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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그림

by 구직활동가


대학교에서 시를 배웠다. 교수는 시가 사진 같다고 했다. 시를 잘 써보지 않은 학생에게 맞춤식 표현으로 핵심을 전달한 것으로 생각한다. ‘시는 사진이다’는 명제가 머릿속에 자리 잡으며 개념이 정립되었다. 사진에서 이야기를 찾고, 해석할 수 있는 것처럼 시가 그러해야 한다는 당위성까지 느껴지는 가르침이었다. 좋은 시는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그릴 수 있고, 이야기가 있다. 그렇다면 좋은 사진은 이야기를 품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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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으로 보이는 모자를 쓴 사람이 바위에 걸터앉아 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사진을 보며 마음을 헤아려보는 이 능동성은 사진 찍은 작가가 의도했을까. 그저 밤 산책을 하다 하염없이 바라보는 한 여인 뒷모습을 찍었을지도 모른다.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덧붙이는 것은 우리 몫이다. 장소도 궁금하다. 한국에 있는 바다일까. 도시일까. 우리나라가 아닐 수도 있겠다.


바다를 가만히 바라본 적이 있다. 누구나 있을 만한 경험인지 모르겠다. 만약 그에게 고민이 있다면 지금, 저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에는 그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더 희망차게 생활하자며 다짐하고, 받았던 스트레스는 바다에 흘려보냈으면 한다. 사진에 해석과 바람까지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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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한 남자가 고개와 허리를 젖혀 마이크를 잡고 있다. 입은 셔츠와 바지로 미루어 보아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가수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오히려 옆집에 사는 ‘아저씨’와 가깝게 느껴진다. 화려한 조명이 사방에 퍼지고, 중심에는 그가 있다. 포즈를 살펴보니 락밴드 보컬이 떠오른다. 프레디 머큐리 말이다. 그였다면 다리를 더 벌려 동작을 크게 했을 것이다. 무대에서 재능을 뽐내는 밴드 프런트맨에게 우리는 열광할 수밖에 없다.


아저씨는 누굴까. 이름, 직장 같은 정보를 알고 싶은 것이 아니다. 저런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면 적어도 락을 좋아하는 사람일까. 아니면 음악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접어둔 채 직장인이 된 것일까. 궁금증이 생긴다. 사진으로나마 음악을 하지 못했던 ‘한’을 풀고 싶었다면 애잔한 느낌이 들고, 락을 좋아하는 팬이라면 귀여운 인증샷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이미지만 두고서 판단할 수 없다. 해석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포착한 작가도 모델이 무엇을 욕망하여 포즈로 드러냈는지 명확히 알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를 포착하고 해석하는 것은 우리 몫이다. 굳이 이미지를 창조한 작가를 탓하지 말자. 사진에서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면 다른 그림이나 작품에서도 보는 눈이 생긴다. 예술을 즐거이 향유하는 훈련이다. 그러니 사진과 끊임없는 대화를 나누자. 이미지를 해석의 영역으로 데리고 나가자. 그 과정이 즐거운 산책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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