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원하는 대로 표현해주기.
장인어른만큼 널 평생 사랑해줄게.
이런 신선한 고백을 즉흥적으로 해내다니. 스스로가 대견한 순간이었다. 그녀가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 내가 준비한 프러포즈는 마무리될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장인어른이란 단어가 등장한 나의 고백에 눈물 대신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민망해진 나는 왜 웃느냐, 내가 아버님만큼 못할 것 같아서 그러느냐며 따지듯이 물었고, 그녀는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아빠를 실제로 안 만나봐서 그렇다는 말도 덧붙였다.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의 빈약한 감정 표현은 사랑꾼이자 딸바보인 장인어른과 절대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럼에도 프러포즈의 순간 그녀의 아버지가 떠올랐던 건 미안함 때문이었다. 10년이 넘는 오랜 연애 기간 동안 나는 그다지 다정한 남자 친구가 못 되었으니까. 긴 시간 준비하던 일에서 슬럼프를 겪었던 상황 탓도 있었지만, 내가 따듯한 말로 마음을 전할 줄 모르는 것이 근본 문제였다. 반면에 아내는 사랑을 언어로 표현하길 좋아하고 또 받기를 기대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무뚝뚝한 남자 친구였던 나는 서운함을 켜켜이 쌓게 만드는 애증의 존재였다.
우리는 사랑하는 방식이 참 많이 달랐다.
결혼을 하겠다며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을 때, 우리의 차이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언제나 조용했던 우리 집의 분위기는 아들이 예비 며느리를 처음 데리고 온 날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차분히 둘러앉은 식탁 앞에서는 달그닥 거리는 수저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침묵을 깨려고 내가 나섰지만 대화는 끊어지기 일쑤였다. 반면에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처음 인사드리기로 한 날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어색한 침묵만 흐르면 어떡하지. 말수가 적으면 자신감 없는 모습으로 비치진 않을까. 온통 그런 걱정만 하던 나에게 아내는 괜찮다며, 오빠는 웃는 얼굴로 고개만 끄덕이고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리고 정말 그러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아내는 정말 쉴 틈 없는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그저 웃고 있다가 가끔 물으시는 질문에 답하기만 해도 괜찮았다.
아내에게 사랑은 떠들썩하게 다가와서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매일 안아주고 토닥여주고 일상을 공유하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가족. 그녀는 부모님으로부터 직접적으로 표현하며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반대로 나에게 사랑은 고요한 온기였다. 추운 겨울날 집에 들어와 씻고 나왔을 때, 무심히 켜져 있는 이불속 전기장판의 따듯함 같은 것. 사랑은 언제나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말로 표현하지 않는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다.
2005년 군 복무 중 이라크로 파병을 떠났다. 파병 전 마지막 휴가를 보내고 복귀하던 날, 어머니는 먼 길을 가려는 아들이 마음에 걸렸는지 평소 휴가와 다르게 역까지 배웅을 나왔다. 그러나 함께 걷는 모자는 역시 말이 없었다. 역 앞에서 이제 가보겠노라며 뒤를 돌아 걸음을 내디뎠을 때, 어머니의 손이 나의 손을 다급히 붙잡았다.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녀는 아들의 손을 붙들고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꺼내기가 어려웠는지 아니면 맺히는 눈물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지, 고개를 푹 숙인 채 애꿎은 내 손만 쓰다듬듯 만지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어머니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비록 아무 말도 없었지만.
오빠가 나를 사랑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아내는 연애를 하는 내내 서운함을 내비쳤다. 그녀는 말이 없는 남자 친구의 마음은 느낄 수 없다고 했고, 나는 그런 오해가 억울하기만 했다. 그런 우리가 신기하게도 결혼을 했다. 한 집에 산 시간이 제법 흐른 어느 날에 아내가 말했다.
그냥 말 한마디 예쁘게 하면 되는데, 몸으로 때우느라 고생이 많네.
그리고 이제야 오빠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며 생각한 바를 덧붙였다. 그녀는 자신이 신혼집의 세탁기 사용법도,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법도, 재활용 요일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아내가 하려고 하면 내가 할 테니 그냥 두고 쉬라고 한 탓이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아버지가 떠올랐다. 내가 할 테니 그냥 두고 쉬어라. 평생 아버지로부터 들었던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부모님께 받았던 사랑을 그대로 아내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아내가 나를 이해한 만큼, 나 역시 아내가 바라는 모습이 되려고 한다. 조금 더 말과 글로 표현해보려고 애를 쓰는 중이다.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자 지락 편에는 바닷새와 노나라 임금 이야기가 나온다. 바닷새가 종묘에 날아들자 임금이 새를 귀하게 여겨 음악과 고기와 술을 대접했는데, 바닷새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앓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그녀가 나를 이해해주었어도 나 역시 아내에게 맞춰 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가 앓게 될 테니까.
10년. 아내는 그 긴 연애 기간 동안 예쁜 말을 해주지도 않던 나를 왜 만났을까. 프러포즈를 하던 날에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그녀는 연애 초창기를 떠올려보라고 했다. 처음 1년. 반짝이는 눈으로 끊임없이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느냐고. 편지, 메신저, SNS, 그리고 일기장에 증거가 남아있다고. 오빠는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인데 상황이 힘들어서 그랬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기다렸다고 했다.
어쩌면 나도 장인어른만큼 로맨틱한 남편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