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께 배운 감사 인사
84세 할아버지께 90도 인사받은 경험.
가게를 오픈 후 예약손님을 기다리던 어느 날 오후 계단에선 손님들이 올라오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렸다. 나이가 꽤 지긋하신 어르신의 양팔을 50대쯤 되어 보이는 남자두분 이서 부축하며 가게로 들어오셨다. 알고 보니 얼마 전 sns로 손녀분이 문제성 시술을 문의하시고 아드님 두 분이 할아버지를 부축하며 가게로 오신 것이었다.
"발톱이 찔러서 걷지를 못해요, 선생님이 고쳐줄 수 있나요?"
어르신의 예의 그 자체의 물음에 요 며칠간 스트레스마저 녹아내리는 따스한 기분이 들었다.
발톱 상태를 보니 무좀과 내성발톱이 동시에 진행되어 주변 살로는 염증이 차서 붉게 부어오르고 있었고 발톱은 꽤 두꺼워지고 노랗게 변질되어 있었다.
시술 전 메디컬 히스토리를 알아야 했기에 간단한 설문을 했다.
84세, 당뇨와 고혈압이 있으시고 심장수술을 하셨다고 했다. 보통 연세가 많으시고 병변이 있으시면 시술을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시술을 하더라도 재생능력이 현저히 떨어지기에 나아진다라고 기대를 하기는 어렵다.
할아버지께 "지금 당장 아프신 건 아프지 않게 도와드릴 수 있지만 무좀이나 내성발톱의 완벽한 개선은 어렵습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다 늙어서 많은 걸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요, 아파서 걷질 못하니 그것만이라도 해결해 주세요."
라고 하셨다.
곧바로 시술을 시작했고 찌르고 있던 발톱을 걷어내고 추후에 발톱이 자라 나와도 관리하실 수 있도록 정리를 해 드렸다. 등 뒤에선 아버님 발을 시술하는 동안 두 아드님과 며느님, 손녀분이 어깨너머로 관찰(?)을 하셨다. 그러면서 첫째 아드님으로 보이는 분이 말씀하셨다.
"우리가 아버지 발을 자세히 본 적이 있던가? 그저 불편하시다 하셔서 어디 관절이나 안 좋은 줄 알고 건강식품만 사다 드렸지 이런 이유로 발이 아프신지, 개선법이 있는지 우린 알지도 못했네
그러고 보니 아버지 손녀가 참 큰일했네요."
시술이 다 끝난 후 할아버지는 발이 더 이상 찌르지 않는다고 말씀하시곤 부축해 드리려는 아드님 두 분을 제지하시곤 혼자 걸어 다니시며 웃으셨다. 마치 '나 이렇게 잘 걸어!'라고 자랑이라도 하시듯.
그리곤 나에게 오셔서 90도로 인사하셨다. 당황한 나는 어정쩡한 자세로 같이 90도로 인사했다.
할아버지는 가게를 나가실 때까지 몇 번이고 뒤돌아 내게 고개 숙여 인사해 주셨다.
" 선생님 참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보다 연세가 지극히 많으신 분께 선생님이라고 불린 것도 그런 분께 인사를 그것도 무려 90도 인사를 받는다는 경험을 처음 한 나는 굉장히 황홀한 느낌에 몸 둘 바를 모르고 활짝 웃으며 배웅해 드렸다.
예상 못한 첫 경험에 간질거림과 뿌듯함이 함께 찾아와 나를 저절로 미소 짓게 만들었다.
가게를 오픈하고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고객님들을 상대했다. 가게 오픈전부터라고 친다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정말 수많은 고객분들이 있었고 그중에는 나를 울게 하는 분도 웃게 하는 분도 계셨다. 그런데 내게 따뜻한 가르침을 주신 분은 처음이었다. 울리지도 웃기지도 않으시고 감동을 주셨다. 일을 하며 수많은 뿌듯함이 있었지만 이번엔 다른 종류의 뿌듯함 이였다. 따뜻한 뿌듯함이랄까.
감사함의 표현을 정중히 하실 줄 아는 분께 배운 감동이었다. 익숙함을 핑계로, 당연함을 핑계로 그간 감사함을 표현하는데 인색하게 굴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내가 가진 게 많다고 아는 게 많다고 오만해지기 쉬운 세상이다. 결코 다 가진 게 아닌데 말이다. 오만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매일을 감사하게 살아야 함을 다시 한번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