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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Jan 14. 2016

미스터리 오브 오피스

직장에서 영원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전달한 사람은 있는데 전달받은 사람이 없고, 보고한 사람이 있는데 보고받은 사람은 없다! 반대로, 전달받은 사람은 있는데 전달한 사람이 없기도 하고 보고받은 사람이 있는데 보고한 사람은 없을 때도 있다!


직장을 몇 차례 옮겨도 항상 접하는 상황이다. 회사 문화에 따라 대처법이 다른데, 어떤 곳은 “미스커뮤니케이션(miscommunication)이 있었나보네. 다시 정리해 봅시다”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어떤 곳은 모두가 수사반장이 돼서 ‘범인’을 색출하기도 했다. 그래봐야 목소리 작고, 우기는 거 잘 못하는 사람이 입을 다물면서 범인으로 지목되는 것에 지나지 않았지만 말이다. 회의 때마다 노트북을 갖고 들어와 미친 듯 입력하며 ‘내가 다~ 적고 있어~!!’ 시위를 하는 사람이 넘쳐나는 회사도 있었다.


한 팀이 된지 두 달도 안 된 옆자리 동료 A가 비밀이라며 이번 조직개편 때 다른 팀으로 가게 됐다고 한다. 어제 혼자 야근하는데 인사팀장이 지나가며 ‘다음 주부터는 영업팀에서 보겠네!’ 했다는 거다. 금세 소문이 퍼졌지만 개편 결과 A의 부서 이동은 없었다. 얼마 지난 후 팀장은 우리들에게 말조심들 하라며 단속을 했다. 그 소문 때문인가 보다 하는데 A가 “무슨 말조심 말씀이신가요?”하며 따진다. 팀장이 정색을 하고는 “A씨. 당신 영업팀 발령이라는 얘기 누구한테 들었어!”하자 A는 지체 없이 내 이름을 댄다. 너무 놀라 아무 말도 안 나왔다. 그 뒤에 팀장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팀장이 나가자마자 A가 내게 사과한다. “미안해요. 끝까지 당신 이름은 얘기하지 말았어야 했는데요.”. A의 눈은 진심을 담은 것처럼 보였다. 이쯤 되면 미스터리를 넘어 호러다.


“보고받은 적 없는데?”라는 말이 입버릇인 본부장이 있었다. 나는 TF 일을 하며 잠깐 겪었는데 아주 사소한 문제에서도 보고받은 적 없다는 말부터 튀어나오는 사람이었다. TF 직원들은 별 거 아닌 일도 문서로 만들어 결재를 받아두는 방법으로 맞대응을 준비했다. 드디어 본인이 결재한 문서의 내용을 두고도 보고받지 못했다 한다. 직원은 호기롭게 결재 문서를 들이밀었지만, 본부장은 “나야 전체적인 틀만 보고 결재하는 거지, 그런 건 구두로 따로 보고해 줘야지!”하며 끄떡도 않는다. 8개월의 TF 기간 동안 우리는 모두 괴로웠지만 깨달은 것도 있다. 본부장이 보고받은 게 하나 없어도 일은 잘 돌아간다!


내가 ‘수사반장식 커뮤니케이션’을 그만두게 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본부장이 그 지경인데 TF로 진행했던 일이 성공적으로 끝난 것이다. 만약 본부장이 아니라 동료였다면 그냥 넘기지 못했을 텐데 본부장이니 참았었고, 그게 반복되니 처음에는 그렇게 억울하던 것이 점차 별 일 아닌 게 되어갔다. “보고를 못 받았대 글쎄! 내가 그날 이러저러하게 얘기한 거 기억하지? 그때 본부장이 질문도 했었던 거 너도 알지?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본부장은? 맞다! 그때 옆에 팀장도 추가 설명했었잖아. 기억상실이야 뭐야!” 하며 한참을 분노하던 것에서 나중에는 “보고받은 기억이 없대. 그래서 다시 보고했고 이러저러하게 진행하래”하고 넘어가게 된 것이다.


수사반장식 커뮤니케이션에서 '대안중심적 커뮤니케이션'으로 넘어간 셈이다. 밥이 탔으면 새로 지을지 안 탄 부분을 골라 먹을지 판단하는 게 중요하지 어쩌다 누구 때문에 탔는지를 밝히는 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안타깝지만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자면 하급자일 때는 약간의 억울함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헌데, 상급자일 때는 내 관리 하에 있는 조직의 문화를 바꾸는 힘이 된다.


이직해 새로 맡은 팀의 커뮤니케이션이 희한했다. 간단히 해도 될 이야기를 길고 어렵게 했다. 예컨대, 퀵서비스 대장 어디 있냐고 물으면 될 것을 “퀵서비스 대장은 캐비넷에 걸어둔다고 했잖아요. 근데 없어서 전처럼 회의실에 있나 싶어 가 봤는데 거기도 없더라고요. 어디 있는지 알아요?”하는 식이었다. ‘캐비넷에 걸어둔다고 전에 말했죠!’ 혹은 ‘캐비넷에 없으면 회의실 가 보라고 했죠!’ 하는 식의 추궁을 의식한 것 같은 대화였다.


업무 회의를 할 때도 비슷했다. “전에 B가 얘기했듯이”, “전에 C가 이렇게 하라고 해서”와 같은 단서들이 장황히 이어지고 나서야 본론이 나왔다. 예컨대, 내가 “3분기에는 경쟁사도 신제품 출시 예정인데 감안해서 잡은 매출목표인가요..?” 물으면 앞서 지목됐던 B 혹은 C는 보고한 사람을 향해 “그래서 제가 얘기했었잖아요. 경쟁사 동향도 알아보시라고요. 다 얘기했는데 매번 이러면 어떡합니까.”하며 몰아세웠다. 보고한 사람도 “언제요? 전에 제가 경쟁사 알아본다고 했더니 출시 시기 밀릴 거라면서요” 하며 가만히 있지 않는다. 회의 시간에 제일 많이 들리는 대사가 “그래서 제가 전에 얘기 했었잖아요”였다. 모르기는 해도 전임 팀장이 이런 상황을 방관하거나 목소리 큰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는 선택으로 상황을 악화시켰던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를 바꾸는데 별다른 힘은 들지 않았다. 팀장인 내가 신경 쓰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누군가 ‘그래서 제가 전에 얘기 했었잖아요’ 하면 지금부터 할 일만 챙기며 이야기의 방향을 돌렸다. 얼마간 그렇게 하니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하지만 이미 서로 사감(私憾; 사사로운 이해관계로 언짢게 여기는 마음)이 잔뜩 섞인 후라 팀워크를 살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인사발령을 통해 멤버 구성에 변화를 주는 것으로 풀 수밖에 없었다. 


얘기한 사람은 있지만 들은 사람이 없고, 들은 사람은 있지만 얘기한 사람은 없는 이 미스터리한 일은 직장에 다니는 동안 계속해 마주하게 될 것이다. 앞서 적었듯 회사마다 대처 방식이 다르고, 그에 따라 회사 분위기도 다르다. 언제 어디서나 발생 가능한 미스커뮤니케이션으로 정리하고 앞으로 할 일을 챙기는 회사면 좋겠지만, 모두가 수사반장이나 잠재적 ‘범인’인 회사면 입장정리가 필요하다. 함께 수사반장 놀이에 동참할 것인지 분위기 트랜스포머가 될 것인지 말이다. 특히, 나의 상급자가 수사반장 놀이를 좋아할 때 트랜스포머가 되자면 큰 결심이 필요하다. 할 수 없어 일보후퇴를 하더라도 수사반장식 커뮤니케이션에 습관을 들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연차가 쌓일수록 우스워질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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