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기억

by 블라디

(2025년 1월에 쓴 글입니다.)


다음 주가 벌써 입춘(立春)입니다. 겨울이 물러나야 할 시간이 다가옵니다. 겨울이 심술을 부리는지 구정연휴가 낀 이번 주에 강추위와 강한 바람을 동반한 많은 눈(특히 충청, 전라, 제주 지역)을 뿌렸습니다. 그래서인지 고향을 찾는 많은 차량들의 추돌사고 소식이 계속 들려오네요. 행복해야 할 명절을 겨울 심술이 다 망쳐놓았습니다.


그분들껜 죄송하지만, 심술궂은 날씨가 기차를 이용한 저에게는 낭만?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비록 기차가 서행하고 연착이 반복되고 있지만, 기차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얀 눈 쌓인 설경과 강한 바람에 흩날리는 눈보라, 이 풍경을 바라보며 마시는 텀블러에 담긴 따뜻한 커피 한 모금, 도착지에서 반겨주는 콧김 가득 뿜게 만드는 영하의 차가운 공기는 새로울 것 없지만 특별한 선물이었습니다.(기차 안에서 쓰고 있는 지금도 많은 눈이 내려 서행과 정차를 반복하네요..)


저는 ‘겨울냄새’가 좋습니다. 최근에 ‘냄새는 강력한 기억의 환기장치‘라는 글을 보았는데요. ’ 후각기억’이라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평소 느꼈던 냄새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주는 글귀였습니다. 어떤 냄새를 맡으면, 가령 맛있는 냄새, 다락방이나 지하에서 느껴지는 오래된 곰팡이 냄새, 향수나 비누냄새, 가족과 연인과 함께 함 여행에서 만난 꽃 향기, 담배에 쩔은 옷에서 나는 냄새, 상쾌한 공기 반면에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 냄새 같은 것을 만나면 생각나는 장소나 사람, 어떤 장면이나 어떤 상황들이(좋은 기억도 아픈 기억도) 떠 오르게 되는데요.


저에게 겨울냄새는 영하의 차가운 공기를 들이마시면 콧속과 폐부를 깨끗이 씻어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 어두운 새벽의 출근길에 느끼는 차가운 공기의 냄새인데요. (식상하지만 남성들이 대부분 그럴지도 모를) 군대에서 훈련받을 때의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환기장치입니다. 좋은 기억도 나쁜 기억도 아닌 아련한 추억으로 이끌곤 합니다.


각 계절마다 느끼는 개인들만의 감정과 감각들이 있는 듯하고, 또 모두 다를 듯한데요. 저는 겨울에 머물러있다 봄이 오는 냄새와 여름을 즐기다가도 8월 말이 되면 가을이 오는 냄새가 문득 느껴지기도 하는데, 희한하게도 겨울이 오는 냄새와 여름이 오는 냄새는 느껴지지 않습니다(과학적 근거는 없고 순전히 제 개인의 경험적 근거). 겨울과 여름냄새는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그러니깐 영하의 날씨와 35도 이상의 폭염의 날씨에 오히려 더 잘 느껴집니다.


봄냄새는 초등학교 시절 학교 가는 골목길의 따스했던 그 봄기운이 느껴졌던 한 장면이 떠오르게 합니다. 이제 곧 봄이 오겠지요. 몇 번의 추위가 더 있을지 모를 일이지만 그때마다 느껴지는 냄새로 좋은 기억들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그런 게 없다면, 이 참에 후각기억 한번 만들어 보시는 건 어떨까요? 만들겠다고 애써도 안될 듯하지만요..^^;;


한 장면, 어떤 상황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는 데자뷔처럼,

냄새는 추억을 끄집어내는 집게 같은 것일 수도 있겠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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