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에 관하여
연애할 땐 모든 게 다 좋아 보이고 불 같이 뜨거웠는데,
결혼한 후에 한 집 살면서 좋은 것보단...
'아 진짜... 도대체 왜 저러지?'
하는 순간, 있으셨을 겁니다.
예를 들어, 양말은 벗으면 벗자마자 빨래통에 넣어주면 좋겠는데...
자고 일어나면 다른 건 안 해도 양치질은 좀 했으면 좋겠는데....!!!
같은, 사소한데 엄청나게 사람 신경 거슬리게 하는 행동들이 있죠.
저희 남편은 화장실에서 시간을 엄청 오래 보내는 습관이 있습니다.
화장실 들어가자마자 후딱 나오는 저와는 완전히 다른 습관이었죠.
오래 앉아 있으면 건강에도 안 좋을 것 같고, 뭔가 찝찝하다고도 충분히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신혼 시절, 오래도록 화장실을 점거하고 있다 나온 남편에게 물어봤어요.
"자기야, 화장실에 왜 그렇게 오래 있어?"
"응. 앉아있으면 계속 나와(?) ㅋㅋ 그리고."
"응, 그리고?"
"난 사실 아침에 눈을 뜨면 화장실에 앉아서 뉴스도 보고, 오늘 하루 해야 할 일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데 그 시간이 나한텐 굉장히 중요해. 그래서 오래 걸려. 내 습관이야. "
나에겐 중요하지 않고 별 것도 아니고, 심지어 좋아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는 무척 중요한 하루의 루틴일 수도 있고,
나를 만나기 전부터 평생을 해온 습관이기도 합니다.
저는 정리정돈을 정말 정말 못 합니다.
총체적 난국이 따로 없죠.
뱀 허물 벗어놓는 사람 바로 접니다. 나야 나!
결혼 16년 차인 지금은 아이들에 여섯 식구 살림에 정리가 안 되면 정말 전쟁통에 피란 맞은 것처럼 되기 때문에 재빠른 손으로 후닥후닥 치우지만,
결혼한 스물셋의 새 신부는 그간 살아온 인생을 그 누구보다 후리하고 제멋대로 살아온
(덕분에 우리 엄마 속 좀 썩었을 거예요....)
저는 뱀 허물 벗듯 옷을 바닥에 벗은 그대로 버려두던 습관이 있었습니다.
제가 벗어 둔 뱀 허물을 남편은 주섬주섬 줏더니, 하나하나 탁탁 털어 가지런히 도 개어놓더라고요.
처음엔 편했습니다.
나중엔 정리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점점 불편해졌습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계속 정리해서 칼각으로 옷장에 넣어두니까, 왠지 미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미안해 내가 정리할게."
"응? 아냐 괜찮아. 이거 자기 습관이잖아."
"응 그렇긴 한데... 나도 결혼하고 자기랑 같이 지내는데 자기가 불편하잖아."
"아냐 괜찮아. 난 어차피 정리를 잘하기도 하고 자기는 평생을 이렇게 습관이 들었는 걸 억지로 고치려고 하지 않아도 돼. 고칠 필요도 없고. 그게 어떻게 한 순간에 되겠어. 미안해하지 않아도 정말 괜찮아!
어디서 말 예쁘게 하는 학원이라도 다녔나 싶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다 맞는 말입니다.
결혼하고 지금껏 한 번도 서로의 습관이나 생활방식을 바꿔주려 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것 때문에 서로에게 잔소리한 적이
그날 저의 질문 이후로 한 번도 없더라고요.
물론 저는 지금도 제 방은 아주 제 하고 싶은 대로 허물 벗어 척척 던져두고
남편도 화장실을 점거하면 나올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바뀌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왜 고치지 않으려고 하지?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서로에게 맞추기 위해 고치기보단,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받아들이는 선택을 했습니다.
물론 속 터질 때도 있고(남편도 있을 겁니다 ㅎㅎㅎ 저보다 더 할지도요)
16년째 봐도 이해는 안 되지만.
그러려니 합니다. 원래 그렇게 생긴 사람들이니까요.
고치려고 하는 것도 좋지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면
여러모로 평안합니다. 허물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그대로 봐주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
괜히 이 사람에게 더 고맙기도 하고요.
오늘도 제 남편은 제가 훌렁훌렁 벗어둔 속옷을 칼각으로 정리합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