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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가영 Dec 11. 2023

승리자가 되는 법

이해라는 마법

 굉장히 세련돼 보이는 손님이 오셨다. 아래위로 잘 갖춰진 옷 차림새에 얼핏 보면 30대로 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나도 저 나이가 되면 저렇게 멋지게 하고 다니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멋들어진 옷차림새에 화룡점정으로 선글라스를 이마 위로 꼳으셨다. 코트를 벗으니 여리여리한 몸매에 나이에 맞지 않게 군살 하나 없으셨다. 굉장히 자기 관리를 잘하는 분이신가 했다. 네일을 예약하셨고 자리를 안내해 드렸다. 손님이 예약한 그 달부터 가격인상이 있었던지라 자리에 앉으셨을 때 먼저 가격 안내를 해 드렸다.


 "고객님, 저희가 이번달부터 가격인상이 있어서 미리 안내해 드리고 시술 시작할게요."


손님은 인상을 팍 찌푸리며 말하셨다.


"그래서요? 저 그런 거 상관없는데요? 네일이나 해주세요."


 퉁명 그 자체의 답변에 살짝 당황했다. '가격인상이 되었다고 해서 기분이 나쁘신가? 아니면 가격에 운운하지 않으시는 분인데 본인을 몇천 원에 마음 바뀔 사람으로 인식했을까 봐 기분이 나쁘신 건가? 뭐지? 이 까탈스러움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첫 한마디를 뱉은 후 한동안 뻘쭘한 기분에 아무 말 없이 시술을 진행했다.


"손톱 모양이나 길이는 괜찮으세요?"


"저 그런 거 모르니까 그냥 해주세요."


 여전히 까칠스러운 답변이었다. 글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뾰족했다. 등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나기 시작했다. 한참 뜨거웠던 나이의 나였으면 "고객님 죄송하지만 고객님이 저와 맞지 않는 거 같아서요. 저도 행복하기 위해 돈을 버는데 고객님도 저도 기분 상해가며 관리를 지속할 이유가 없을 거 같습니다. 시술비용은 안 받을 테니 케어만 하고 돌아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했겠지만 꾹꾹 삼키며 오늘 기분이 나쁘실 거야 아니면 무슨 일이 있으셨을 거야 나를 싫어하는 게 아니실 거야라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 되뇌었다.

 고객님의 까칠한 한마디에 상처를 받고 나도 감정이 상하고 그로 인해 나쁜 감정이 샘솟으면 그만큼 시술도 완벽하게 나오지 않게 된다. 그럼 이 고객님이 우리 샵을 재방문하는 일을 절대 없을 것이다. 이렇게 그냥 고객님을 보내면 난 프로가 아니다라고 되뇌었다.


 네일 관리를 하면서 입을 꾹 닫고 시술한다는 건 드문 일이다. 정말 피곤하신 분 이거나 말하기 싫다는 의사를 표현하시는 분들 왜에는 간단히 날씨 질문이라던지 오늘 뭐 드셨어요? 라던지 요즘 뉴스거리라던지 말을 이어가는 게 통상적이다. 그런데 시술 10분이 지나도록 두세 마디만 오가고 정적이 흘렀다. 어떤 말을 하던 부정적인 언어가 돌아올 거 같아서였다. 부정적인 표현을 들을걸 알면서도 고객님께 말을 거는 넓은 아량 따위 소유하지 못한 나는 침묵을 선택했다. 표정을 살피는 일도 포기하고 이미 디자인을 골라 오셨기에 오로지 손톱만 바라보며 시술했다.


 한참관리를 진행하던 중 고객님의 전화가 울렸다. 통화 음량을 얼마나 크게 해 놓으신 건지 휴대폰을 넘어 나에게까지 통화내용이 들렸다.


 "몸은 좀 괜찮아? 어디야? 밖인 거 같네?"


 "어. 밖. 네일 한다. 잠시 나왔다 병원 답답해서."


 아차 싶었다. 아프신 분이시구나. 나에게만 딱딱하게 구는 게 아니셨다. 지인분으로 보이는 전화 상대에게는 간결한 대답 그 외에는 어떠한 붙임도 없었다.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뇌질환으로 꽤 오랫동안 큰 병원에 입원해 계신 것 같았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얼핏 들은 바로는 상당히 몸이 안 좋은 상태인 것 같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병간호를 해온 경험으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프면 예민하다는 것을.


 갑자기 손님을 바라보던 내 뾰족한 마음에 가시가 다 뽑혔다. 시술 내내 계속 퉁명스럽게 말씀하시고 나가실 때조차 다시는 안 오실 거처럼 나가셨지만 영업시간을 물어보고 명함을 가져가셨다. '역시 아프셔서 예민하셨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나 스스로가 참 간사하게 느껴졌다. 아프시다는 사실을 모를 때는 퉁명스러운 대답에 기분 상해했다가 아프시다는 걸 알고는 태세전환으로 안쓰럽게까지 느껴지는 마음이 부끄러웠다.


 손님이 나가시자 피부관리실에서 일하시던 엄마가 나오셔서는 말씀하셨다.


"왜 저렇게 말을 못되게 하니? 근데 넌 잘 대처하더라?"


 의외라는 듯이 쳐다보셨다.


 "뇌 쪽으로 아프신가 봐 통화하는 거 들었는데 그렇데 아프니까 예민한 거겠지."


 " 아프면 원래 좀 예민해 게다가 뇌 쪽으로 아픈 거면 더 예민해. 잘 대처했네."


 20살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인 나를 아직도 어린애 보듯 하나하나 신경을 쓰시는 엄마다. 많이 컸네? 하는 투로 말씀하시기에 웃어넘겼다.


 아프다는 게 누구에게나 무례할 수 있는 특권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아픔으로 인한 예민함 정도는 너그럽게 이해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말하면 아프지도 않은 사람들이 평소에 무례하게 구는 건 어떻게 하냐라고 혹자는 얘기할 수 있다. 우리는 마음속에 결핍하나, 상처하나쯤은 안고 살아가니 다들 아프다는 가정하에 무례함을 무작정 이해하자기 보다는 무례함에 못 미치는 예민함을 조금 이해해 보는 건 어떤가 하고 생각해 본다.

 여유로운 마음에서 친절이 나오고 느긋한 마음에서 배려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초단위로 달려가는 바쁜 일상 속 얼굴을 찌푸리는 이웃이 있다면 조금 천천히 둘러갈 여유로운 마음을 소유한 자가 승리자인 게 아닐까

 나도 오늘은 이해라는 마법 같은 힘으로 승리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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