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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Jan 21. 2016

인맥관리는 집어치워라

바쁜 중에 전 직장 후배가 놀러 온다 해서 보기로 했다. 퇴근 준비를 서두는 내게 동료가 내일까지 보고서는 마칠 수 있겠냐고 묻는다. 내가 ‘후배들이 놀아준다고 할 때 얼른 나가야지, 더 있으면 놀아주지도 않을 거야’ 했더니 맞다고 얼른 나가라며 깔깔거린다.


나는 인맥관리를 못 하는 편이었다. 동기들이 오늘은 이 선배 다음날은 저 선배에게 술 사달라 해서는 밤늦게까지 인맥관리에 매진하는데 반해 나는 극소수 몇 명과만 어울렸더랬다. 6년 차쯤 됐을 때 나의 팀장은 ‘오늘부터 일주일에 한 번은 돌아가며 다른 팀 팀장들과 점심을 함께 먹’으라고 지시했을 정도로 신입 때부터 일관되게 몇몇의 사람들과만 놀았더랬다. 팀장 지시에 따라 그나마 조금 편한 팀장 한 분과 점심을 했으나 그게 끝이었다. 일부러 안 했던 것은 아니고 하려고 해도 잘 안 됐다. 내게는 나름의 스트레스였다.


사실, ‘인맥관리’에서 인맥이란 궁극적으로는 거래관계를 의미한다. 내가 인맥관리의 대상이 되려면 어떤 형태든 상대방이 기대할만한 무언가를 갖고 있어야 한다. 나 역시 누군가를 관리 대상으로 삼을 때 이 사람과 친해둬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뭔지 염두에 두게 된다. 내가 인맥관리에 열의가 없었던 건 이런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복불복 내지 도박처럼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내가 누군가를 찜했더라도 그의 미래를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이고, 설사 그가 대단한 미래를 움켜쥐었다 해도 내게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지 알 수 없는데다 나만 그 사람을 찜했을 리 없으니 내 차례가 언제 올지 또한 알 수 없는 일이다. 헌데 거기에 기대를 걸고 투자를 한다는 것이 확률 낮은 도박과 비슷하게 여겨졌더랬다. 도박은커녕 뽑기에도 재주가 없는 나는 일찌감치 포기를 택한 것이다.


인맥관리까지는 아니어도 옛 동료들끼리 1년에 한 번씩 만나는 OB모임에도 지금껏 나간 적이 없다. 그런 형식을 빌어서라도 관계가 주는 안정감을 필요로 하는 성향도 아니고, 무엇보다 몸을 움직이는 것에 게으르다. 그 후 몇 차례 이직을 했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거래를 염두에 둔 인맥관리보다는 마음 맞는 사람을 찾아 노는 게 좋았다. 그런 사람들과 오래 보게 되면 더욱 좋았다. 하지만 그 역시 몇 번의 좌절이 있었다.


나의 팀장이었던 A는 직원들을 막 대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나 역시 힘들게 버텼는데 A가 이직하고 나서 조금 달라졌다. 나를 자주 찾기도 했고 내가 어려울 때면 열 일 제치고 챙겨줬다. 그렇게 자주 만나다 보니 예전의 일은 잊고 편안해졌다. 어느덧 10년 넘게 만남을 이어가게 됐는데, 하루는 약속 장소에 갔더니 예전에 함께 일했던 다른 선배가 와 있었다. 셋이 저녁을 먹는데 A와 둘이 만날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보는 다른 선배 앞에서 A는 예전처럼 내게 함부로 대하면서 자신이 여전히 ‘죽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 같았다. A는 10년이 지나도 나를 그 옛날 막 대해도 됐던 부하직원 이상으로는 생각하고 있지 않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나이와 직급을 떠나 이제 A와 친구가 되었다는 나의 생각은 발칙한 착각이었다.


새로 맡은 팀에는 나랑 잘 맞는다고 생각되는 직원 B가 있었다. 의지도 했고 정도 많이 들었는데 직장을 옮긴 후 연락에서 느낌이 달랐다. 그제야 ‘아 이 친구가 나랑 잘 맞았던 게 아니라 상급자인 내게 다 맞춘 거였구나’ 하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걸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무감했던 거다. 상급자들은 자신의 유머에 직원들이 억지로 웃는 걸 모른다는데 나 역시 내게 맞춰준 직원을 그저 나랑 잘 맞는다고 착각했던 거다. 이러나저러나 관계는 일방적이면 안 되는 일이겠다.


이렇듯 인맥관리가 아닌 친구 사귀기에서도 몇 번의 시행착오가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래 두고 보는 친구는 조금씩 늘어갔다. ‘우리가 벌써 10년 지기야’, ‘20년 지기야’, ‘처음 만났을 때 20대였는데..’, ‘선배가 벌서 50이라고요?’, ‘네가 벌써 마흔이 다 돼 간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며 신기해한다. 인맥관리를 못한 것은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 멀리서 찾아와 주고 또 찾아 가 만나고픈 친구가 있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에서 인맥관리보다 더 필요한 역량은 친구 사귀기 역량이 아닐까 싶다. 친구 사귀기에 ‘역량’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어떤 타자와 인연을 맺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에 이르는 경이로움을 생각하면 친구 사귀기는 역량을 넘어 신공을 필요로 하는 일 같기도 하다. 그러니 어찌 애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일까지 마쳐야 할 보고서쯤이야 내일 생각하면 되지. 다 덮어 두고 약속 장소로 향하는 걸음이 즐겁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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