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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골방우주나 Jul 30. 2019

나지막이 펼치는 소설

영화 <누구나 아는 비밀>

*해석은 개인의 차이가 있습니다

 서사의 진행에 있어서, 널리 쓰이는 매끄러운 표현 방법의 하나는 장르의 공식을 따르는 것이다. 장르는 그 자체의 클리셰라는 어떤 '상상력의 풀'을 제공한다. 이 '풀'은 관객이 영화에서 생략된 부분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가령 뜬금없는 조력자가 '여느 히어로 영화처럼' 등장하는 일종의 정당성을 얻는다. 이러한 장르의 도움을 받기 위해서는 장르가 제시하는 어떤 공식을 지켜야만 한다. 정석과도 같은 그 서사의 흐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장르는 영화가 촬영되는 실제 시공간과 충돌하기 마련이다. 장르는 어떤 하나의 시대적 상황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영화들에서 이 '충돌'은 번뜩이는 전환을 선사한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가족에 관한 영화다. 칸이 사랑하는 주제인 만큼, 2018년 칸 영화제의 개막작으로 선정되었던 영화다. 국내에 개봉하는 건 다소 시기가 늦지만, 이 영화는 개봉하는 시기에 크게 좌우되는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의 감독, 아쉬가르 파라디는 <세일즈맨>,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로 유명한 이란 태생의 감독이다. 아카데미와 칸, 베를린 국제 영화제를 넘나드는 그의 수상내역은 연출에 대해 기대를 하게 한다. 거기다 페넬로페 크루즈와 하비에르 바르뎀이 주연을 맡아 탄탄한 기반도 마련했다. 그리고 영화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이 영화의 줄거리에 있다시피, 영화는 라우라의 딸 이레네가 납치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그러나 이레네가 납치되기 전까지의 상황은 만연한 축제이다.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고향으로 향하는 라우라 가족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된다. 라우라가 고향에 도착하며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라우라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녀의 오랜 친구 파코도 와서 라우라에게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 이내 결혼식이 시작된다. 교회에서 열린 결혼식은 수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서 성대하게 진행된다. 아름다운 마을을 배경으로 축제는 끝없이 흥겨워진다. 

 놀라운 점은 무려 30분 정도나 되는 시간을 영화가 이 결혼식에 할애한다는 점이다. 결혼식이라는 큰 상황이 진행되는 동안 영화는 라우라를 중심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딸이 납치되는 영화를 보러 갔는데, 결혼식 장면이 30분이나 나온다면 의문이 들지 않겠는가? 도대체 이 결혼식이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다. 감독은 쉽게 지루해질 수 있는 이 초반부를 적절한 유머와 인물 관계의 형성을 엮어낸다. 그리고 이러한 서사의 진행은 나지막이 밑그림을 그려낸다. 전반부의 이야기는 후반부의 이야기와 단절되지 않은 채 적절하게 이어진다. 딸이 납치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든 모르든, 어떤 미묘한 불안이 정적인 카메라에 담긴 채 점차 펼쳐진다. 그들의 축제에 발을 담그고 같이 놀다 보면 어느새 싹 식어버린 미스터리를 마주하게 된다.


*주의 : 아래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내용이나 주요대사에 대한 글이 있습니다


 

 이레네의 납치는 돌연 일어난다. 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은 여느 미스터리 영화를 따르는 듯하면서도 인물들 각각의 감정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기에 사건을 해결하려는 움직임은 굼뜨다. 가족들은 이레네의 납치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경찰에 신고할지 말지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내놓을 뿐이다. 그리고 범인이 면식범일 것이라는 추측이 제시된다. 이 추측은 주변 가족들을 의심하게 만든다. 가족들을 신뢰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미스터리의 탈을 쓴 드라마가 된다. 느릿한 사건의 진행 속도는 가족들의 말과 행동에 집중하게 만든다. 그리고 면식범이라는 추측은 가족들에게도 의심의 실마리를 제공함으로써 납치 사건의 전후에 서술된 가족들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게 만든다. 이러한 미스터리한 불안은 앞선 미묘한 불안을 이어가며 인물 관계에 대한 정보를 더욱 곱씹게 만든다.

 라우라의 남편, 알레한드로가 등장하면서 인물 관계는 더 극적으로 흐른다. 그리고 라우라와 파코가 서로 사랑하던 사이었다던 '누구나 아는 비밀'은 이 미스터리를 풀어갈 유일한 단서가 된다. 이레네가 파코의 아이고 이 사실을 알레한드로 또한 알고 있었다는 점은 파코와 알레한드로가 가진 갈등을 증폭시킨다. 이 '드라마틱한' 상황은 미스터리의 해결을 이끄는 열쇠가 된다. 하지만 이 상황에 이르러 중요한 것은 미스터리의 해소가 아니라 드라마의 열렬한 진행이다. 미스터리는 드라마의 극적인 완전성을 보조하는 일종의 도구로 전환된다. 그리고 그제야 영화가 계속해서 인물들의 서사와 드라마를 조명하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누구나 아는 비밀'

 이런 장르의 활용은 독특한 미쟝셴으로 극대화된다. 이 영화에서 감독은 따로 미술을 차리지 않는다. 달리 말해, 영화에서 미술이 '그럴듯해 보이도록' 하는 것이라면 이 미쟝셴에서 미술은 '있는 것의 모음'이다. 이 영화가 잡아주는 탁월한 장면 미술은 파코 부부가 집에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을 때이다. 파코와 베아가 돈을 주는 문제를 두고 갈등할 때, 파코는 어두운 집안에 있고 베아는 문틀 너머로 펼쳐진 포도밭을 후경으로 두고 서 있다. 두 사람의 강렬한 명암 대비는 물론, 공간을 분리하는 이 구도는 이들의 갈등을 아름답게 장면에 녹여내고 있다. 또한, 후경으로 넓게 펼쳐진 포도밭이 더는 파코가 소유할 수 없는 공간임을 드러낸다. 파코는 문과 포도밭을 등지고 있고, 결국 문밖으로 나가 포도밭을 지키고 싶은 베아에게서도 등을 돌린다.

 <누구나 아는 비밀>은 장면의 구도와 미술, 그리고 인물 간의 관계와 갈등으로 영화를 구축한다. 이렇게 구축된 영화는 사실적이면서도 실제적인 시간을 관객에게 선사하고, 그 시간 속에서 관객은 더욱 영화 안으로 뛰어든다. 다시 인물 간의 갈등은 영화에 풍부한 깊이를 만들어내며 그 시간을 가득히 채운다. 이 영화는 드라마를 극적으로 열렬히 피워내지 않는다. 다만, 느지막이 영화의 시간을 따라다니다 보면 열렬히 타고 남은 드라마의 진한 잔향을 만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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