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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개미 Feb 06. 2024

장국영을 그렸다.

그림을 그리며 내가 언제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장국영 사진을 보고 그려본 그림

 나의 그림 그리기는 낙서로부터 시작한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그림 그리는 내 모습'은 할머니 댁에서 형과 함께 그림을 그렸던 순간이다. 우리 형제는 할머니 댁에서 놀다가 심심했는지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할머니를 졸랐다. 그러자 할머니는 창고에서 쓰지 않는 달력을 꺼내오셨다. 달력을 뒤집으니 거대한 하얀 빈 도화지가 나타났고, 우린 그걸 스케치북 삼아 바닥에 엎드린 자세로 신나게 그림을 그렸다. 


 초등학생 때는 학교에서 틈만나면 교과서나 노트에 그림을 그렸다. 주로 만화 캐릭터를 그렸는데 나는 인체를 그리는데 흥미가 전혀 없어서 캐릭터의 얼굴을 주로 그렸다. 머리는 항상 폭탄 머리로 그렸고, 눈은 언제나 초롱초롱하고 큼지막하게 그렸다. 그냥 그걸 반복하는 행위가 재밌었던 것 같다. 친구들에게 그림 잘 그린다는 이야기를 조금씩 듣게 되었고 엄마를 졸라서 미술학원에 다닐 수 있게 되었다.


 미술학원은 첫 수업부터 충격이었다. 내가 그리던 낙서와 미술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그림은 전혀 다른 차원에 있었다. 나는 연필을 쥐는 방법이나 선을 그리는 방법 등 그림의 근본부터 배워야 했다. 선을 일정하게 힘을 주어서 길게 뽑아내야 했고 '명암'이라는 걸 넣어야 했다. 공책에 낙서를 할 때는 캐릭터의 외곽선만 그리면 끝이었는데 미술학원에서는 외곽선보다 선 안의 그림자를 정밀하게 채우는 것이 더 중요했다. 또 만화 캐릭터는 현실에 없는 가상의 인물을 과장해서 그렸지만 미술 학원은 보는 것 그대로 그려야 했다. 점점 그림 그리기는 입시를 위한 수단처럼 느껴졌고 나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에 들어간 뒤로 어느 순간부터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 그림 그리는 것이 나의 취미였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어느새 10년을 살았다. 


 30대가 되어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했다. 아이패드 덕분이었다. 아내가 산 아이패드가 신기해서 이것 저것 가지고 놀다가 프로크리에이트를 접하게 되었다. 이렇게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니. 나는 그림 계정을 만들고 어릴 때처럼 그냥 내 멋대로 그림을 그려 올리기 시작했다. 여전히 채색과 명암을 넣는 일은 어색했다. 미술학원을 다닐때 많이 배워두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걸 후회했다. 그래서 그림을 너무 그리지도 그리지도 않는 애매한 실력으로 그림을 그려서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쉬웠다. 조금 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졌다.


 그림 실력을 키우고 싶어서 최근에 드로잉을 그리기 시작했다. 아직 모자란 실력이지만 관력 서적과 유튜브를 참고하며 조금씩 그려보고 있다. 드로잉을 다양하게 써보라는 유튜브 선생님들의 조언대로 사용해보지 않은 브러쉬를 선택해 위의 장국영 그림을 그려봤다. 이번 과정을 통해 사용하지 않은 브러쉬 중에 괜찮은 것들을 몇 가지 발견했다. 그 중에는 내가 힘들어하는 채색을 쉽게 표현을 해주는 브러쉬도 있었다. 왜 진작 이것들을 써보려 하지 않았을까. 항상 그림은 내 멋대로 그려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더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내 실력이 쌓일 때까지 고민을 더 많이하면서 배우는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 그리기는 습관을 스스로 만들고 또 스스로 허물기도 하면서 '나'라는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이 아닐까. 그림을 그리면 잡념이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 시간동안 끊임없이 나와 대화를 하면서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 되기도 한다. 브러쉬 하나 바꿔서 그림을 그렸을 뿐인데 아주 오랜 기억들까지 떠올라서 잊어버리기 전에 한번 적어보았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데 잘 그리지 못하니 자꾸 지난 날의 나를 마음 속으로 책망하고 있었다. '왜 너는 그림 그리기는 법을 잊고 살았니'하면서. 이제 지난 날에 대한 후회는 그만하고 그럴 시간에 그림 하나를 더 그려보려고 한다. 잘 그리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계속 그리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이제야 이해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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