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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야 Oct 31. 2023

6살 아들이 욕을 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6살 큰 아들이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 보이며 ‘퍽큐’라는 말을 장난처럼 시작했다. 도대체 어디서 배워왔는지 4살된 둘째도 곧 형을 따라하며 장난을 치며 놀더라. 처음엔 그저 애들 장난이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점점 갈수록 수시로 나에게 손가락을 날리더니 하지 말라고 나쁜 말이라고 욕이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게 되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들을지 아들둘을 키우면서도 여전히 훈육은 어렵다. 평소에 워낙 아이들과 장난을 많이 쳐서인지 엄마 말은 무섭지도 않게 느껴지는 것 같다. 나는 왜 아이들에게 단호한 엄마가 되지 못하는지 스스로도 권위 없는 엄마인 것 같아 씁쓸할 뿐이다.


그러다 큰 아이에게 그런 식으로 하면 유투브를 안 보여주겠다고 했더니 이제는 “씨-발”이라며 욕을 하고 어떨땐 종이에 욕을 써서 나에게 보라고 주기도 하고 손가락 욕을 그림으로 그리는 등 수위가 점점 높아져갔다.


두려웠다. 이 아이는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왜 그렇게 욕을 하는지 물었더니 자기도 모르게 나온단다. 자기도 모르게 튀어 나오는 그 말.. 어릴때 들었던 그 말이 이제 입 밖으로 나온 것이다. 누구 탓을 할 수 없다. 내 탓이다. 나와 남편이 내뱉고 지껄였던 그 욕들을 아이는 몸으로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가 말을 못하던 아주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입에서 나왔던 그 말을 아이는 차곡 차곡 쌓아 지금 보란 듯이 내뱉어주고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아주 소름 돋는 불행의 대물림의 순간이었다.


가난한 집 아이가 커서도 가난할 수 밖에 없는 것은 늘 가난한 삶의 태도로 살기 때문이다. 불행한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 또한 그것이 나쁜 것인지조차 모른채 몸 구석 구석 마음 깊숙한 곳까지 그 거칠고 사나운 언어와 폭력적인 태도들을 습득하며 살아간다.


결국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혹은 타인을 공격하며 살아가면서도 자신이 왜 불행한지 모른채 끝없이 남탓만 하고 외로워하다 삶이 끝나는 것이다. 최소한 자기 자신을 성찰하지 않으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난날의 나의 과오로 인해 지금 내 아이가 순수함을 잃고 욕을 쓰는 지경이 되었다고 해서 그 아이의 일생이 앞으로도 불행할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나는 최소한 엄마로서 그 아이에게 사과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다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너 어릴때 화내고 욕해서 그런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아이에게 너의 욕은 엄마에게서 온 것이라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내가 저질러놓은 잘못을 아이에게 뒤집어 씌우며 혼내는 건 너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대물림을 끊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정작 내 행동은 여전히 그 악순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반성한다. 아이는 정확히 부모의 거울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이 앞에서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 다 조심해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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