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남편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의 글 Jan 21. 2024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부부의 낭만을 찾으려는 노력

결혼식은 끝났다. 왕자님과 공주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뭉갰던 이야기가, 그동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비밀로 해왔던 그 이야기가, 이제 부부에게 현실로 펼쳐진다. 일 년, 이 년, 삼 년. 서로만 갈구하던 낭만은 사라지고 사랑은 생활에 잠식되어 버린다. 부부의 데이트는 끝없는 집안일에도 밀려 가장 후순위가 되기 일쑤다. 잠옷에 떡진 머리와 알고 싶지 않았던 냄새도 적나라하게 마주하며, 서로에 대한 환상은 진작에 깨지고 만다. 준비된 모습으로 만나던 연애 때와는 모든 게 달라진 것이다. 들끓던 축제 뒤에 돌아온 잔잔한 일상은 어딘가 공허한 법이라, 이제 부부의 사랑 자체가 의심스럽다. 사랑의 유효기간은 삼 년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 세상의 모든 부부는 무엇을 믿고 결혼이란 무모한 일에 뛰어든 것일까. 사랑에도 생로병사가 있다면 앞의 이야기는 그저 늙어가는 사랑의 단면인 것인가.




 


오래전 독서모임에서 사랑의 유효기간이 대화의 주제가 된 적이 있다. 당시 모든 참여자가 미혼이었던 상황이라 그랬는지, 사랑에는 유효기간이 있으며 반년에서 최대 삼 년이라는 익숙한 말이 동의를 얻는 분위기였다. 그때 약사였던 한 멤버가 전공 지식을 살려 모두의 편협한 사고를 깨뜨려 주었다.


도파민의 사랑만 사랑이 아니고, 옥시토신의 사랑도 사랑입니다.


사랑을 도파민이 분비되는 강렬한 자극으로만 정의하면, 분명 사랑의 유효기간은 짧다. 보상과 쾌락 그리고 동기부여를 일으키는 도파민은 자극에 금방 적응하고 점점 더 큰 자극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울 것 없는 상대는 금방 지루한 존재가 되고 만다. 그것이 사랑의 전부라면 결혼은 말 그대로 미친 짓이 맞다. 평생을 약속하고 결혼이란 제도 속으로 들어가기엔 사랑의 힘이 너무도 미약하지 않은가. 이런 관점에선 오래도록 배우자에 헌신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위선으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선 평생에 걸쳐 사랑을 지켜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적지 않다. 사회적 애착과 안정감을 주는 옥시토신의 사랑으로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인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옥시토신은 출산 과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산모와 아기가 끈끈한 유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배우자와 안정적인 관계가 만들어졌을 때도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준다. (배우자뿐만 아니라 반려견과의 교감으로도 분비가 촉진된다고 한다.) 실제로 평생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노부부에게 배우자의 사진을 보여주고 뇌 검사를 해보면, 옥시토신 분비가 활발하다고 한다.


미혼 때 우연히 들은 이 이야기는 오랫동안 뇌리에 남았다. 십 년의 연애와 결혼. 오랜 시간이어온 아내와 나의 관계가 강렬한 자극에서 친밀함이 주는 편안함으로 바뀔 때, 권태기라는 딱지를 붙이는 일을 망설이게 도와주기도 했다. 물론 관계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평생에 걸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누군가는 지속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어도 외부에서 저절로 불어오는 감정이 사랑인데, 의지로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것이겠느냐는 의미일 테다. 하지만 식어 버린 사랑이 우리를 힘들게 하는 많은 경우가, 그리고 소중한 가족을 두고 외도를 벌이는 이야기의 대부분이, 바로 사랑을 노력의 대상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거나 어려움을 겪으면서 일어난다. 가수 박원의 노래 <노력>에는 누구나 겪을 법한 이런 마음이 너무도 현실적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나도 노력해 봤어 우리의 이 사랑을
안 되는 꿈을 붙잡고 애쓰는 사람처럼
사랑을 노력한다는 게 말이 되니 

<노력> 2016, 노래 작곡 작사 박원, 편곡 권영찬  


우리는 사랑을 이야기하면 대체로 시작에 초점을 맞춘다. 어떻게 사랑에 빠졌는지 그리고 그 사랑은 얼마나 뜨거운지를 궁금해하는 식이다. 그렇게 타오르던 열정이 차갑게 식었을 때, 사랑이 끝났다고 결론짓고 만다. 하지만 왕자님과 공주님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하고 뭉갰던 동화 속 결말의 진실은 너무도 다른 두 남녀가 부단한 노력으로 공존에 성공하는 다큐멘터리다. 이런 이야기는 낭만적이지도 매력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상대에게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순간에 진짜 사랑은 시작된다.


뜨겁게 끓어오르던 낭만이 잔잔하게 흐르는 낭만으로 바뀌어 우리 사이에 흐를 수 있다는 것을 믿으면서 사랑의 의미를 확장해 가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심산할 만큼 감동적인 최초의 순간들에 잠식당하고 기만당해왔다. 우리는 러브스토리들에 너무 이른 결말을 허용해 왔다.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하는지에 대해서는 과하게 많이 알고, 사랑이 어떻게 계속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무모하리만치 아는 게 없는 듯하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2016, 은행나무

 

결혼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아내와 나의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고 결심했다. 알랭 드 보통의 말처럼 나는 사랑을 건강하게 지속하는 방법을 잘 모른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연애를 십 년간 하고 결혼한 지도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누구나 그렇듯) 감정의 그래프에는 많은 의미가 담긴 굴곡이 생겼다. 낭만적이었던 연애 초기는 존재했는지 알 수 없는 구전 설화처럼 남게 되었고, 오랜 연애는 미지근함과 차가움 그리고 가끔의 열기를 반복하며 어찌어찌 부부의 인연에 도달했다. 시작부터 온도가 떨어진 결혼 생활이었다.


혹자는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낭만적인 부부, 로맨틱한 남편은 둥근 사각형처럼 말이 되지 않는 형용모순이 아니냐고. 오랜 세월을 함께 하고도 아직 포기하지 않았느냐고. 이런 농담에 담긴 현실의 무게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원통형 정도의 절충안을 찾아보고 싶었다. 오랜 연인만이 느낄 수 있는 충만함이, 부부이기에 가질 수 있는 안정감이, 연애 초기의 뜨거운 낭만이 아닌 결혼의 잔잔한 낭만이, 익숙함이 권태가 아니라 행복이 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부부의 사랑을 익히고 싶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로 했다.


글쓰기에는 삶의 문제를 마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해석하고 부부의 사랑을 잘 이어가려는 노력과 성찰을 글에 담아내면, 안정감을 소홀함으로 바꾸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서 나는 다시 로맨틱한 남편이 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