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 없는 창작자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고 있는가

by 그사이

"이건 삶에 대한 모독이다."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이 AI를 향해 거친 속내를 표출했다.

"AI가 그린 결과물은 실제 작업하며 만드는 사람의 고통을 전혀 모른다. 완전히 역겹다."

그리고 그는 결단코 자신의 작품에 AI 기술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완강함 또한 내비쳤다. 이 인터뷰를 한 지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인터넷에는 그의 작풍을 그대로 베낀 AI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이 유행에 동참했고, 수만 장의 이미지가 만들어질 때까지 저작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좀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심지어 AI 이미지를 제공한 OpenAI의 CEO는 이러한 흐름에 올라타 자사의 기술력을 슬며시 자랑했다. 이쯤 우리는 여기서 말하는 거장이 바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유행했던 작풍이 지브리풍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그토록 혐오하던 AI에 의해 일평생 갈고닦았던 작풍이 강탈되는 순간을 마주친 그의 심정은 어땠을까?


AI 이미지 오남용은 비단 최근에만 벌어진 일이 아니다. 불과 몇 년 전에도 AI를 이용해 각종 영화 이미지를 웨스 앤더스 감독 스타일로 바꾸는 유행이 있었다. 극한의 좌우 대칭과 최소한의 카메라 워킹을 추구하는 그의 연출 스타일이 그 시절 AI 이미지 생성 기술에 가장 최적화되어 있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에도 감독의 의도를 훼손하는 무분별한 AI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행은 그저 유희에 불과하다며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문제냐고 반문한다. 그러면서 '선비짓'한다면 비판을 일축한다. 실제로 '스타일' 같은 비물질적 가치는 저작권 보호 범주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를 삼기에도 한계가 있다. 일본 국회에서도 AI를 이용한 지브리풍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현행법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명확하게 문제의식을 느낄 수 있다. 그 이유는 저작권이 만들어진 이유를 유심히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저작권은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창작물로 인한 경제적 보상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이러한 권리가 보호될 때 창작이 촉진될 수 있고, 이는 문화 발전의 토대가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저작권은 창작자의 창작 의욕을 북돋우고, 이를 통해 문화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진 장치이다. 하지만 현재 AI 이미지의 남용은 이러한 저작권의 정신을 완전히 해하고 있다. 누군가 일부 예술가의 작품을 AI에 입력해 '새 작품'처럼 내놓는다면, 그리고 그 누구도 이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 이러한 흐름이 예술계의 새로운 주축이 된다면 과연 저작권이라는 울타리가 그때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인터뷰에서 했던 AI는 창작자의 고통을 모른다는 말의 의미를 우리는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 고통 없이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것은 어쩌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과 다르지 않다. 창작물은 그 자체로 빛날 때도 많지만 그 속에 숨은 창작자의 생각과 노력, 정신이 엿보일 때 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다. 하지만 AI에게는 창작에 대한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AI는 인간보다 다양한 작품을 빠르게 학습해 하나의 작품으로 녹여낼 수 있지만, 그 속에 어떤 고민도, 어떤 정신도 담을 수 없다. 그렇기에 많은 예술가들이 자신이 고통 속에서 만든 작품이 AI의 '리소스'로 전락하는 순간을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지금 AI가 예술계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은 인류가 지금까지 쌓아왔던 창작물이 있기 때문이다. AI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인해 창작자가 새로운 창작물을 만드는 것에 회의적이 된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문화적 풍요는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그때는 그저 AI가 생성하는 자기 복제에 가까운 결과물만 소비하며, 다시는 오지 않을 문화의 부흥기를 그저 꿈속에서 바랄 것이다. 그렇기에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이를 바로 잡아야 한다. 처음 지브리 영화를 봤을 때의 감동을 또다시 느끼고 싶다면, 우리는 새로운 거장이 탄생할 수 있도록 윤택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저 유희만을 쫒는 것이 아닌 그 뒤에 있는 창작자의 권리를 존중할 때 결과적으로 더 많은 즐거움이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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