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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저장할 줄 아는 사람

by 이가연


나는 늘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레슨 에피소드를 그때그때 레슨 노트에 적어놨기에 '저도 뮤지션입니다' 책이 탄생했다. 레슨 중에도 '이 말 기억해 두고 집 가서 노트에 적어야지'라고 생각했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아무리 인상 깊었다 해도 학생이 무슨 말을 했는지 그다음 날이면 잊어버렸을 것이다.


영국 갔을 땐 거의 이틀에 한 번씩 브런치 글을 썼다. 지금 다시 그 시절을 회상해서 200페이지를 쓰라고 하면 엄두가 안 난다. 또 그때 감정이 잘 기억 안 나는, 가볍게 지나가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런데 이미 써둔 글을 읽으면 기억이 되살아난다.


한국에서 레슨 할 때도, 영국에 가서도, 늘 이 모든 게 책이 될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건 단순 책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기억을 오래오래 기분 좋게 저장하는데 의의가 있었다. 책은 기껏 만들었는데 읽는 사람이 별로 없으면 속상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그냥 책이 아니라, 그냥 휘발될 수도 있었던 소중한 기억이 예쁜 선물로 담긴 느낌이다.


유튜브 채널도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사람들 영상 많이 찍어도 사진첩에서 잘 안 보지 않나. 근데 그걸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려두면 자주 보게 된다. 작년 추석 창원에서 올린 영상 5개도 하도 봤더니 지금까지 다닌 국내 여행 중에 베스트였던 거 같다. 바깥 기온 35도라서 더워 미쳐버릴 것 같았던 기억은 영상에 담겨있지 않으니 미화되고, 좋은 풍경 보며 푹 쉬었던 기억이 강화되었다.


중요한 사진은 인화해서 본다. 사진이 온라인에만 있으면 불안하다. 가끔 펼쳐보며 추억한다.


이처럼 글, 사진, 영상으로 기록하고 행복을 저장하는데 익숙하다. 하루하루 모든 순간 행복할 수는 없지만,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고 내 것으로 만든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행복은 흘러가지만, 기록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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