쩝쩝박사가 되고 싶은 할머니 입맛 20대
내 입맛은 그야말로 '할매 입맛'이다. 파스타, 스테이크, 치킨, 피자 이런 것들 보단 새우젓 넣고 푹 끓인 호박 조림, 무와 무청 가득 넣은 고등어조림, 새콤달콤하게 양념된 양념깻잎 이런 것들이 내 입맛을 돋우곤 한다. 외식을 고민할 때면 자갈치 시장의 고등어 정식(고등어구이와 간단한 반찬, 시래깃국)이나 깡통시장의 간판 없는 김치찌개 집(보리밥, 상추, 비게 섞인 고기 김치찌개), 중앙동 전주식당의 돌솥밥(돌솥밥, 날달걀, 생선구이) 가게가 떠오르지만 현재 연제구에 사는 관계로 입맛만 다시며 포기하곤 한다.
입맛의 고령화라고 해야 할까 내 주변 친구들은 다들 내 입맛이 살찌기 딱 좋은 한식 나트륨 식단이라고 한다. 샐러드에 수프에 삶은 계란 보단 지글지글 구운 고등어 한 점에 콩나물 무침과 밥 한 그릇이면 행복한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의견이지만. 몸매 관리를 위해 야채 위주로 건강하게 먹어야 한다고 주변 친구들이 막 잔소리할 때면 머릿속에선 반항의 모터가 돌아간다. 야채를 먹는다고 건강한 식단일까? 한국인은 밥심이라지 않는가 든든하게 먹어야지!
종종 친구들을 데리고 숨은 맛집을 핑계로 '내 입맛'에 정형화된 맛집들을 데려가곤 한다. 연산 토곡의 갑산해장국이라는 가게가 바로 그 집들 중 하나인데, 간판의 갑산해장국은 온 데 간 데 없고 냉동삼겹살을 파는 가게다. 1인분 4000원이라는 가격에(사실 나오는 양을 보면 결코 저렴하지 않다.) 냉동 삼겹살이 나오는 집인데 할머니 할아버지 두 분이 운영하시고 종종 아드님이 가게에 오셔서 일손을 돕곤 하신다.
여러 번 가니 여자 사장님도 나를 알아보시곤 "니 오랜만에 왔네!" 하시며 반겨주신다. 그 아는 척이 얼마나 정겹고 반가운지 항상 해주시는 인사가 감사하다.
밑반찬으로 6~7가지가 나오는데 파래무침, 콩나물 무침, 감자채 볶음, 콩자반 등 모든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내어 주신다. 가스버너에 포일 두른 돌판을 올리고 열을 올려 냉동 삼겹살을 굽는데 알루미늄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등의 걱정 따위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노릇노릇하고 윤기 좔좔 흐르는 그것을 보고 있자면 또 흰쌀밥이 생각이 난다. 흰쌀밥에 참기름장에 찍은 삼겹살 한점, 파채 무침. 하루 아니 일주일 일한 피로가 기름과 함께 쓸려 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또 흰밥 하면 빠지면 안 되는 삼겹살의 친구 된장찌개! 이 집은 특이하게 흔히 불리는 고기 먹은 후 식사용 '고기 된장'이 따로 없다. 백반집의 된장찌개처럼 중간 사이즈의 뚝배기에 된장찌개가 한소끔 끓여 나오는데 가격은 6000원 하지만 값이 아깝지 않은 맛이다.
사실 연제구로 이사 온 뒤론 정착하며 자주 방문하는 나만의 맛집이 잘 없다. 그중 찾은 몇 없는 맛집으로 정감 가득하고 할머니의 손맛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식당이 바로 위의 식당이다. 나의 맛집 기준엔 여러 맛집러들이 고수하는 재료, 위생, 맛, 가격 이런 표면적 이유보단 '정'이라는 특이 요소가 가장 많은 점수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델몬트 유리병에 나오는 보리차 라던지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좌식 테이블이라던지 세월의 풍파를 고스란히 안고 가는 그런 추억적인 맛, 정의 맛 그런 맛이 내 기준 진정한 맛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