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 엄마 아빠가 각자의 삶을 찾기로 하며 이혼을 하셨다. 그 덕에 난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고등학교 1학년때까지 아빠와 살았다. 아빠는 소위 말하는 '엄마 없는 티'가 나지 않게 최선을 다해 주셨다.
소풍날. 난 소풍날이 가장 힘들었다. 아무리 잘해주신다고는 하시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직접 도시락을 싸주시진 않으셨다. 직접 도시락을 싸는 수고스러움 대신 '김밥천국'에서 김밥을 사다가 도시락통에 다시 담아 주는 걸 택하셨다. 나름 엄마 없는 티를 내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었으리라.
소풍날 점심시간이 되어 친구들과 옹기종기 둘러앉아 도시락을 꺼낸다. 보통 다 비슷비슷하다. 김밥이나 유부초밥 또는 주먹밥이 담겨있다. 종종 간식거리를 예쁘게 싸 오는 친구들은 다른 친구들의 부러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난 과일이나 예쁘게 담긴 주먹밥은 한 번도 부러운 적이 없었다. 단 하나 내 눈에 들어오는 건 흑미 유부초밥이었다. 예쁜 주먹밥이나 김밥이나 유부초밥은 여기저기 파는 곳이 많았다. 저들도 나와 같이 아침 일찍 분주하게 가게에서 사다가 도시락통에 담았으리라 애써 치부해 버리면 마음이 조금 나았다. 그런데 '흑미 유부초밥'은 그야말로 엄마의 손길이 담긴 집에서 만든 도시락이었다.
처음 흑미 유부초밥을 마주한 나는 꽤 충격을 먹었다. 하얀 밥에 고명이 섞인 노르스름한 유부초밥이 아니라 검은 쌀이 툭툭 박혀있는 흑미 유부초밥이라니. 이내 이어진 생각은 '아 저건 정말 집에서 만든 엄마의 손길 이겠구나.'였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부러움이라는 감정이었다.
겉으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엄마와 떨어져 산다는 것이 나에겐 큰 결핍이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는 모든 부분에서 티가 났으니 말이다. 다행히 중학교 이후로는 '다 컸으니'라는 프레임이 붙어 김밥천국을 애용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도시락통에 다시 담는 수고스러움 없이 하얀 스티로폼 도시락통이나 은박지에 싼 김밥을 검은 봉지에 넣어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흑미유부초밥은 초등학교 시절 한정 나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결혼을 하니 남편이 유부초밥을 좋아한다고 했다. 요즘 유부초밥 전문점에서 파는 토핑 잔뜩 올라간 그런 유부초밥 말고 마트에 파는 유부초밥 밀키트로 만드는 투박한 유부초밥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난 한 달에 두세 번 유부초밥을 해주곤 한다.
그때 그 시절이 추억으로 남았는지 유부초밥을 할 때면 꼭 흑미를 섞어 밥을 짓는다. 고슬고슬 지은 흑미 섞인 밥에 밀키트에 있는 꼬들단무지, 야채후레이크, 참기름등을 넣고 잘 섞어 유부에 끼워 넣는다. 역시 흑미로 만든 유부초밥은 그리 입맛을 자극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저 집밥의 표본처럼 보이기는 한다.
투박한 유부초밥은 나의 어린 시절의 결핍이었다가 이젠 누군가를 위한 애정의 표현이 되었다. 사실 어린 시절에 본 흑미유부초밥도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이 담긴 사랑의 음식이었는데 나의 마음이, 나의 시선이 그것을 결핍으로 치부해 나에게 닿았다.
누군가에겐 흑미 유부초밥이, 누군가에겐 삐뚤빼뚤한 주먹밥이, 누군가에겐 옆구리 터진 김밥이 또 누군가에겐 김밥천국의 김밥이 사랑의 징표다. 애석하게도 나는 결혼을 하고 흑미 유부초밥을 직접 만들어 보고 난 후에야 김밥천국의 김밥이 사랑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는 먹을 수 없는 아빠가 사다준 김밥천국의 김밥이 왜 그리 맛있었는지. 내가 사 먹으면 왜 그 맛이 나지 않는 건지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조금 늦었지만 아빠,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