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
주의! 이 기사는 지나치게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담아 아주 재미가 없을 예정이다. 만약 서점에서 에세이 코너를 피해 가는 타입이라면 열람을 고려해 보길 바란다.
대학에 왔다. 여섯 개의 수시 카드 중 세 개를 여대에 썼다. 여대에서는 나와 세상을 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표현할 방법을 모르고 말할 곳이 없어 끓어오르던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그랬다. 가부장제와 결탁한 자본, 이윤을 지탱하는 부불노동, 페미니즘의 역사. 여성 해방을 외칠 수밖에 없는 앎의 영역이었다. 함께 가부장제에 대항하자. 체제를 전복할 힘을 모으자. 시야를 확장해 나아가자. 많은 선언과 구호가 나를 이끈다. 하지만 이곳에서 배운 모든 대항의 주체는 ‘여성’이고 또 ‘여성’이었다. 그렇다면 여성이란 누구인가?1)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여자대학교에 다니는, 누가 봐도 여자인 나도 나를 모르는 채 살아가는데.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보부아르의 말은 많은 이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나 역시 이 문장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하지만 충격의 이면에는 어딘가 거북한 느낌이 있었다. 당시에는 설명할 수 없었으나 이제는 그 의미를 안다. 버틀러의 지적처럼, 여성은 언제나 만들어지지만 만들어진 여성이 반드시 여자라는 확언이 없다는 빈틈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으로 태어나지도,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데 성공하지도 못한 나는 ‘누구’로도, ‘무엇’으로도 호명되지 못하는 존재로 남는다.
그러나 모두가 나를 여자로 알고 있기에 나는 그들의 앞에서 여자가 되어야 한다. 며칠 전에는 미용실에 갔다. 비가 왔는데 바지가 젖는 게 싫어 오랜만에 원피스를 입었다. 짧지 않은 머리에 화장한 얼굴, 밑이 뚫린 옷을 입은 나는 누가 봐도 영락없는 ‘여자’였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머리를 하는 내내 숨이 막혔다.
이렇게 가슴이 답답한 날이면 ‘악어’가 떠오른다.2) 사람의 옷을 입고 사람 사이에서 살아가는 그 ‘악어’. 세상은 악어의 모습을 멋대로 상상하고 규정하며 떠들어 대지만, 정작 악어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악어들은 ‘악어클럽’에서 처음으로 서로를 확인하고 인간의 탈을 쓰지 않은 ‘악어’ 자체로서 호흡한다. 그러나 자유로움도 잠시, 그들은 그곳에서 인간의 옷이 벗겨진 ‘진짜’ 모습을 노출하게 된다. 악어클럽은 사실 악어를 색출해 내기 위한 함정이었던 것이다. 결국 악어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악어는 꼭 나를 대변하는 것 같다. 커밍아웃이 언급하고 싶지 않은 일로 치부되는 것처럼 말이다. 절망적이었던 첫 커밍아웃에 대해 말해 볼까? 밤은 늦었고, 엄마는 자고, 아빠는 집에 오지 않았고, 맥주를 한 잔 마시며 동생과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옛날이야기를 늘어놓다 보니 이때가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막상 결심하고 나니 심장이 빨리 뛰는 게, 이러다가는 정말로 멎어 버릴 것만 같았다.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동생의 손을 잡았다. 운을 띄우고도 한참을 주물럭거렸다. 나 여자를 좋아하는 것 같아. 이렇게 말하니까 동생은 우스갯소리로 그랬다. 그럼 남자 아이돌은 왜 좋아했대? 장난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이지만 반응해 준다는 게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 겹치고 있던 손을 놓았다. 취하지도 않았는데 술기운이라는 핑계로 한마디를 더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있잖아. 말해. 나 있잖아. 응. 그게······. 아 뭔데? 나는 내가 여자라고 안 느껴져. (······) (······) 언니가 지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불안정해서 그런 거 아니야? 입시 끝나고 다시 생각해 보는 게 낫지 않아?
존나 후회했다.
너무나도 단호해서 할 말이 없었다. 표현을 잘못 골랐나. 때가 아니었나.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성공도 실패도 아닌 어중간한 고백과 함께, 나는 끊임없이 무화될 뿐이라는 사실이 나를 아프게 찌르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가 스스로에게 상처 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마땅한 길은 없다. 겨우 찾아낸 방법이라고는 자기 검열뿐이다. 악어가 사람의 옷을 입고 악어클럽에 모였듯, 나 역시 사람들과 마음 가까이 살아가기 위해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진정한 나'를 드러낼 수 없는 나는 친밀한 타인과 함께하기를 원하면서도, 쉽사리 안정적인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규범에서 벗어난 '나'라는 존재가 과연 누군가에게 유약한 내면을 꺼내 보일 수 있을까? 내겐 새로운 사람과 세상을 만나 긴밀하게 닿을 용기가 아직 없고, 뛰어넘어야 할 벽은 너무나도 높다.
악어는 성별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들의 성별은 온도에 따라 결정되어, 부화 전까지는 성별이 없는 상태 또는 중첩된 채로 존재한다. 그러다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는 순간에야 비로소 정해진다. 삶 전체에 거친 이러한 투쟁의 과정은 각자에게 전부 다른 과정으로 남는다. 내가 나만의 경험으로 오롯한 길을 만드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는 나 역시 ‘악어보호단체’와 ‘악어멸종행동연맹’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3)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4)
내가 깨야 할 세계의 벽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다. 끊임없는 미스젠더링 역시 나를 가로막는 벽 중 하나다.5) 내게 커밍아웃은 당신을 믿는다는 신호이자 나를 조금 더 드러내기 위한 시도다. 그래서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에게는 꼭 말하고 싶었다. 너에게 나에 대해 알려 주고 싶다고. 그렇지만 이 은밀한 비밀을 공유할 때 느껴지는 어색한 공기에는 도통 익숙해지질 않는다. 조심스럽게 말꼬를 트며 품었던 은근한 기대, 더는 숨기고 싶지 않은 답답함, 아웃팅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해방감까지. 커밍아웃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래서 커밍아웃한 친구에게 이런 얘기를 들을 때면 형용하기 어려운 감정에 휩싸인다. 이 감정에 분노라는 이름을 붙여도 될까, 하는 고민까지.
야 니 방금 존나 하여자 같았음
어라 씨발 그래?ㅋㅋ
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웃는다. 중년 남성의 무례 앞에서도 꽃같이 미소 짓는 젊은 여자처럼. 그러나 반격의 순간을 노리는 것은 아니다. 단지 조용히 넘어가기 위해 웃을 뿐이다. 내게는 이 관계를 중립적으로 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기충돌을 겪으면서까지 애써 세운 관계의 탑을 무너뜨린다면 나는 다시 숨게 될 것만 같았다. 찰나의 순간, 지나가는 가벼운 말 한두 마디로 ‘분란을 만드는 이상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므로 백스페이스키를 꾹 누르듯 말을 삼킨다. 근데있잖아우리좀친해지고나서나는논바이너리라고말했던거기억안나?뭔지모른다길래설명도했었잖아내가……. 그러면 모두 사라진다. 대신 평소와 같은 나만 남아있다. ‘평소’도, ‘나’도 무엇인지 모르는 채로 자리를 지킨다. 단 한 번도 솔직했던 적이 없으니까, 적당히 남들처럼 반응한다.
나 정도면 상여자거든?
이따금 삶의 모든 순간이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그 몸부림은 승리나 극복을 위한 고결한 싸움이 아니라 처절하게 온몸을 흔들고 부딪는 흙탕물에서의 싸움이다. 더럽게라도 이기려면 인생을 내주어야 할 텐데, 친구와 나눈 대화 한 번으로 이렇게 소진되는 주제에 꿈이 참 크지, 싶다.
이처럼 실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욕망에 솔직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나를 드러내 보이고 싶은 마음, 그 누구도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는 세상이 도래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세상을 만드는 데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 짐작하기에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않는다. 몽상가가 다 되었다며 자조하기도 한다. 하지만 나와 달리 담대한 누군가는 이렇게 말했다. 커밍아웃이 누군가에게 반하는 듯한 느낌이라면 디스포리아는 심장마비 같은 느낌이라고, 그렇기에 실망의 다른 이름은 사랑이라고.6) 이것을 롱 추와 함께 “실망의 로맨스”라고 불러 보자. 가질 수 있음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더욱이 원하게 되는 모순에 낭만이라는 이름을 붙이자.
원하면 가질 수 있을 것이기에 원하는 것이 아니다. 원하기에 원하는 것이다.
이 근본적이고 변함없는 실망이 그 모든 욕망을 구조 짓고 가능케 한다.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것만을 원한다면, 결국은 아무것도 원하지 못할 것이다.7)
“내게 여성을 좋아한다는 것과 여성이 되고 싶다는 것은 실은 단 한 번도 구분되지 않았다.”8) 이 글을 쓰는 지금조차도 나는 여자가 되기를 강렬히 원한다. 나의 여성 정체성이 아주 미약하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 그 무언가라면 어떻게 그것을 원할 수 있겠는가? 욕망은 결핍을 함의한다. 욕구는 욕구를 함의한다.”9) 결핍 또는 부재를 실감해야만 원하게 되는 것이라니, 인식하기조차 쉽지 않다.
모두가 나를 여자라고 알고 있기에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좀 전의 진술은, 엄밀히 말하자면 거짓일지도 모른다. 타인이 나의 젠더 정체성 형성에 개입해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무슨 모습을 하든, 그리고 진실이든 아니든 외부 세계는 나를 레즈비언으로만 바라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안락한 정상성의 사회에 크게 저항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배격당하지 않기 위해 매분 매초 분투한다. 심지어 레즈비언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에조차 순응한다. 이처럼 욕망하는 이들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기 위해 스스로를 조금씩 지우는 경험은 분명 나만의 것이 아닐 테다. 하지만 나는 단지 여자가 아니기에 이상적인 여성상을 열망하는 것뿐이다. 나의 일부는 원하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세계와 나 사이의 이질감을 줄여 보려는 시도이자 관계맺음에 대한 갈망이다.
걱정하지 않으면 무엇이 대신 남을까.
명랑성.10)
그러니 내가 속한 세상을 아름답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수많은 알의 껍데기를 뒤로 하고 내 안에 숨겨진 명랑성을 찾아낼 수 있을까? 삶에는 때때로 절망이 찾아온다. 올해만 해도 서울시가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서울광장 사용을 불허하는 일이 있었다. 이럴 때면 애써 지나쳐 온 껍데기 뒤로 도망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내가 누구인지, 세상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모르던 그때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비겁하고 싶어지는 날조차도 결국 숨을 곳 없음을 느끼고 만다.
소수자로서의 삶이 주는 고충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 심지어 가장 친밀한 이들이라고 여기는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나의 정체성은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차별과 배제, 낙인의 시선이 없는 순간 역시 찰나다. 거리를 행진하며 우리의 자긍심을 크게 노래하는 날, 지금, 여기 있음을 외칠 수 있는 몇 시간. 소외되기에 존재한다고 말하고 수치와 혐오 속에서 살기에 긍지로 연대한다. ‘내 편’이 가득했던 올해 칠월의 을지로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소속감을 느꼈다. 하지만 이러한 소속은 아주 느슨하고 산발적이다. 그 하루가 지나면 우리가 걸었던 뜨거운 아스팔트 위로는 다시 차가 달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 나를 단단히 붙잡아 줄 ‘우리’가 없기 때문일까.
거대한 바다 위를 부표처럼 떠도는 삶은 단절과 맞닿아 있다. 퀴어 동료들과의 인연은 대개가 한정적이며, 설사 명명할 수 있는 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우리는 너무나도 쉽게 떠돌거나 사라지거나 죽는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이제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느슨하게 연결된 모든 우리들에게 직접 말을 건네는 꿈. 솔직하고 명랑하고 아름답지는 못해도 의연한, 악수로 나의 다짐을 전하며 연결되는 꿈.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루는 날이 오기를, 이 글을 읽는 당신들이 함께 바라 주었으면 한다.
“갈 수 없는 좁은 길을 봤어요
쉼 없이 갈망하던 끝에
또 무던히 받아들여진대도
가난한 맘 몫이겠어요
난 멋진 사람이 되어
큰 등불을 켜고 나선
발길 없는 저 큰 나무 아래로
피어오른 아집들이 내려앉길 기다리다
움츠린 손에 다 덜어낼게요”11)
1) 관련 내용이 궁금하다면 「근맥」 84호 〈‘여성’〉 참고.
2) 악어는 대만의 퀴어 소설 『악어노트(鰐魚手記)』에 등장하는 존재다. 일상을 이어 나가기 위해 요구되는 ‘커버링’에 순응하며 때때로 ‘아웃팅’의 위협을 겪는 성소수자들을 의미한다.
3) 악어보호단체와 악어멸종행동연맹은 『악어노트』에 등장하는 단체로, 각각 악어의 처분에 대해 ‘보호’와 ‘멸종’이라는 상반된 관점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차별과 배제의 논리로 악어를 바라보며 오직 승인의 여부를 다툴 뿐이다. 따라서 두 입장에의 근본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4) 헤르만 헤세. (2000). 데미안(전영애, 역). 서울:민음사. (원저작출판, 1919). (123쪽).
5) 미스젠더링은 당사자(특히 트랜스젠더퀴어)가 정체화한 성별을 다르게 추측하거나 규정, 판단하는 일체의 것들을 말한다.
6) 안드레아 롱 추. (2023). 피메일스(박종주, 역). 서울:위즈덤하우스. (원저작출판, 2021).
7) 위의 책(177쪽).
8) 위의 책(144쪽).
9) 위의 책(176쪽).
10) 김진영. (2018). 아침의 피아노. 발행지:한겨레출판. (218쪽).
11) 카더가든. 의연한 악수. C(2019).
참고문헌
구묘진. (2019) 악어노트(방철환, 역). 고양:움직씨. (원저작출판, 1994).
김진영. (2018). 아침의 피아노. 서울:한겨레출판.
안드레아 롱 추. (2023). 피메일스(박종주, 역). 서울:위즈덤하우스. (원저작출판, 2021).
카더가든. 의연한 악수. C(2019).
헤르만 헤세. (2000). 데미안(전영애, 역). 서울:민음사. (원저작출판,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