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분들 다 적어내셨는데 하..."
통화 중 상대가 말끝에 한숨을 쉬었다.
들으라고 한 건지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왔는지 알 수 없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의뢰서를 받으러 병원에 들를 일이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간호사가 서류를 내밀었다.
"여기에 서명해 주세요"
"이게 뭐예요?"
"진료 내용을 공유한다는 뜻이에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하면서
"저기... 진료 내용을 공유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요"라고 했다.
간호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응시하며 말했다.
"뭐가 모르겠다는 거예요?"
"어... 그러니까..."
이미지- 영화 <건축학개론>
주민번호 13자리를 모두 적어 내거나 서명해야 하는 일이 근래에 잦았다.
적고 말고, 서명하고 말고의 선택의 여지도 없는 일이었지만 궁금한 게 많은 나는 질문을 안 할 수가 없었다.
매일 해당 업무를 한 사람은 이미 익숙한 일이고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반면 상대는 처음 겪는 일이라 왜 적어야 하는지, 왜 서명해야 하는지 이해가 필요한데 말귀 어두운 답답한 사람, 유별난 사람처럼 대하니 좀 억울하다.
'남들 다 하는데 왜 너만 안 했냐'
'좀 전에 설명 다 했는데 왜 또 묻냐'
꼭 필요한 일이라서 해야 하면 상대에게 적어도 읽어 볼 수 있는 시간적 여유와 궁금한 게 있는지 물어봐 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