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생소한 비혼 여성의 내 집 마련 이야기
※21세기북스에서 책을 협찬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년에 언니 동생과 함께 신나게 떡볶이 상을 차리고 같이 볼 TV프로그램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숙연해진 적이 있다. '무엇이든 물어보살'에 출연한 28살 여성의 사연이었는데, '돈을 열심히 모으느라 궁상맞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게 고민이었다. 3년동안 월급의 70%를 저축해 학자금대출을 갚고 6천만원을 모았다는 그녀. 요즘처럼 취업난과 돈 모으기 힘든 저금리시대의 콜라보 속에서 저렇게 열심히 돈 모으는 사람이 있었다니. 심지어 나랑 나이도 비슷한데? 자매들도 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는지 어느새 우리 셋의 시선은 TV화면으로 집중되었다. 자연스럽게 질문은 그녀가 그렇게나 치열하게 돈을 모으는 이유로 이어졌다. 당연히 결혼자금 모으기거나 여행자금 모으기겠지 생각했는데..전혀 다른 대답이 나왔다. "제 목표는 일단 제 집을 사는 것이구요.." 입을 뗀 그녀는 구매하고자 하는 집의 가격을 말하며 자신의 계획에 대해 말을 이어나갔다. 잠깐, 집을 산다고? 그냥 이사를 가는 게 아니라 집을 사서 간다고? 내 집 마련이란 내 부모님 나이대나 신혼부부의 관심사이자 전유물 아니었어? 내 주변에 자취하는 친구들은 있지만 집을 구매하는 친구는 드물었고 그것도 신혼집이 아닌 자기 혼자 살 집을 사겠다는 친구(그것도 여자 중에서)는 아예 없었다. 신선한 충격에 순간 떡볶이를 내려놓고 말았다. 그날 떡볶이의 맛은 기억이 안나지만 그 때 느꼈던 생소함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앞선 경험 덕분에 나는 이 책을 조금은 덤덤한 척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 또한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비혼여성의 내 집 마련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쯤 되면 요즘 트렌드인가 싶기도 하고. 내 집 마련은 금수저거나 고수입자들만 하는 줄 알았는데 웬걸? 이 책의 저자는 비정규직 방송작가였다. 포항에서 서울로 올라와 14년간 지독한 월세살이를 했지만 집을 살 생각은 없었다고. 어느 날 문득 자신과 친한 지인작가 집에 놀러갔다가 그 집이 '자가'라는 사실과 '야, 너두 할 수 있어'라는 말에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이거 나도 해볼만 하겠는데?'라는 사실을. 그 날 이후로 저자는 내 집 마련 계획을 세우고 찾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핵심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집을 마련하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당연히 목돈을 빨리 모으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빨리 깨닫는 게 중요하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여성이 주변에 있다면 내 집으로 향하는 길이 더 이상 딴 세상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내 친구 이야기, 그리고 나의 이야기가 된다. 모 영어 학원 광고 중에 이런 카피가 있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결혼은 모르겠고 내 집은 있습니다, 40p)
저자가 집을 구매하기까지 그 과정이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투잡을 넘어 쓰리잡, 포잡 식으로 쉬는 날 없이 닥치는 대로 일했다. 가끔은 비정규직 작가라는 이유로 인격 모독적인 말도 듣는 날도 있었지만 목표금액을 위해 순간의 모멸은 참아내야 했다고. 금수저가 아닌 평범한 근로자에겐 오로지 쉬지 않고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으리라. 오히려 인간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주거 정책이 1인 가구를 환영할 리는 만무했다. 많은 주거 정책에서 소외받기 일쑤이고 대출 조건 또한 더 박한 현실에 저자는 이를 악물어야만 했다고. 내 집 마련의 필수 조건이라고 하는 주택청약조차 결혼하지 않으면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 집을 가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은 사실 집이라는 것은 생존권과 연결된 일이 아닌가. 나는 결혼할 거니까 괜찮다 넘길 일이 아니다. 나도 언젠가 1인 가구가 될 수 있다. 그것이 운이 없어서든 자신의 선택이든 그 결과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자꾸만 밀리거나 소외됐을 때 과연 누가 억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스스로를 비혼이라고 말하고 전시하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이 싫어서가 아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는 걸 자꾸 드러내야 세상이 조금이라도 바뀌기 때문이다. 투명인간 취급당하며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거나 제도 밖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죽을 때까지 비혼이라는 신념을 지킬 수 있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언젠가 결혼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비혼이라 ‘말하기’를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설령 결혼한다고 해도 이혼으로 인해 언제든지 비혼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지 않은가. 내가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든 여성으로서의 내 삶이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118p)
여기까지가 첫 번째 파트에서 주로 다루는 이야기이다. 나머지 세 파트에서는 집을 갖고 난 후 저자가 집과 진정으로 감응하는 과정을 그린다. 두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집사 노릇을 자처하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찾아가는 에피소드들도 있다. 반려견과 함께 하는 일상을 그리는 내게 이 책을 협찬해주신 이유 중에 하나도 바로 이 부분인 것 같다. 하지만 더 인상깊었던 파트는 두 번째 파트 '집의 기쁨과 슬픔'이었다.
나를 고립으로 몰아넣었던 이 집이 비로소 나와 감응하는 공간이 되었다. ‘자기만의 방’을 온전히 갖기 위해선 ‘자기만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단순한 진리를 얻기 위해서 먼 길을 돌아왔다. 다시 길을 잃더라도 이 공간에서 또 다른 길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93p)
마침내 내 집 마련이라는 커다란 물질적 충족을 이뤄고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지기는 커녕, 저자는 깊은 공허함을 느끼며 우울에 빠진다. 외적 허영에 빠져 자신의 내면을 돌볼 시간조차 없었던 그녀. 이 파트를 읽으면서 그녀의 심리상태가 집에 온전히 반영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우울한 사람들이 저장강박이 있는 것처럼, 예민하고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결벽증이 있는 것처럼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림자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실체가 되어 여실히 드러난다. 마음의 그림자가 거둬졌을 때 그때서야 집은 또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저자는 이를 집과의 '감응'이라고 표현했는데 정말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나 또한 지금 잔뜩 어지러진 내 책상을 보니 이 리뷰를 미루고 미뤄서 이 새벽에 올리는 나의 불안정한 정서가 내 방에 드러났음을 느끼는 바이다. 깊은 공감 꾸욱.
이 책이 주는 의미는 그래서 무엇일까. 부동산 매매 꿀팁 전수도 아니고 인테리어 노하우 1000가지도 아니다. 그렇다고 정부 주거 정책에 대한 매우 심도있고 진지한 고찰도 아니다. 누군가는 이도 저도 아닌 기타 장르로 치부할 수도 있을테지만 난 이 정도로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집을 가지려면 결혼이라는 조건이 선행해야한다고 믿었던 나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혼 여성의 내 집 마련 사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앞으로 많은 것들이 변할 수 있지 않을까. "야, 너두 할 수 있어" 라는 말을 저자가 처음 들었을 때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