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IT 프로젝트의 사업 수행사에서는 논쟁이 많은 요구 사항 정의 단계에서 소형 녹음기로 회의를 녹취하기 시작했다.
물론 다른 업무 분야에서는 이미 그런 관행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내가 경험했던 IT 프로젝트 사업에서는 그렇게 흔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불쾌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곧 익숙해졌고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근래 1~2년 사이에는 소형 녹음기 대신 휴대전화를 활용해 녹취하는 경우가 늘었고, 음성 인식과 텍스트 변환 기능까지 보편화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여기에 더해, 전체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기능까지 갖추며 진화하고 있다.
소위 말하는 ‘AI 회의록’ 프로그램이다. 요즘은 회사에서 뿐만 아니라 개인들도 흔히 사용하고 있는 추세라 새삼 놀랄 일도 아니다. 통신사가 제공하는 기능만으로도 휴대전화 대화 내용을 녹취하고 정리해 주고 있으니, 어쩌면 이야깃거리도 아닌 듯하다.
현재 회사에서는 회의록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 중이다. 앱을 설치하거나 휴대전화 기본 기능을 활용해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므로 시범 운영의 필요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실제로는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우선 기술적·법적 보안 이슈를 생각해 봐야 된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의 프로그램들은 매우 우수하고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우리의 대화내용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많은 사용자들에 의해 검증된 우수한 프로그램임에도 선뜩 사용하기가 망설여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프로젝트 진행 중 녹취 프로그램을 공공연히 사용하는 것은 매우 신중을 요한다.
내부 직원의 음성이나 회의 내용이 외부 클라우드 사업자에게 유출될 수도 있고, 과도한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 의해 중요한 정보가 노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내 인프라를 기업용 클라우드로 전환하는 사업을 검토한 적이 있다. 제안을 했던 서비스 제공업체에 프라이빗 클라우드(Private Cloud, 특정 조직만을 위해 독립적으로 구축된 환경)로 구성된 서버나 DB 자원의 물리적 위치가 어디인지 문의했는데, 철저한 접근 통제와 보안이 적용되므로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만 들었다. 즉, 기업용 클라우드 제공업체조차 클라우드의 가상화·분산화 구조 특성상 국내외 서버의 위치(리전)를 특정하지 못했다. 이는 정보보호 관점에서 볼 때 다소 모호하며 위험요인이 된다.
두 번째는 구성원들의 심리적 거부감을 들 수 있다.
때로는 설전을 벌여야 할 때도 있고, 허세를 부릴 필요가 있을 때도 있다. 그러나 모든 발언이 기록되고, 문제가 될 경우 책임 소재를 다퉈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위축될 수 있다. 더불어 회의 참여 태도나 토론 내용을 감시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오해도 받을 수 있다. 이는 자유로운 토론을 제한하는 요소가 되어 창의적 아이디어 도출에 제약을 줄 수 있다.
또한 회의 내용이 형식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문제도 있다. 따라서 시스템 도입 시 오인식된 발언이나 취지에 대해 개인이 직접 정정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회의록의 고유 기능인 ‘결정 사항과 책임 주체의 기록’을 부정할 수 없는 만큼, 구성원들이 발언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녹취가 끝나게 되면 발언의 내용을 텍스트로 변환하면서 정리를 합니다.
회의 내용의 요약 정도도 조절을 할 수 있어, 상세한 내용을 원하면 요약 수준을 낮추면 됩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을 소개하던 팀장은 뿌듯함과 성취감에 도취한 듯 이야기했으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무관심해 보였다.
"최종 회의록이 만들어지면 영구적으로 보관할 거 같은데요.
녹취 파일이나 내용도 마찬가지인가요?"
역시 회의 참석자의 발언이 모두 녹취되어 보관된다는 사실이 부담스럽다는 점이 분명했다. 다만 보관 기간을 설정할 수 있고, 기한이 지나면 삭제할 예정이라는 답변에 불편하던 표정이 다소 누그러지는 듯했다.
AI를 활용한 회의록 프로그램은 '회의록 기록 관리·업무 효율화'만 놓고 보면 매우 우수해 보였다. 화자에게 모두 공유할 수 있는 기능은 물론, 회의록의 체계적 관리와 다국어 지원까지 갖추어 실용적 측면에서 흠잡을 데가 없었다.
다만 이런 시스템의 도입으로 인해 발언이 위축되고 프라이버시에 대한 부담이 생길 수 있는 만큼, ‘감시’가 아닌 원활한 업무 지원을 위한 ‘기록 도구’라는 공감대가 무엇보다 필요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