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은송 Sep 25. 2019

유전자는 우리를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을까

스티븐 하이네 『유전자는 우리를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나』


저자 스티븐 하이네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문화심리학 교수다. 그의 연구실 'Culture and Self Lab'에서는 인간 조건에 대한 유전적 해석의 사회적 관점을 중점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유전자의 비밀을 풀어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는 인간 게놈에 있는 약 32억 개의 뉴클레오타이드 염기쌍의 서열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1990년 시작해 2003년 완료되었다. 그 결과로 유전병의 기저 원인이 되는 유전자의 염색체 상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되었고, 나아가 치료제 개발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그로부터 대략 15년이 지난 현재, 유전자 연구는 질병 진단뿐만 아니라 여러 성격 특질의 기전이 되는 유전자를 밝혀냄으로써 개인차의 원인을 설명하고자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한 번 유전자 시퀀스를 분석하는데 수천 만원이 들었던 초기와는 달리 요즘에는 대략 한화로 10만 원 정도 선이면 유전 정보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질병의 발병 확률이나 위험성, 보인자 현황에 대해 자세히 알려준다. 유전자 검사 회사들은 자녀의 미래 적성을 알 수 있다거나, 미래 자녀에게 유전될지 모를 유전병 관련 유전자들을 보유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식으로 마케팅을 펼친다.


유전자에 대한 사람들의 환상은 언론에 의해 증폭되기도 한다. 언론은 유전자에 대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나올 때마다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우울증 유전자 발견'이라는 키워드로 구글링을 해보니 1페이지에 바로 <우울증 개인차, 원인은 유전자>라는 신문기사가 뜬다.


자세히 읽어보면, 해당 유전자(Gadd45b)는 기억 및 학습 과정에도 작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주로 신경가소성과 관련된 유전자라는 설명이 나와있다. 그러나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접한 사람들은 "오? 우울증 유전자가 있대!"라는 식으로 기사를 기억할 가능성이 높다.




유전자와 본질주의 편향
우리가 유전적 설명에 강한 설득력을 느끼는 것은 주변 현상을 설명하는 방식 중 우리가 특별히 선호하는 방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숨겨진 근원적 본질로부터 세상이 생겨났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이처럼 유전적 설명에 혹하게 되는 사람들의 심리를 '본질주의 편향'에서 찾는다. 이는 어떤 현상이나 사건의 기저에 있는 근본적인 본질을 찾아 설명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말한다. 지금까지 인간의 '본질'이라 여겨지던 것들에는 '영혼'이나 '이성' 등이 있었다. 그러나 유전자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본질'이 가지는 권위를 유전자에 덧씌우기 시작했다.


우리가 DNA에 대해 말할 때 마치 DNA가 나를 나로 만드는 바꿀 수 없는 고유의 본질인 것처럼 표현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전적 개념에 대한 일상 대화는 '유전자는 운명'이라는 사고방식을 더 강화한다. -본문 중에서




유전자는 어떻게 우리에게 영향을 미칠까?


염색체가 가지는 유전자형은 생물체가 만들어낼 단백질의 종류와 형태를 지시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단백질은 세포의 기능을 결정한다. 즉, 유전자형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전사되고 번역되어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 영향을 끼침으로써 표현형을 결정한다. 한편 경험과 환경을 통해 유전자의 분자적 구조가 바뀌어 촉발되는 후성 유전도 유전자 발현에 영향을 미치는 간과할 수 없는 요소다.


표현형 하나에 연관된 유전자가 무척 많기 때문에 대개 유전자 하나가 표현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적다. -본문 중에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우울증 유전자', '사이코패스 유전자', '공격성 유전자' 같은 것은 없다. 또한 유전자형이 표현형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유전자형이 가지는 영향력을 제대로 측정하기도 쉽지 않다.




유전자가 가지는 힘?


그러나 분명 겉으로 드러나는 많은 형질(키, 피부색, 눈동자 등)과 심리적 특질이 유전의 영향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행동 유전학에서는 사람의 행동이나 성격 특질의 개인차를 유전자 차이로 설명하고자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유전력'이다.


유전력이란 주어진 표본 집단에서 나타난 특정 형질의 '분산' 중 유전자에 의해 나타난 분산이 얼마나 되는지를 나타내는 수치다.
-본문 중에서


저자의 예시를 빌려오자면, 키의 유전력은 80%인데 이는 '같은 표본 집단에 속한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키가 크다면 그 원인의 80%를 그들 각자가 가진 유전자에 돌릴 수 있다는 뜻이다. 나머지 20%는 살면서의 경험이 원인이 된다.


그러면 키는 어차피 유전자가 결정하니 체념하며 살아도 되는 걸까? 여기서 명심해야 할 것은 '같은 표본 집단'이라는 전제이다. 유전력은 항상 유전력을 측정한 표본 집단에 대해서만 유의미하다. 즉, 한국 20대 남성의 키의 분산 중 80%는 유전자로 설명이 가능하지만 한국 20대 남성과 미국 20대 남성을 비교할 때에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전자는 특정 형질의 발현을 결정하는 스위치가 아니다. 키의 경우는 약한 유전적 영향을 받는 형질인데, 이는 수백 개에 이르는 유전자가 공동으로 작용해서 표현형이 나타날 확률을 결정한다. 그 외의 여러 성격 특질들도 마찬가지다. 유전력을 해석할 때 이를 유전자의 힘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쌍둥이 유전 연구의 함정


보통 행동 유전학 연구는 일란성쌍둥이를 통해 이루어진 경우가 많다. 각기 다른 가정으로 입양 보내진 일란성쌍둥이가 다른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어떤 특질에 대해 서로 상당히 높은 상관관계를 보였다던가, 입양된 아이와 친자녀들이 같은 환경에서 자랐음에도 어떤 특질에 대해 낮은 상관관계를 보였다던가 하는 식의 연구이다. 일란성쌍둥이는 같은 유전자를 100% 공유한다. 따라서 이들이 가지는 높은 상관관계는 유전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는 셈이다.


그러나 저자는 환경과 유전의 영향이 독립적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며 유전자의 영향력이 다소 과대평가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유전자형이 100% 일치하는 쌍둥이 연구에서 밝혀낸 상관관계를 일반화하여 적용하는 것에도 현실적 문제가 있다. 후성 유전학이 앞으로 더 많은 진실을 밝혀줄 것이라 기대한다.




유전자를 바라보는 우리의 심리적 반응


사람들이 유전자의 매커니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도 일상적으로 유전자를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유전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 중 대다수가 사실 유전자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말하는 것은 본질이다. -본문 중에서


사람들이 유전학에 관한 정보를 접했을 때 어떤 심리적 편향을 보이게 될까? 본문의 내용 중 두 가지 주장을 빌려오도록 하겠다.


1. 사람들은 어떤 형질에 유전자가 연관돼 있다는 말을 들으면 이 형질을 '바꿀 수 없다'는 편향적 사고를 시작한다.

2. 우리는 어떤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이 유전자에 연관된 형질(즉, 표현형)이 나타난다고 가정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저자는 젠더, 동성애, 우생학과 같은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을 펼쳐나간다. 모두 어느 정도는 '유전자'와 관련 있다고 생각되거나 생각되어온 것들이다. 그러나 성적 정체성이나 성적 지향, 지능이나 공격성을 결정짓는 단일 유전자는 없다. 심지어 공격성 유전자라고 생각되는 MAOA 유전자 또한 여러 특질들에 동시다발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의 발현을 임의적으로 방해했을 때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유전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본문의 내용이 상당히 방대한 관계로 이쯤 내용을 정리하고 마치도록 하겠다. 처음에는 유전학에 관한 책인 줄 알았으나 읽다 보니 '유전학을 바라보는 문화심리학자로서의 입장'에 더 가까운 책이었다.


사실 유전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한 것은 너무도 잘 알려져 있다. 비단 유전병이 아니더라도 상당히 많은 심리적 특질, 외적 형질들이 가족력을 띠고 유전됨을 많은 행동 유전학과 심리학 연구에서 확인했다.


어떤 특질을 결정함에 있어서 환경의 영향이 크다지만, 유전적 영향이 해당 원인의 최소 50%를 점유하는 상황에서 나머지 요인들은 알 수 없는 미지의 요인이라고 한다. 즉, 나머지 50%의 원인이 환경일 수도 있지만 환경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다.


특히 본성에 반하는 개념으로 양육을 많이 들지만, 아이가 가진 특질(잘 울고 예민한 아기 vs. 차분하고 혼자 잘 노는 아기)에 따라 부모의 반응은 당연히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가 가진 해당 특질은 분명 유전적인 것임에 틀림없다.


앞으로 유전자의 영향력은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보다 명료하게 그 윤곽을 드러낼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지적했듯이 유전자를 '본질'로 여기는 우리의 시각은 다소 위험해 보인다.



예컨대 공격성 관련 유전자가 밝혀졌다고 하자. 그러면 우리는 범죄자를 어떻게 대하게 될까? 반응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1) 공격성 유전자가 있는 사람들은 타고나길 그런 거야. 격리해야 돼.

2) 공격성 유전자 때문에 저런 범죄를 저지르게 된 거야. 저 사람 책임이 전부가 아니야.


물론 둘 다 극단적인 방향의 해석이기는 하지만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리고 1번 반응보다는 2번 반응이 조금 더 사회적으로 나은 방향이 아니겠느냐고 저자는 제안한다.


즉, 유전자 자체는 바꿀 수 없지만 유전자를 바라보는 관점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작게는 배우자와의 유전적 궁합을 확인하는 것에서부터 크게는 범죄 형량을 결정하는 것이나 교육 정책 결정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혼 전에 건강검진을 함께 받는 게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앞으로는 함께 유전자 검사를 받는 것까지 추가되지 않을까? 만약 내 예비 배우자에게 공격성 유전자가 있다면, 알츠하이머를 예측하는 유전자가 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까? 그리고 여러분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글을 마치며


처음 유전학을 접하던 때를 기억해본다. 중학교 생물 시간, 멘델의 완두콩 실험 이야기를 들으며 정수비로 떨어지는 아름다운 우성과 열성 형질들을 바라보며 새삼 신기했었더랬다. 우성 형질들(지긋지긋한 곱슬머리...)의 개수가 몇 개인지 친구와 세보며 누가 더 우월하느니(사실 이것이 우생학의 시발점이었다) 장난을 치던 기억도 떠오른다.


유전자가 전부는 아니라는 것

유전자는 특정 표현형을 발현시킬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단일 유전자가 영향을 미치는 형질은 매우 드물다는 것


정규 교육과정에 모두 담을 수 없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쉬어가기' 코너 정도로는 가르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