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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쌤 Feb 21. 2022

기다리는 사람이 되자

아이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르는 아마도의 세계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월요일마다 한자 단어 하나씩을 알려주셨다. 윗집에 살던 할아버지에게 한자 조기 교육을 받아 한자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선생님이 알려주는 한자 단어에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하곤 했다. 글자 하나에 다양한 뜻이 담겨 있다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아주 짧은 시간 동안 11살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정성스럽게 설명해주는 선생님의 모습도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선생님이 알려준 단어 중에서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단어가 있다.


정중동 靜中動


고요할 정, 가운데 중, 움직일 동. 직역하면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라는 뜻이다. 칠판에 저 세 글자를 쓰고 차분히 뜻풀이를 해주던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앞에 그려질 만큼 인상적인 단어로 남아 있다. 처음엔 한자 모양이 예뻐서 집중했는데, 설명을 들으면서 뜻이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다니, 얼마나 우아한가. 당시에는 깊게 생각하기에 너무 어려서 머릿속에 하나의 인상처럼 남았지만, 살아오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마다 ‘정중동의 모습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리고 한 아이에게서 이야기를 끌어내거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도 ‘정중동’은 필요했다.




스스로 말하기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나마 괜찮지만, 낯가림이 심하거나 고민을 깊이 하는 스타일이라면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진다. 한 아이에게만 무한정으로 시간을 줄 수 없으니 학원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아이의 말을 통제하는 것도 필요하기 때문에 질문에 대답이 너무 늦거나 생각이 길어지면 ‘모르면 모른다고 해도 된다’고 말할 때가 있다. 아이가 ‘모르겠어요’라고 대답하면 그날의 이야기 수업은 일단 거기까지 인 것이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이 긴장을 풀어주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어른도 갑자기 쏟아진 질문에 당황하기 마련인데 인생 경험이 없는 아이들을 끝까지 붙잡고 침묵으로 시간을 때우는 것보다 잠시 멈춰주는 게 효율적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아이의 침묵과 망설임 속에 숨겨진 잠재력을 알아채는 것도 나의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된 계기가 있다.


작가가 꿈이라는 아이와 수업을 한 적 있다. 평상시에도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한다는 얘길 들었기에 잔뜩 기대하며 질문을 던졌다.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모험하는 이야기요.”

“어디를 모험하는데?”

“…”

“누가 모험을 떠날까?”

“…”

“주인공은 누구로 해주고 싶어?”

“…”

“사람일까~ 동물일까?”

“…”


눈을 부릅뜨고 질문을 해대는 내가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로 아이는 모험하는 이야기를 만들겠다는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10분 가까이 고민에 빠진 아이 앞에서 ‘내가 질문을 잘 못하고 있나?’ ‘너무 몰아세우나?’ ‘가만히 있어볼까?’ ‘이따 어머니에겐 뭐라고 설명하지?’ 등등… 수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갔다. 원래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난 조금 더 시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입을 열었다.


모험을 시작하려면 주인공이 있어야 하는데?”


잠시 더 고민을 하던 아이가 작게 말했다.


“아무도 없는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럼 '아무도'라는 사람이 나온다고 할까?”라고 말했다. 내 말에 아이는 신이 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도’라는 주인공을 설정하고 나자 아이의 말문이 터졌다. 순식간에 <아무도 씨가 배를 타고 어떤 섬으로 모험을 떠나는데 섬의 이름은 ‘아마도 섬’이고, 그곳에서 말도 안 되는 동물들과 엄청난 보물을 발견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아이는 입을 닫고 있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게 아니었다. 어쩌면 속으로 진짜로 주인공이 없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고, 아무도 생각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입밖으로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침묵을 뚫고 나온 그 한 마디가 이야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모른 채 상상 속을 헤엄치고 있던 아이에게 나는 적절하게 파장을 일으켜 입을 열게 만든 셈이다.


끝까지 책을 완성하진 않아 아쉬웠지만 이 이야기는 아직도 내가 고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 중 하나다. 숨 막힐 것 같은 침묵을 헤매는 이야기 모험 속에서 발견한 보물이랄까.


말을 잘하는 아이들도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고요의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이 필요한 만큼, 자유롭게 고민하는 시간 말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창기에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한참 동안 슬럼프에 빠져 입을 닫은 아이에게 이러이러한 게 맞지? 하고 동의를 얻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킨 적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이야기로 그림을 그리자 아예 다른 장면이 나왔다. 뻔하고 애매한 결말이 만들어졌다. 책이라는 결과물은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진짜 아이가 원했던 건지는 미지수다.


스토리텔링의 시작에는 질문이 있지만 그다음은 아마 이야기를 만든 이의 고요한 시간들이 지배하는 게 아닐까. 겉으로는 고요해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열정과 움직임, ‘정중동’이 상상을 하는 아이에게는 충만해 있다. 앞서 말한 ‘아마도 씨’의 이야기와 비슷한 경험이 몇 번 반복되면서 나는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만큼, 앞서 결정을 해주거나 조급하게 몰아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기다림의 시간은 좋은 질문이 무르익는 시간이기도 하다.


아이들은 모든 게 처음이라서 길을 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건 필요하지만,
처음 만든 길에서 나오는 표현들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그 길을 내가 함께 탐색하다 보면 나조차도 몰랐던 길이 펼쳐진다.
아이들과 이야기하는 게 지금도 새롭게 느껴지는 건
내가 ‘아마도 섬’을 향하는 모험가 ‘아무도 씨’를 만났기 때문 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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