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LM이 재조명한 질문 —그리고 왜 직업적 정체성의 위기로 이어지는가
*원문을 번역한 글입니다.
*원문은 발행 이후 수정될 수 있으며, 본 번역은 발송 시점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어쩌면 이 글도 지난 몇 년간 우리 분야에서 벌어진 변화들처럼 금세 낡아버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디지털 제품을 다루는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점점 더 확산되고 있는 현상, 즉 ‘직업적 정체성의 위기’에 대해 써보고자 합니다.
대중이 전 세계적으로 LLM(대규모 언어 모델)을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인공지능이 보편화된 것은 이제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초기에는 텍스트 중심의 모델로 시작했지만, 순식간에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수많은 도구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디자인 분야에서 점점 더 분명해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디지털 제품 분야에서 다시금 '제너럴리스트 디자이너'의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NN Group은 AI가 디자인 프로세스의 수많은 부분을 대신 수행함에 따라, UX 제너럴리스트가 다시금 가치있고 바람직한 역할로 부상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사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UX 제너럴리스트의 귀환: AI의 발전으로 UX분야의 제너럴리스트가 더욱 중요해지면서 전문화 추세가 역전되고 있습니다. ...
처음에는 이를 긍정적으로 보았습니다. 인공지능의 윤리적, 사회적 함의(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겠지만)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말이죠. 그러나 현재 상황을 더 자세히 살펴보니 다음과 같은 점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가용한 LLM 모델의 도움을 빌린 ‘일반성(Generality)으로의 회귀’가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만을 내는 것은 아니며, 장기적으로는 통찰의 피상화와 혁신의 감소를 초래할 수 있다.
이 글에서는 특히 AI가 자신의 직업적, 개인적 정체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불안해하는 디자이너들을 위해 이러한 우려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 글은 AI 사용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디자이너와 LLM이 상호작용하는 현시점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방식을 정립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저자 중 한 명은 에드가 모랭(Edgar Morin) 입니다. 그는 모든 현대 지식 (특히 르네상스 시대 과학 혁명 이후)이 환원주의적 사고를 통한 단순화에 의해 지배되어 왔다고 주장하는 사상가입니다. 이러한 환원주의는 개인을 폭넓은 기초 교육에서 특정 학문에 제한된 고등 교육으로, 그리고 점차 더 좁은 전문 분야로 몰아넣습니다. 결국 평생 한 가지 주제에만 전념하기를 기대하게 만듭니다.
저는 항상 이런 방식의 훈련에 거부감을 느꼈고, 정해진 경로를 따르지 않았을 때의 효과를 몸소 체험했습니다. 수년이 지난 후에야 그것이 매우 긍정적인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에드가 모랭이 그토록 강조했던 20세기 교육의 '단절' 현상을 실무에서 목격하며 더욱 확신을 얻었습니다.
지난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디지털 제품 디자인 분야는 지나치게 전문화되어 내부적인 균열이 생겼습니다. 저는 현재 디자이너들이 활동하는 주요 축을 크게 세 가지로 봅니다.
커뮤니케이션 축: 브랜딩, 언어, 아트 디렉션과 연결되며 인터페이스의 예술적 측면이 매우 중요한 영역.
실증적-과학적 축: 리서치, 방법론, 데이터, 검증 및 의사결정과 연결되는 영역. 때로는 ROI(투자 대비 수익) 담론에 매몰되기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영역.
기술적 축: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과 밀접한 영역. 프런트엔드, 컴포넌트, 시스템 및 구현에 집중하며 2010년경부터 강하게 나타난 흐름.
각 분야의 복잡성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러한 전문화가 일어난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구분이 서로 소통이 거의 없는 폐쇄된 틈새(Niche)들 사이의 생산 라인처럼 변질되었다는 점입니다.
초전문화는 소통의 부재를 낳습니다. 각자가 자신의 전문 영역만 깊이 이해할 뿐, 바로 옆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정보는 여러 단계를 거쳐 프로세스의 최종 단계인 개발자에게 도달합니다. 많은 분이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보의 누락이나 의견 불일치로 인한 갈등을 목격하셨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모랭이 '복잡성을 포용하는 교육'을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시야를 좁히는 것이 아니라, 지평을 열어주면서도 전문성의 깊이를 유지하는 미래의 교육 말이죠. 하지만 이러한 복잡성 패러다임을 지지하더라도, 현재의 상황에서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시장은 늘 다방면에 능한 전문가를 갈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상상 속의 개념일지라도) '유니콘 디자이너'라는 이름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과학적 근거로 의사결정을 내리면서 예술적인 인터페이스를 혼자 만들고, 프런트엔드 구현까지 해내는 '만능 해결사'의 모습 말이죠.
하지만 이 아이디어의 맹점은, 각 분야에서 진정으로 뛰어난 수준을 유지하려면 그토록 상이한 인지적 훈련을 요구하는 여러 역할을 한 사람이 수행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집단적 갈망은 AI의 등장과 함께 다시 부활했습니다.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이 없더라도 기계에 업무를 맡김으로써, 모든 영역을 넘나들며 훌륭하게 해내는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약속이 생긴 것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함께, 예측하기 어려운 수많은 위험이 동시에 발생합니다.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해 왔습니다. 문제는 제너럴리스트의 귀환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나타나는 방식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는 진정한 교육적 변화와는 달리,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다음과 같습니다.
전문가는 이전과 똑같은 인지적 역량에 머물러 있으면서, 정작 본인이 제대로 개발할 줄 모르는 업무들을 기계에 위임하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NN/G 관련 기사 에서 이 문제를 다루 듯이, 전문가는 AI 부스트의 도움을 받아 이전에는 숙달하지 못했던 분야에서도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결과물은 나오지만, 사용자의 인지적 깊이는 이전과 동일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게 왜 문제가 될까요?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주로 글로벌 기업들이 개발한 LLM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모델은 방대한 데이터로부터 패턴을 학습하여 통계와 확률을 통해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응답을 생성하는 토큰 예측 기계 입니다. 입력 텍스트(프롬프트)가 주어지면, 모델은 다음에 나올 가능성이 가장 높은 토큰을 예측하고 이를 바탕으로 출력을 생성합니다. 각 모델마다 구체적인 작동 방식은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는 개발사별 학습 데이터의 통계에 기반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의 AI는 인간적 의미의 지능이 아닙니다. 디지털 데이터가 존재하는 영역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초복합 기계일 뿐입니다. 따라서 아직은 '뉴로 심볼릭(Neuro-symbolic, 신경-기호 결합) 추론' 능력이 부족합니다.
마시모 아토레시(Massimo Attoresi)가 든 의료 분야의 예시를 보면 명확합니다. 환자가 이전 연구 사례가 없는 희귀 증상을 보일 때, 인간 의사는 자신의 지식을 동원해 논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LLM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답변할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그럴듯한 답변을 내놓는 '환각(Hallucination)'을 일으키기 쉬운데, 이는 모델이 '정답'보다 '그럴듯한 반응'을 생성하는 데 우선순위를 두도록 훈련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용자에게는 "모른다"고 답변을 받는 것이 훨씬 더 답답한 일이며, 이는 플랫폼의 입장에서 나쁜 UX라고 판단합니다. 따라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인 디자이너가 LLM에 의존해 다른 분야의 작업을 수행하면, 전 세계적인 통계적 평균에 수렴하는 결과만을 내놓게 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 스스로가 그 '결과물' 자체를 자신의 전문성이라고 착각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전문가로서의 정체성은 단순히 최종 결과물로만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미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치는 복잡한 인지적, 상징적 구성 과정에 의해 정의됩니다.
오늘날 LLM을 통해 많은 디자인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AI 학습의 한계 때문에 AI 없이는 불가능했던 작업까지도 LLM을 통해 가능합니다. 하지만, UX/UI 프로세스의 특정 부분을 기계에 맡길 때, 우리는 그것이 새로운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추론 능력' 없이 내놓는 확률적 답변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위험이 발생합니다. 직업적 정체성에 기반한 도움이 아닌 LLM에 지나치게 의존할 경우, 해결책, 글쓰기 스타일, 혁신 프로세스, 비주얼, 심지어 코드까지 획일화될 위험이 있습니다.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디지털 제품을 만드는 한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의미 전달 중심의 축'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수년간 깊이 있게 연구하여 독특한 애니메이션으로 브랜드 임팩트를 주는 시각적 플랫폼을 만들어왔습니다. 디지털 플랫폼에서 브랜딩과 프로덕트 디자인을 조화시키는 뛰어난 미적 감각을 키웠습니다.
그녀가 하는 모든 시각적 작업은 전문적인 경력 전반에 걸쳐 쌓아온 감각에 의해 좌우됩니다. 이 감각은 수년간 연구해 온 개념과 탄탄한 방법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녀가 복잡한 문제를 돌파할 수 있게 해주는 힘입니다.
그런데 이 디자이너가 현재의 상황에 불안감을 느끼고 정체성 위기에 빠집니다. "AI 때문에 내 작업이 가치를 잃지 않을까?" 그래서 그녀는 여러 LLM을 사용해 자신이 잘 모르는 리서치 분야나 디자인 시스템 코딩 결과물을 내놓기 시작합니다.
만약 그녀가 AI로 결과물만 만드는 데 그치고 해당 분야를 실제로 공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한 분야의 탁월한 인재를 잃고, 오직 LLM을 통해서만 결과물을 내는 '평균적인 제너럴리스트'를 얻게 됩니다. 그녀의 결과물은 전 세계적인 통계적 평균에 머물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녀가 AI를 활용해 자신의 전문성을 심화하는 동시에 인접 분야의 원리를 배우는 실험적 도구로 AI를 사용한다면 어떨까요?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LLM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진정한 가치입니다.
AI는 고된 수동 작업을 자동화하는 것을 넘어, 우리의 역량을 확장하고 이전에는 어려웠던 동료들과의 협력을 가능하게 합니다. 에드가 모랭의 말처럼, 각자가 자신의 전문성을 유지하면서도 AI를 통해 동료의 업무 기초를 이해하고 소통할 수 있게 될 때, 우리의 집단적 사고는 더욱 복잡하고 강력해집니다.
이것은 미묘한 차이 같지만, 21세기에 '단순 생산'과 '진정한 혁신'을 가르는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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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BBONS, Sarah; SUNWALL, Evan. UX 제너럴리스트의 귀환. Nielsen Norman Group, 2025년 3월 28일. https://www.nngroup.com/articles/return-ux-generalist/
모린, 에드가. 미래 교육에 필요한 일곱 가지 지식. 파리: 유네스코, 1999년 10월. https://www.psychaanalyse.com/pdf/EDGAR_MORIN_LES_7_SAVOIRS_A_L_EDUCATION_DU_FUTUR.pdf
STRYKER, Cole. 대규모 언어 모델. IBM Think. https://www.ibm.com/think/topics/large-language-models
아토레시, 마시모. 신경-상징적 인공지능. 유럽 데이터 보호 감독기관(EDPS) — TechSonar. https://www.edps.europa.eu/data-protection/technology-monitoring/techsonar/neuro-symbolic-artificial-intelligence_en
체르보, 마테우스. 인류학 연구의 개방형 데이터를 위한 디지털 저장소: BIEV UFRGS 사례 연구. 2022. 178쪽. 석사 학위 논문(커뮤니케이션 전공) — 리우그란데두술 연방대학교 도서관학 및 커뮤니케이션 학부, 포르투알레그레, 2022. http://hdl.handle.net/10183/235396
원문 출처: https://medium.com/user-experience-design-1/design-careers-in-the-age-of-ai-specialize-or-generalize-b99e0f573f2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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