나 하는지 니가 옆에서 잘 챙겼어야 할거 아이가! 그라고 니가 남편한테 관심을 안 가지고 음식을 입에 딱딱 맞게 안 해주니까 애비가 자꾸 밖으로 돌고 주식에 빠지고 그런거 아이가?”


나는 태평하게도 지난 일을 어찌하겠냐며 돈 잃은 본인이 제일 속상할거 같아서 더 얘기 안했다하니 어머니는 의외의 말을 하셨다.


“아이고 니는 애비 돈 벌이는데 보태준게 없으니까 그렇지. 니가 애비 돈 버는데 뭐 한 게 있노? 애비가 이만큼 장사하고 돈 벌이는게 다 내가 뒷바라지 해서 된거 아이가! 그 돈이 뭐 지 혼자 벌인 돈인 줄 아나? 그게 있었으면 나중에 이 집 이사할때 보탤 수도 있는긴데..”


어머니는 그 돈이 본인이 뒷바라지해서 번 돈이니 본인에게도 지분이 있는데 허락 없이 함부로 돈을 날린 것에 대해서 분개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왜 그 탓을 당신 아들이 아닌 며느리에게 돌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머니의 말 중에 가장 듣기 싫은 말은 친정에 관한 언급이다.


“너그 엄마가 어릴때 니를 버리고 갔다매? 니 하는거 보니까 딱 엄마 없이 큰게 티가 난다”

“할매 손에 크는 애들이 버릇이 없다카더니 니가 딱 그짝이네. 할매가 뭐 오냐 오냐 해서 키우니까 시집에 와서 뭘 해야하는지 그 나이 되도록 눈치라고는 없고 에휴...”


“내가 미용실을 오래 해가 띠만 보면 궁합이 좋은지 안 좋은지 다 아는데 너거 엄마 아빠는 개띠랑 돼지띠가 뭐시 안 맞다. 개띠들은 원래 밖으로 돌고 하는데 돼지띠는 눈치도 없고 미련해놓으니 같이 못 살지. 니는 보니까 너거 엄마 닮았네”


그러면서 어머니는 본인은 남편이 돈을 안 벌어다 줄 지언정 (나의 엄마와 달리) 이혼을 하지 않았고, 아이들을 내버리고 가진 않았다는데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아들 둘을 제 밥 벌이 할 정도로 키운 것이 모두 자신의 공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항상 상기시키곤 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가 한 말을 끝으로 그녀를 이해해보려한다.


첫째 아들을 업고 있을 때였으니 돌 전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그날 어머니집에서 밥을 먹고 있다가 갑자기 나도 모르게 그간 쌓인 것이 폭발하여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처음으로 대든적이 있었다. 그날따라 어머니 또한 무척 강하게 나오셨다.


“니가 시집을 알기를 우습게 알제? 니는 뭐 시집에 놀러왔나? 하는 것도 없으면서 어디서 성질이나 팍팍 내고 뭐 이런게 다 있노?”


“여자가 뭐 죄인입니까? 제가 뭐 죄지어서 온 것도 아닌데 자꾸 저한테 왜 그러세요? 그리고 좀 편하게 살면 안됩니까?”


어머니는 대드는 며느리에게 참지 못한 듯 싸대기를 날리셨다.

“그래 시집온게 죄인이지. 여자는 원래 그래 사는기다 몰랐나? 그라고 시집왔으면 편하게 살면 안되지! 내는 이날 이제껏 남편이 돈도 안 벌어다주고 애 둘 혼자 다 키우고 고생 고생해서 살았는데 왜 니만 편하게 살라고 하는데!!!”


남편 시동생이 말렸음에도 이미 머리채를 맞은 후라 나는 떨리는 손으로 아이를 안고 그 집을 나와버렸다. 아마 그 후로 한 몇달간은 왕래를 안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당신의 말과 행동이 언제쯤이면 이해가 될까.



지난날 어머니의 말들이 너무 아파 괴로웠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조금씩 그녀에 대한 연민이 생긴다. 특히나 마지막 말은 그녀의 인생이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무엇으로도 보상받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회한이 담긴 것아 씁쓸한 여운이 남는다.



지금도 어머니의 그 날선 말들을 들으면 속상함이 불쑥 올라오지만 다행스럽게도 나도 무뎌져서인지 예전 같지는 않다. 그리고 어머니가 한 평생 이렇게 거칠게 자신을 보호하며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보니 그녀의 날선 가시들이 그저 안쓰러웠다.



그리고 스스로 다짐해본다. 나는 절대 저런 시어머니는 되지 말자고.

지금부터라도 나도 나 자신을 먼저 따뜻하게 대할 줄 아는 사람이 되자고.



#별별챌린지

#글로성장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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