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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근맥교지편집위원회 Apr 17. 2024

[86호][여성] 지금부터 막을 올립니다.

수습위원 변수정


▲ 10대 소녀팬과 조금앵 배우 ⓒ‘영희야놀자’ 블로그
 언니, 저는 이제 시집은 다 갔어요. 정혼자에게도 언니를 너무 사랑하니까, 이런 내 마음 조금도 이해 못 해줄 거면 이 결혼 나는 못 하겠다, 그렇게 말해버렸는걸요. 밤에 자려고 누우면 언니의 얼굴이 자꾸만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길을 걷다가도 언니 목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요. 그때, 왜 저에게 사랑한다고 해주셨나요? 단지, 제가 언니의 팬이라서요? 진심으로 저를 조금도 사랑하신 적이 없으신가요? 그렇다면 저, 차라리 연구생이 되겠어요. 언니 요번에 부산 가실 때, 저를 데리고 가세요. 가서 밥도 짓고, 수건도 빨고, 케이스도 나르며 언니 시중을 들겠어요. 무대에서 햇님 왕자와 달님 공주가 나눈 사랑만 사랑이 아니에요. 언니를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바칠 수 있는 제 사랑도 가벼이 여기지 말아주세요. 왕자를 사랑하는 것이 소녀의 숙명인걸요. 부디, 저를 언니의 연구생으로 받아주세요. 그럼, 당일에 뵙겠어요.
- 1963년, 봄. 명동 시공관 앞에서, 언니를 사랑하는 선화 올림.


 모든 건 무대에서 시작된다. 주인공은 언제나 소녀. 소녀는 왕자가 된다. 동시에 소녀는 공주가 된다. 소녀는 소녀를 사랑한다. 조명이 꺼진 뒤에도 남는 건 소녀의 사랑. 붉은 피로 써 내려간 편지에는 영원을 맹세한 사랑이 가득하다. 치열한 칼싸움을 뒤로하고 턱 끝에 맺힌 땀방울과 입술 한 뼘 사이로 오가는 뜨거운 숨에 주목하시라. 자, 오늘 여기. 여성국극1)의 막이 다시 오른다. 여성국극에 대해 몇 가지 사실만 알아둔다면 당신은 극이 시작하기 전에도 분명 팬이 되어있을 것이다.


 여성국극은 창극2)의 일종으로 모든 배역을 여성들이 연기한다는 점에서 창극과 구분된다. 1948년, 국극은 판소리 ‘춘향전’을 각색한 <옥중화(1948)>3)를 무대에 올리며 시작되었다. 여성만의 공연을 기획하고, 주최한 것은 당시 국악 단체들의 남성 중심 운영과 폭력성에 반발한 박녹주 명창이 만든 ‘여성 국악동호회’였다. <옥중화(1948)>는 박녹주, 김소희, 박귀희, 임춘앵, 김진진, 조금앵 등 수많은 여성국극 주연 배우를 배출하였으며, 여성국극 시대의 막을 올렸다. 이듬해인 1949년, 공연한 <해님과 달님(1949)>은 한국 전쟁 중에도 피란지에서 공연이 열릴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공연이 잇따라 성공하면서 여성국극은 대중문화의 주축으로 자리 잡았다. 여성국극의 전성기를 함께한 <해님과 달님(1949)>의 인기는 서울 시내는 아침에 해님으로 뜨고 저녁에 달님으로 진다는 말까지 만들어냈다. 1950년 대중은 국극과 사랑에 빠졌고, 여성국극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당시 여성상에서 벗어난 국극을 평론가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여필종부(女必從夫) 해야 하는 여성이 감히 한 나라의 장군, 책사, 왕자를 연기할 수 있단 말인가? 경향신문은 “여자만의 국극이 탄생. 남자가 가열하지 않아도 여자만으로도 능히 할 수 있다는 자과자시(自誇自示)만은 좋으나 이러다간 여자만의 영화도 나올 것이고 그러다간 여자만의 세상이 될까 걱정”된다며 말을 얹었다.4) 평론가들은 여성국극이 화려한 무대 의상으로 사람들을 현혹할 뿐이라고 비판하였다. 창극계에서도 여성국극은 예술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여성국극의 등장은 ‘창극사의 씻을 수 없는 오명’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대중들의 생각은 달랐다.

 여성국극은 기존에 접할 수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공연예술을 선보였다. 국극은 대중들이 즐겨왔던 창(唱), 전통춤, 전통음악, 재담(才談) 등의 전통 공연예술과 전쟁 이후 새롭게 유입된 오페라, 뮤지컬 등의 요소를 결합한 종합예술을 만들어냈다. 판소리 창법으로 익숙한 민족의 정서를 잇고, 연출, 음악, 대사를 통해 뮤지컬 식 기법을 더했다. 국극은 도전을 꺼리지 않았다. 시스루의상을 입고, 주한미군 소유였던 미러볼 아래에서 시대상에 얽매이지 않는 대사를 뱉었다. 대중들이 국극을 사랑했던 이유는 분명하다. 국극은 엘리트주의를 벗어나 시대 편견에 저항했고, 재미와 교훈도 잃지 않았다.


 국극 무대의 막이 오르는 날이면, 명동 시공관(현재 명동예술극장)으로 고무신을 신은 소녀들이 모여들었다. 저마다 가슴에 꽃다발을 안고 각자의 스타를 기다리는 일명 ‘고무신 부대’ 소녀 팬층이 생길 수 있었던 건 주로 니마이5)들의 활약 덕분이었다. 그들은 배역에 걸맞는 ‘미남’이었고, 그들의 연기는 소녀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니마이의 인기가 제일 많았다. 하지만, 소녀팬들이 니마이만 좋아한 것은 아니다. 빠지면 심심한 삼마이6)와 빠져서는 안 되는 가다끼7), 여성 역할 주연까지도 인기를 누렸다. 국극은 여성이 맡을 수 있는 배역에 한계가 없기 때문에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성별을 오가는 연기를 볼 수 있었다. 주로 니마이를 맡던 배우가 가녀리고 아름다운 여성 역할 주연을 맡기도 했으며, 니마이가 사정상 무대에 오를 수 없는 때에는 그를 대신해 가다끼나 삼마이, 여성 역할 주연 배우가 대신해서 무대에 올랐다. 

   

▲ (좌) 1958년 ‘별하나’의 김경수(왼쪽)와 김진진(오른쪽) | ▲ (우) 1959년 조금앵(왼쪽)과 박미숙(오른쪽) ⓒ강유가람

 소녀팬들이 배우의 외모만 좋아한 것은 아니었다. 배우들은 무대 밖에서도 자신이 맡은 배역을 이어갔다. 순종적인 여성상을 요구하는 사회 속에서 박력 있는 남성을 연기하는 배우의 모습은 소녀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소녀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를 따라서 머리를 자르고 바지를 입었으며 성큼성큼 걷고 박력 있게 행동했다. 그들을 좋아하는 마음이 국극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국극의 매력에 빠진 소녀들은 국극단에 가입해 연구생8)이 되었다. 그들은 주로 자신이 좋아하는 언니의 곁에 붙어 시중을 들었다. 화장을 지우는 수건을 하얗게 빨아오거나 분장용 화장품이 잔뜩 들어있는 무거운 케이스를 들고 공연장을 따라다녔다. 때로는 팬이라는 장벽을 넘어 직접 무대에 참여하기도 했다. 연구생의 신분으로 맡을 수 있는 배역에는 한계가 있어지만, 그들은 분명히 무대의 일부였다.

 그들이 사랑을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에는 스타 배우들의 팬서비스를 빼놓을 수 없다. 배우들은 그들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가짜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니마이로 활약한 조금앵은 스튜디오를 대여해서 팬과 결혼사진을 찍었다. 결혼식을 빛내준 하객들 역시 국극단 배우들이었다. 배우들의 팬서비스에 소녀팬들의 사랑은 커져만 갔다. 일부는 여성과 이어질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움을 느껴 자살소동을 벌였으며, 닿을 수 없는 마음을 혈서로 표현하기도 했다. 금전적인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국극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준 소녀팬들은 1960년대 여성국극 쇠퇴기에도 자리를 지켰다.

▲ 조금앵 배우와 팬의 가상 결혼사진 ⓒ여성국극제작소

 1960년대 여성국극은 쇠퇴기를 맞이한다. 1962년 군사독재 시절, 정권은 국가적 위세를 높이고, 정권을 강화하기 위해 문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서구 열강에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는 우리만의 ‘힘 있는 전통’을 선별하여 보존하고, 계승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때 여성국극은 ‘힘 있는 전통’에서 제외되었다. 국극이 빠진 자리에는 남녀 혼성 창극 중심의 국립국극단(현재 국립창극단)이 세워졌다. 정부가 지정하는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에도 여성국극은 포함되지 않았다.

 국극이 쇠퇴하면서 배우들은 부모의 압박으로, 혹은 생계유지를 위해 남성과 결혼했다. 결혼 후에도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이들은 약장수를 따라 변변치 않은 무대에서 공연하거나 요릿집에서 토막극을 했다. 일부는 영화계로 진출하였고, 국극에 대한 자부심과 자존심을 버릴 수 없었던 일부는 해외로 거처를 옮겼다. 서로에 대한 소식은 끊겼고, 신문과 방송에서는 여성국극의 흔적을 지웠다. 그러나 국극은 계속해서 나아간다. 남은 배우와 팬들은 ‘옥당 국극보존회’를 설립하고 여성국극의 맥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여성국극은 오늘날에도 덧붙여지고, 새롭게 쓰이며 다양한 무대에서 관객에게 전달된다. 여성국극 연구자이자 예술가인 정은영은 성별의 ‘수행’을 통한 인위성에 주목한다. 남성성은 흔히 남성의 몸에 있을 때, 자연스러우며 본질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성국극에서 배우들은 ‘진짜’ 남성이 되기 위해 남성 의복과 분장, 남성적인 어투, 동작, 발성, 춤사위 등 남성성을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그 결과, 배우들은 이를 자연스럽게 체화한다. 이처럼 남성을 연기하는 것은 여성성과 남성성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니며, 복제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여성국극을 배경으로 한 웹툰 <정년이(2023)>의 서이레 작가 또한 왕자를 기다리던 공주가 직접 왕자가 되는 국극의 매력에 빠져 작품을 기획했다고 밝혔다. 현대에 이르러 재해석되는 국극 무대는 성별 규범을 무너뜨리고,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장소로 탈바꿈된다. 국극단 내에서, 혹은 외부에서 모든 사랑이 그저 사랑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였다. 


 2019년 열린 제3회 드랙킹 콘테스트에서 올헤일은 페미니즘적이고, 퀴어적인 <드랙x여성국극 춘향전>을 선보였다. 해당 공연에는 여색을 밝히는 변 사또가 여성성을 시기하는 인물로 표현되고, 이성애 중심에서 벗어나 춘향과 향단의 성애적 서사가 이어진다. 국극이 남긴 방향성을 새로운 예술로 표현한 것이다.  

▲ 2019년 제3회 드랙킹 콘테스트 <드랙x여성국극> 포스터 ⓒ올헤일

 국극의 예술성은 계속해서 확장된다. 당신도 국극의 예술성에 반했는가? 축하한다. 새로운 소녀팬의 탄생이다. 꽃다발을 품에 안고, 새롭게 국극에 입문한 이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지난해 여름, 여성국극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여성국극제작소가 안산문화재단과 함께 공연한 <레전드 춘향전>에는 국극을 만든 1세대부터 이어나간 2세대, 3세대까지 모였다. 93년생부터 93세 배우까지 전부 모인 해당 공연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사라질 듯 부활하는 여성국극’ ‘최초이자 마지막 공연’으로 홍보되었다.9) 국극을 기억하는 것을 넘어, 관객으로 무대에 참여하고 싶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레전드 춘향전>이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여성국극제작소와 국극보존회에 관심과 사랑을 보내는 것. 선배 팬들이 그러했듯이 무대 아래를 지키는 일이다. 자, 정말로 이제는 국극과 사랑에 빠질 시간이다. 그럼 즐거운 관람 되시기를. 


▲ 여성국극 배우 조금앵의 분장 모습 ⓒ<왕자가 된 소녀들> 자료화면


(내레이션)
공주궁의 비밀 4막 5장.
그렇게 서동과 선화공주는 재회하는데..
과연 서동은 갖은 위협에도 선화공주와의 사랑을 지킬 수 있을까?
선화공주는 서동과 함께 위기를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곳에서 부활한 그들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
자, 지금부터 막을 올립니다. 



1) 국극은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극을 의미하지만, 일반적으로 '여성국극'이라고 부른다. 본 기사에서는 '여성국극'과 '국극', 두 단어를 함께 사용하였다.

2) 두 명의 소리꾼만 소리를 주고받는 판소리와 달리 창극은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소리를 주고받는다. 여러 명의 소리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며 판소리보다 극적인 성격이 부각된다.  

3) 옥중화(獄中花). 변 사또의 수청을 들지 않아 옥에 갇힌 춘향이를 의미한다. 판소리 춘향전을 창극으로 바꾸어 공연하였다.

4) 김혜정 (감독). (2013). 왕자가 된 소녀들 [다큐멘터리]. 영희야놀자.

5) 니마이는 남성 역할 주연 배우를 이르는 은어이다. 이들은 여성 역할 주연 배우보다 월등히 인기가 높았으며 능숙한 칼싸움 솜씨, 낮은 목소리, 미형의 외모를 갖추어야 했다. 대표적인 배우로 임춘앵, 조금앵, 이옥천 등이 있다.  이몽룡, 로미오, 온달 등의 역할을 주로 소화했다.

6) 삼마이는 남성 역할 조연 배우를 이르는 은어이다. 이들은 웃음을 담당하는 조연이었다. 보통 연극 대본 세 번째 장에 남성 희극 조연 배우 이름을 적는 것에서 유래하였다. 대표적인 배우로 김혜리, 조영숙, 이미자 등이 있다.  방자 등의 역할을 주로 소화했다.

7) 가다끼는 남성 역할 악역 배우를 이르는 은어이다. 여성 역할 주연과 남성 역할 주연의 로맨스를 방해하는 역할이다. 대표적인 배우로 이소자, 정은영, 이미자 등이 있다. 변 사또 등의 역할을 주로 소화했다.  

8) 국극단의 단원을 부르는 용어이다. 무대에 서는 선배에게 연기와 춤, 노래를 배운다. 연구생 중 일부는 배우의 시중을 들기도 한다.

9) 정혁준. 「힘든 시대 위로했던 여성국극…세대 넘어 부르는 ‘부활의 노래’」. 『한겨레』. 2023.08.26.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05868.html(2024.01.12. 접속).


참고문헌

김경윤. 「국립극장 오르는 웹툰 '정년이'…작가 "무대화 꿈꾸며 작업했죠"」. 『연합뉴스』. 2023.01.09. https://www.yna.co.kr/view/AKR20230108040000005(2024.01.31. 접속).

김다은. 「지금도 무대에 오르는 88세 명인의 꿈, 여성국극 맥 잇기」. 『시사IN』. 2023.11.15.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863(2024.01.25. 접속).

김서현.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드랙과 퀴어로 상상한 춘향전」. 『여성신문』. 2019.12.03.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94725(2024.01.31. 접속).

김수현. 「역사책에 실리지 않은 여성국극, 예술로 부활하다」. 『SBS NEWS』. 2023.04.16.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7154522(2024.01.31. 접속).

김지혜. (2012). 여성국극의 역사, 다시보기와 재현.http://www.sirenjung.com/index.php/textbyothers/----/(2024.01.23. 접속).

김혜정 (감독) (2013). 왕자가 된 소녀들 [다큐멘터리]. 영희야놀자.

남민영. 「명동에는 '왕자가 된 소녀들'이 있었다」. 『에이코믹스』. 2015.06.12. https://www.huffingtonpost.kr/news/articleView.html?idxno=6613(2024.01.23. 접속). 

도혜원. 「여성 배우가 연기하는 이 도령과 로미오」. 『아트인사이트』. 2021.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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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훈. 「퀴어가 당연한 세계에서 퀴어를 말하기 - <드랙x남장신사> 드랙킹콘테스트」. 『연극in』. 2022.06.30.https://www.sfac.or.kr/theater/WZ020600/webzine_view.do?wtIdx=12832(2024.01.31. 접속).

박주연. 「“끊어질듯 이어지고 사라질듯 부활”하는 여성국극」. 『일다』. 2023.08.16.

https://www.ildaro.com/9701(2024.01.25. 접속).

이태훈. 「93세부터 93년생까지… 세대 넘어 돌아온 국극」. 『조선일보』. 2023.08.29. https://www.chosun.com/culture-life/performance-arts/2023/08/29/EK73WIB565GODOYVCPB2TRHUMQ/(2024.01.12. 접속).

정은영. (2013). 여성국극, '남자'되기의 정치. http://www.sirenjung.com/index.php/text/--/2/(2024.01.23. 접속).

정혁준. 「힘든 시대 위로했던 여성국극…세대 넘어 부르는 ‘부활의 노래’」. 『한겨레』. 2023.08.26.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105868.html(2024.01.12.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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