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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가영 Sep 26. 2023

말 한마디의 무게

"넌 그게 참 잘 어울리네"의 이중성

 40평이 좀 안 되는 로드샵을 오픈한 지 5년이 넘어간다. 추석을 앞두고 한가해진 샵을 보며 한숨만 푹푹 쉬어지던 어느 날 문득 전에 일하다 그만둔 직원이 생각났다. 갓 자격증만 따서 취직을 해보고 싶다며 알바천국에 올려진 공고를 보고 면접을 왔던 23살의 밝은 친구였다. 미용과를  갓 졸업한 그 친구는 '자격증에 잉크도 채 마르지 않았지만 열심히 하겠다'라고 했다. 난 당장 일손이 급했기에 그래 가르치며 맞춰가면 된다라고 안일한 생각을 했고 그 친구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날 술을 잔뜩 먹고 지각하는 건 다반사였고 이 친구가 손댄 손님의 80%는 컴플레인으로 재방문 보수작업을 했어야 했다. 그때마다 '괜찮아 원장은 나니까 내가 책임지면 돼 내가 보수할게' 라며 다 감싸줬다. 열심히 연습을 시키고 가르쳐 줘도 그 친구의 실력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이 친구.. 네일이 맞지 않는 게 아닐까..? 그만두라고 얘기를 해 봐야 하나?'


 아차! 내가 미친 생각을 했구나.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더니 내가 꼭 그 꼴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21살 여름, 나는 미용과에 재학 중이었고 졸업을 위해 '실습시간'이란걸 채워야 했다.  그 당시 난 미용을 꼭 해야 하는지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건지 갈팡질팡 하고 있던 시기였기에 실습을 나간다는 것 자체에 굉장한 부담감을 안고 있었지만 어쩌겠는가 졸업은 해야 했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교수님이 배정해 주신 샵에 가서 실습을 하기로 했다.

 사실 엄마가 피부관리샵을 운영하고 계셔서 쉽게 쉽게 실습확인서를 제출할 수 있었지만 우리 엄마는 그리 호락호락하신 분이 아니었다. '난 모르쇠 너 알아서 하세요.'라며 나를 그 무시무시한 미용계에 내 던지셨다. 부딪혀 봐야 한다는 신념 가득한 분이셔서 그 어떤 나의 조잡한 설득으론 끄떡도 않고 밖으로 내미셨다.


 오전 9시 50분, 집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그 샵에 나는 첫 실습을 나갔다. 쭈뼛쭈뼛 문을 여니 풍경종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풍채가 있으신 원장님과 아침부터 안 좋은 일이 있으셨던 건지 20살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언니들이 그다지 좋지 않은 표정을 숨기지 않은 채 나를 쳐다봤다.

"저.. 실습하러 왔는데요."

원장님은 한 언니를 지목하더니 "오픈청소 가르쳐줘라."한마디 하시곤 자리를 뜨셨다. 다른 언니들도 그저 하던 일을 계속했다. 지목된 언니는 나를 데려가서 수건정리, 웨건정리, 룸정리등을 빠르게 가르쳐 줬고 나는 연신 "네, 네"만 반복했다. 여태 수많은 알바를 했지만 서로 인사도 없이 이렇게 정적이고 무거운 분위기의 일터는 처음이라 긴장감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6시간이 흘러 퇴근을 했고 엄마의 "실습은 어땠니?"라는 질문에 "뭐, 괜찮았어. 어차피 2주만 버티면 되는데 나쁘지 않았어"라고 대답했다.


 다음날, 아침을 먹지 않고 출근을 한 덕에 점심이 굉장히 기다려졌다. 여전히 어리숙하게 어찌어찌 오전시간이 흐르고 점심시간이었다. 점심을 기대한 나는 조금 들떠있었다. 원장님은 익숙한 듯 백반집에 전화하셔서 3인분을 가져다 달라고 했다. 주문한 백반이 배달되고 직원들과 나와 원장님은 식탁에 둘러앉았다. 우린 5명이었다. 원장님은 냉장고에서 냉동 다이어트 도시락을 꺼내 전자레인지에 돌리셨다. 직원들은 익숙한 듯 하나씩 밥그릇을 잡고 샵에 있던 밥그릇 하나를 들고 와 한 숟가락씩 옮겨 퍼 담아 한 그릇을 더 만들었다. '아 이래서 3인분만 시키셨구나. 절약을 하시는 건가?' 그렇게 부족한 듯 눈치 보이는 점심을 먹었다. 이런 게 눈칫밥인가 보다. 내가 진정한 사회생활을 하고 있구나 생각했다.


며칠뒤, 여지없이 시끄러운 풍경소리만이 날 반겨주는 샵에 출근해서 어제 배운 대로 오픈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장님은 나에게 다가와서 인상을 팍 쓰시며 "넌 양말을 신던가 패디큐어를 하던가 왜 더럽게 맨발로 다니니"라고 핀잔을 주시곤 또 사라지셨다. 여름이었고 샌들을 신고 출근했으니 당연히 맨발이었고 실내화를 신으니 양말은 신지 않아도 된다고 혼자 어림짐작한 내 실수였다. 그날 점심, 점심을 급하게 먹고 편의점으로 뛰어가 양말 하나를 사 신었다.


그렇게 일주일간 나는 말로만 듣던 고된 사회생활을 견뎌 냈다. 일주일간 들은 핀잔을 글로 적어 줄을 세우면 웬만한 산 정상은 찍을 거 같았다. 그 나이 먹도록 편의점 택배는 왜 보낸 적이 없냐, 프라푸치노 심부름에 초코칩을 왜 빼지 않았냐 같은 샵일과는 전혀 연관 없는 다른 류의 핀잔이었다. 난 그게 뭘 잘 모르는 사회 초년생이기에 당연히 듣는 핀잔의 일종인 줄 알았다. 어떤 일이든 다 초보는 있는 거니까. 이렇게 겪어야 성장하는 줄 알았다.


 실습 마지막날, 그날따라 유독 난 출근이 하기 싫었다. 그 덕에 미적거리다가 택시를 타야 했고, 택시를 타고 출근하면서 "내가 탄 이 택시가 사고가 났으면"하고 생각했다. 마지막날인데 '오늘 하루만 참으면 끝이다'라고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며 무거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김없이 시끄러운 풍경소리만 들렸고, 나의 출근은 그 누구의 눈길도 사로잡지 못했다. 내 몫의 점심을 다 먹고 언니들이 다 먹고 일어선 식탁을 치우고 있었다. 당연히 막내가 해야 할  분위기였기에 난 빨리 먹어도 그 자리를 뜨지 못하고 기다려야 했다.

 훨씬전에 먼저 먹고 일어섰던 원장님이 식탁으로 오셔서는  왜 이렇게 굼뜨게 치우냐는 둥 밥을 빨리 안 먹는다는 둥 또 핀잔을 이어가셨다. '제가 늦게 먹은 게 아닌데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오늘만.. 오늘만 참으면.. 을 되뇌며 꾹 참았다. 그러곤 원장님은 내게 물었다.

  "넌 미용을 왜 하니?"

순간 울컥했다. 2주간 받은 서러움이 한순간에 물밀려 와 나를 덮쳤다.  그간 내가 갈팡질팡하며 미용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던 숱한 시간들도 나를 덮쳤다. 참았던 눈물이 나도 모르게 주르륵 흘렀다. 원장님은 눈물을 훔치는 나를 보고선 쓱 비웃는 듯한 실소를 내비치시더니 말을 이어가셨다.

 "너 같은 애들은 미용하면 안 돼. 이게 쉬운 줄 알고 막 덤볐나 본데 너랑 안 맞는 거 같으니 빨리 다른 길 찾아라."

서러웠다. 나름 열심히 하려고 했는데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 이런 거라니 21살 평생 처음 느껴보는 억울함과 서러움이었다. 그전에 했던 거나 잘했던 거 없냐는 원장님의 질문에 글 쓰는 걸 좋아하긴 해요라고 답하니 화색을 뛰시며 "넌 그게 참 잘 어우리네 그거 해. 잘 어울린다"며 웃으셨다. 아니 비웃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런 결론을 위해 나에게 그렇게 핀잔을 주신거구나.


  그날 퇴근을 하며 다시 한번 서러움에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엉엉 울면서 2주간의 서러움을 토해냈다. 엄마는 그 샵이 어디냐며 여러 쌍욕들을 하면서 당장이라도 그 샵을 불 찔러 버릴 기세로 나를 대신해 화내주셨다. 고마웠다. 엄마로 써가 아니라 미용 선배로써 든든한 내편이 있다는 것에 대한 든든함과 감사함이었다.

실습이 끝나고 다짐했다. '그 샵' 방향으론 똥도 안 싸야지. 내가 다음에 샵을 차리면 밥으로는 절대 사람 무시 안 해야지. 후로 며칠간 난 내 친구들에게 안주삼아 원장의 험담을 하며 서러움을 덜어냈다. 그 시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였다.


 얼마뒤, 실습했던 샵에서 일하던 언니가 연락이 왔다. 그 샵을 그만뒀다고 했다. 그러면서 전해 준 말이 내가 실습 가기 전엔 본인이 그렇게 당했다고 한다. 일종의 그 샵의 텃새 같은 거라고 했다. 밥도 일부러 덜어주는 게 눈칫밥 먹이는 방법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사회 초년생들에게 그렇게 모질게 하고 싶을까. 본인들도 언젠가 사회 초년생이었지 않은가. 아님, 그 시절 당했던 걸 지금 와서야 갚아주는 걸까? 악습의 대물림 같은 건가? 모르겠다. 그들의 속내를 감히 짐작하기도 싫다. 언니와의 연락을 통해 다시 한번 다짐했다.

'난 절대 그 샵 사람들처럼 하지 않아야지.'


사람은 경험하고 깨닫지만 또 욕심으로 인해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나 역시 그럴 뻔했다. 실수의 반복이란 얼마나 멍청한 짓인가. 게다가 그렇게 다짐하고 다짐했던 '그 샵 사람들처럼 되지 말아야지'를 깨버릴 뻔했다. 내 말 한마디로 이 친구의 미래가 바뀔지도 모르는데 평생 후회할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내가 뭐라고 그 친구의 미래를 단정 지을 것인가. 난 아직도 그 원장이 비웃으며 "글 쓰는 거 참 잘 어울리네, 그게 해!"라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하마터면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 악몽이 될 뻔했다.


 실수의 말을 전할 뻔했던 그 직원은 지금 어엿한 원장이 되어 다른 곳에 작은 샵을 차렸다. 가끔 '원장님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어요."라는 전화가 오곤 한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큰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올챙이었던 시절이 떠오른 게 얼마나 다행이던지 이 친구랑 연락이 닿을 때마다 그때 실수 할 뻔한 게 생각나 가슴을 쓸어내리곤 한다.


 이젠 새로운 친구가 오면 "너 참 이 일과 잘 어울린다!"라고 얘기해 준다. 이 직업을 계속할지 안 할지는 본인의 선택이고 그냥 뒤돌아 봤을 때 내 말 한마디가 긍정적인 힘을 주진 않을까? 하는 바람에서다.

  난 비록 같은 뜻의 잘 어울린다를 듣진 못했지만 그 시절의 내가 너 참 잘 어울리네를 긍정적인 뜻으로 들었다면 어땠을까? 조금 더 빨리 자리 잡을 수 있었을까?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았을까? 방황의 시간을 조금 덜 느끼진 않았을까?

  내 과거의 모진 말로 인한 상처가 경험이 되어 다른 이들에겐 모질지 않은 말을 할 수 있는 스킬을 터득한 것 같다.


모든 이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소소한 꿈을 이루기 위해 나는 오늘도 말조심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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