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현실로 만드는 촬영 방식에 관하여
임마누엘 루베즈키는 멕시코 출신 촬영 감독이자 아카데미 촬영상을 무려 3년 동안(2014~2016) 독식한 '핫'한 감독이다. 루베즈키 촬영감독은 [칠드런 오브 맨]에서 만났던 알폰소 쿠아론 감독과 함께한 [그래비티]를 찍고 촬영상을 수상했다. 이후 마찬가지로 멕시코 출신 감독인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과 함께한 [버드맨], [레버넌트]를 찍으며 3년 연속 촬영상을 거머쥔다. 루베즈키 촬영감독이 일생에 한번 받기도 힘들다는 아카데미상을 3년이나 독식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부분이 그 이유를 롱 테이크에서 찾을 것이다.
롱 테이크는 긴 쇼트. 시퀀스 쇼트(sequence shot)라고도 한다.(롱 쇼트와 다른 개념이다.) 일반적 쇼트들이 컷을 통해 짧게 잘리는 것과 달리 롱 테이크는 컷이 되지 않아 찍은 영상의 길이가 길다. 잠깐 영화 역사를 살펴보자면, 초기 유성 영화의 시대엔 쇼트의 길이는 긴 것이 일반적이었다. 영상 기기가 크고 무거우니 옮기는 것이 힘들었으니 영상을 길게 찍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영상 기기의 발달에 따라 카메라의 움직임에 대한 제약이 약해지고 이에 따라 쇼트는 다양해졌다. 쇼트가 다양해지며 나온 방식은 편집이었다. '몽타주'라 불리는 영상 편집의 시대가 도래하고 상업 영화에서 쇼트의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
편집의 유용화에 따라 액션과 호러와 유사한 장르의 영화들에서 쇼트의 길이를 짧게 조절해 급작스러운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 편집을 받아들인다. 감독들은 '몽타주'의 방식을 통해 빠른 속도로 교차되는 영상들의 조합하여 내러티브를 쌓는다. 몽타주는 상업 영화에서 화려한 편집으로 발전했고 빠르게 지나가는 영상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았다. 쇼트의 길이는 점점 짧아진다. 이에 최근 대중 영화에서 쇼트의 길이는 10초 내외 정도로 받아들여진다. 길게 말하지 않아도 쇼트가 점점 짧아진 이유는 한 가지 이유로 설명될 것이다. 당장 30초에 이르는 장면을 보여준다면 당신은 지루해하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마누엘 루베즈키의 롱 테이크가 아카데미의 수상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1분은 고사하고 13분이나 되는 롱 테이크로 영화를 시작하는 [그래비티]에 압도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칠드런 오브 맨]의 재개봉에 인상 깊은 영화들을 꺼내보고 싶어 졌다. 평균적으로 4.7초의 쇼트로 이루어진 상업 영화들에게 정면으로 도전하며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확고하게 내세운 롱 테이크의 미학은 어디에 있을까.
완성도 있는 영화의 구성 요소 중 첫 번째는 시각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영상으로 이루어진 매체이기에 대부분의 정보가 시각으로 전달된다. 이를 위해 미술팀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어떻게 찍어내느냐'이다. 또한 영화는 특정 내러티브를 가진 영상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해석은 필수적이다. 임마누엘 루베즈키 감독은 자신이 영화를 해석하는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말한다. 그는 뛰어난 해석력을 바탕으로 영상의 방법론을 적절하게 구현한다. 영상에 필요한 요소들을 적절한 방법으로 찍어내는 것이다.
[칠드런 오브 맨]에 나타난 장면을 살펴보자. 후반부에 이루어진 격전의 시퀀스는 롱 테이크로 촬영되었다. 군인과 시위대의 총격전 사이를 뛰어다니며 키를 구하러 가는 테오의 모습은 8분 정도의 시간을 유영한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장면들에서 카메라는 빗발치는 수많은 총알과 수많은 사람들을 지나친다. 총과 포탄이 아무리 영화 내적 세계를 어지럽혀도 카메라는 우직하게 테오를 따라다닌다. 이것은 [칠드런 오브 맨]이 가지는 장르의 특성과 이야기의 효과적인 구현을 위한 쇼트 구성이다.
임마누엘 루베즈키는 [칠드런 오브 맨]에서 드라마를 촬영으로 구현해낸다. 액션에 집중하게 만드는 짧은 쇼트들로 긴박감을 더하지 않는다. 그의 촬영 방식은 길고 느릿하게 혼란스러운 배경 속의 사람들을 잡아내서 그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드라마라는 장르의 표현에 있어 롱 테이크가 가지는 장점은 극대화된다. 특히 영화 [칠드런 오브 맨]에서 핸드 핼드로 찍어내는 롱 테이크는 마치 관객이 영화에 속하게 함으로써 극대화한다. 영상의 떨림과 시선의 흐름을 따라가며 리얼리티를 극대화한다. 리얼리티가 극대화되면 드라마는 관객의 감정을 무겁게 건드린다. 사람들은 기적이 현실적이지 않지만 현실이길 바란다.
이번엔 롱 테이크의 다른 장점이 표현된 [그래비티]를 살펴보자. 특히 롱 테이크로 표현된 13분의 오프닝 시퀀스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10분가량을 떠들어 대는 매트의 잡담과 이어지는 우주선 파괴의 현장까지 관객들은 13분의 시간을 영화 속의 시간과 공유한다. 디제시스적 시간과 논 디제시스적 시간이 동일화된다. 다시 말해 영화 속 세계의 시간과 영화 밖 세계의 시간이 동일화된다. 관객은 끊이지 않는 쇼트 속에 영화적 경험과 자신의 경험을 동일화하는 몰입에 빠지게 된다. 13분의 롱 테이크(로 표현된) [그래비티]의 오프닝 시퀀스는 관객들을 우주공간에 유영시킨다.
관찰자의 시점에 동기화되는 것이지만 관객이 느끼는 경험의 차이는 크다. 수십 개의 컷으로 쌓인 영상들이 간접적으로 디제시스적 시간의 경험을 건드린다면 롱 테이크는 보다 직접적으로 영화 안을 들여다본다. 극의 끊임없는 연결을 통해 몰입감을 선사하고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인 양 실시간으로 장면들을 전달한다. 끊임없는 장면을 통해 롱 테이크의 현장감과 인물이 되는 경험은 완성된다.
[그래비티]의 롱 테이크가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음향이나 거리감을 통해 긴장감을 조절한다는 것이다. 마치 롱 테이크로 표현된 장면이지만 편집이 가미된 듯한 서스펜스의 조절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우주선이 파괴되어 우주로 날아가는 스톤 박사가 관객 쪽으로 날아와서는 지나쳐서 멀리 날아가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스톤 박사와의 거리감을 진득하게 잡아내고 소리를 줄임으로써 극의 박진감을 더한다. 점점 작아지는 박사의 모습은 불안을 증폭시킨다. 고요함은 극의 긴장감을 더한다. 뒤의 장면에서 박사의 헬멧 앞 유리(?) 부분을 뚫고 들어가는 카메라 무빙에서 표현력은 극대화된다. 스톤 박사의 슈트 공간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면서 내외의 단절을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이런 표현 방식들은 롱 테이크라서 가질 수 있는 몰입도와 연속성을 근간으로 한다. 롱 테이크는 동일한 시간에 다른 공간에 벌어지는 상황을 현장감 있게 선사하는 것이다. 감정의 흐름을 끊지 않은 채 영화는 끝을 향해 달려가도록 한다. 이러한 점은 관객이 영화를 보는 주체가 되도록 한다. 관객은 영화에 관찰자로 참여한다. 관객들은 [그래비티]에서 우주 유영 중인 관찰자다. 관찰자가 된 관객은 더욱 주관적으로 영화에 몰입한다. '아 우주에 가면 저런 느낌일까'하는 생각이 저변에 깔린다. 영화적 체험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뉴월드], 2006년 [트리 오브 라이프], 2012년
아카데미 시상식 촬영상 부문에 올랐던 임마누엘 루베즈키의 작품들이다.
짧은 쇼트로 쌓아 만든 영화와 롱 테이크로 만든 영화를 관람하는 것엔 어떤 차이가 있을까. 먼저 짧은 쇼트는 다양한 시점들의 결합이다. 카메라가 여러 곳에서 여러 시선으로 담은 장면들을 붙여서 보여준다. 관객이 현실적으로 필요한 경험의 시간을 압축한다. 그리고 관객에게 영화에서 보여주는 객체에 집중하도록 한다. 다시 말해서 짧은 쇼트의 영화는 관객이 영화가 보여주고자 하는 객체(주제)를 짧은 시간 안에 경험하는 것을 돕는다. 현실의 경험을 압축한 영화적 표현들은 현실보다 자극적이다. 이런 자극들을 강렬하게 교차하는 것으로 짧은 쇼트의 영화는 건네고자 하는 객체의 경험을 완성시킨다.
반면 긴 쇼트의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긴 호흡이다. 관객은 마치 현실과도 같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영화를 관찰한다. 영화의 흐름은 관찰자의 시점을 따라간다. 객체에 대한 경험이었던 영화에서 롱 테이크는 주체의 경험으로 관점을 바꾼다. 2) 그리고 현실과도 비슷한, 관객이 경험하는 바로 '그곳'에서 '영화적인' 일이 일어난다.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은 '기적인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허구의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그러나 롱 테이크의 유려한 카메라 무빙이 가져온 리얼리티는 영화의 드라마틱한 시퀀스를 현실에 결합한다. '마치 그럴듯한' 영상 경험에 '그럴 수 없는' 드라마를 합친다. 그리고 관찰자에게 눈앞에서 경험토록 한다. 그들이 마치 주체인 것처럼.
여기서 짧은 쇼트의 자극성을 이길 긴 쇼트의 무기는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기적의 구현'이라고 하겠다. 임마누엘 루베즈키의 롱 테이크는 상업 영화의 여러 기술(CG나 미술, 촬영 세트 같은)을 동원하여 드라마틱한 영화를 찍어낸다. 그가 촬영한 작품은 디스토피아적이기도(칠드런 오브 맨), SF적이기도 하고(그래비티), 블랙코미디를 담기도 하고(버드맨), 시대적 배경을 담기도(레버넌트) 한다. 다양한 장르와 시대를 담는 그의 카메라는 어디에서나 현실감을 내세운다. 롱 테이크로 현실감 넘치는 장면들을 선사한다. 그리고 영화의 기적을 영상으로 구현한다. 현실감 없는 기적이 현실감 있게 표현되면 자연스레 긴장감과 드라마가 태어난다.
임마누엘 루베즈키의 영화가 아니더라도 롱 테이크 기법은 드라마를 촬영하는 여러 감독들에 의해 사용되어 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롱 테이크와 인물의 안정적인 연기를 통해 드라마적 내러티브를 확실히 전달한다. 롱 테이크는 드라마라는 장르에서 많이 활용되어 왔다. 다만 임마누엘 루베즈키가 특별한 것은 카메라의 움직임이 화려하고 다양하다는 것이다. 또한 그의 촬영 방식은 다른 여러 방식에 접목된 드라마의 힘을 끝까지 이끌어 낸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끝까지 이끌어진 드라마의 힘은 영화의 내러티브에 힘을 싣는다. 이렇게 임마누엘 루베즈키 감독은 롱 테이크라는 고전적인 촬영 방식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활용하여 드라마틱한 영상을 구현해낸다.
롱 테이크를 보다 보면 360도 카메라가 떠오른다. 전방위를 관찰하는 특성이 닮아서 그런 것일까. 360도 카메라나 VR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360도 카메라는 개인의 경험을 실시간으로 기록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몇 년 이내로 360도 카메라가 보급되고 나면 영화는 아직도 익숙하지 못한 3D에 적응할 새도 없이 전방위 카메라에 익숙해져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영화만의 내러티브가 있다면, 아직 소설이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영화의 자리는 그대로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같은 영상 콘텐츠로서 경쟁점을 잃어버린다면 게임이나 스낵 컬처 같은 여러 경쟁자들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각주
1) 영화적 체험의 주객전도라는 말은 관찰자의 시점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객체에서 주체로 관점이 전도되었다는 말을 사자성어를 빌려 내포했다. 여기서 객체와 주체는 주는 이의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받는 이의 입장을 중심으로 해석한 관점이다.
2) 이러한 객체에서 주체로의 변화는 개인주의적이다. 롱 테이크의 영화는 보다 개인적인 예술이다. 롱 테이크라는 점에서 주관적인 경험과 시점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이 보이지 않는 1인칭 관찰자는 극에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극의 대부분을 관찰한다. 물론 롱 테이크는 특정한 관점을 다루기에 권한이 완전히 주체에게 넘어가진 않는다. 주체가 완전한 주체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리얼리티를 극대화하고 경험의 동시성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다른 경험의 영역을 주관하는 것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