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30년째 피부관리샵을 하셨고 내가 엄마와 함께 가게를 꾸린 지는 5년이 넘었다. 함께 가게를 운영하다 보니 우리 단골들은 짧게는 2~3년 길게는 30년째 단골들 이셔서 어릴 때부터 뵈었던 손님들은 보통 이모라고 부르기도 한다. 손님들과 친하면 서로 당당히(?) 요구하는 것들이 생긴다. 간혹 단골 이모가 "새로 들어온 네일 보석이 예뻐 보이네 이거 서비스로 해줘~"라고 하면 흔쾌히 네! 하고 서비스로 붙여드린다. 나도 종종 요구하는 게 있다. 간혹 보험설계사 이모께 신년마다 "새 달력 주세요!"라고 한다던지 위생비닐이나 비닐장갑 같은 사은품을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얼마 전 속눈썹연장 시술을 자주 하시는 단골 고객님은 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에 군것질 많이 한다는 한 달 전 대화를 기억하시곤 "쌤 요즘 빵 자주 먹는다고 했죠!" 하시며 빵을 한 아름 안겨 주시기도 하셨다. 점심때쯤 예약하신 고객님들은 종종 김밥이나 떡 같은 요깃거리를 사 오시기도 하고 커피나 음료 같은 것들을 사 오시기도 하신다. 그 마음들이 어찌나 감사한지 "제가 더 이쁘게 해 드려야겠어요!"라고 화답하곤 한다. 물론 마음이 예뻐져서 심리적 효과겠지만 대부분 시술 결과물이 좋게 나오기도 한다.
하루는 예전에 참석했던 모임에서 알게 되었던 지인분이 오랜만에 예약을 하셨다. 시술을 끝내고 나가시며 주섬주섬 장바구니에서 양파, 당근, 감자를 꺼내 내어 주셨다. "신랑이랑 퇴근하고 카레 해 먹어요." 시장에서 장 보고 오는데 양이 많아 나눠 준다시며 카레거리를 주셨다. 음식의 재료를 몽땅 받은 적은 처음이라 한참 웃으면서 너무 감사하다고 덕분에 저녁메뉴 걱정 안 해도 되겠다며 감사인사를 전했다.
그날따라 오후 예약한 고객님도 주말농장에서 따왔다며 오이를 가져다주셨다. 심지어 저녁엔 엄마의 손님이 전복을 한 박스 주시고 가셨다.
엄마는 전복회를 드신다고 하셨고 나머지는 죽을 쒀서 내일 아침 집으로 가져다주신다 하셨다. 얼떨결에 그날 저녁과 다음날의 아침메뉴가 정해졌다. 먹을 복이 터진 하루였다.
그날 저녁 퇴근길에 정육점에 들러 카레용 돼지고기를 샀다. 남편과 나는 카레를 좋아해서 종종 즐겨해 먹는다. 온 집안에 카레 냄새가 진동을 했고 반찬으론 낮에 받은 오이를 무쳐 냈다. 퇴근하며 냄새만 맡고도 오늘 카레 했어? 하고 밝아지는 남편의 표정덕에 더 기분이 좋아졌다. 카레와 오이무침. 우린 덕분에 기분 좋게 완벽한 저녁식사를 했다. 손님들 덕에 메뉴 걱정 없이 저녁을 해결했다. 더없이 감사한 선물이었다.
요즘 세상이 많이 각박해지고 쌀쌀맞아졌다. 사회적으로도 개인주의화가 곳곳에 퍼져있어 옛날처럼 '정'이라는 것을 흔하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다시 보지 않을 사람들이기에 퉁명스럽게 대하기도 하고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이기에 쌀쌀맞게 굴기도 한다. 혹은 전혀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는 경우도 다반사다.
고객님들 덕에 점점 더 삭막해지는 사회 속에서 가까이에서 정을 나누는 방법을 배웠다. 단골집이라면 용기를 내서 커피 한 잔 정도는 사 가서 서로 기분 좋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 그 효과가 생각보다 크다는 것. 작은 마음 표현으로 여러 사람의 마음이 따뜻해진다는 것.
꼭 물질적인 선물이 아니더라도, 단골 가게가 아니더라도 음식점에서 음식이 나올 때 이모님께 '감사합니다' 한마디 정도 전하고 이웃을 지나칠 땐 '안녕하세요'인사 한번 건네는 건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내일은 출퇴근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이웃이 있다면 인사를 먼저 건네어 봐야겠다. 글을 쓰며 상상만 해도 미소 지어지는 일이 나비효과가 되어 주민들의 마음속에도 미소가 번지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