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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Feb 12. 2016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실무자와 관리자편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팀장 때문에 힘들어 죽겠다며 푸념이다. 의견 내라고 해서 열심히 준비해 가면 하나도 반영을 안 한단다. 그럴 거면 뭐하러 회의를 하냐는 거다. 엉뚱한 거 조사 시켜 놓고는 며칠 있다가 지난번 회의 때 내가 했던 얘기를 그대로 하면서 기획안을 다 바꾼단다. 그동안 자료 조사했던 거 전부 쓸 데 없어진 것도 짜증 나지만 실컷 얘기할 때는 듣지도 않더니 마치 본인이 생각해낸 양 하는 것도 어이가 없단다. 며칠 전에는 팀장이 나가기로 한 외근을 1시간 전에 나더러 나가라는데 정말이지 폭발할 뻔했단다. 말하면서 새삼 열이 오른 후배에게 한 마디 건넸다. “꼭.. 나 같다..”.


“선배가요???”, “응” 하고는 동시에 빵 터져서 한참을 웃었다. 후배가 성토한 팀장이 꼭 나 같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반성의 의미를 담고 있지는 않았다. 우리의 대화는 대부분 이런 식이었다. 후배가 상급자를 성토하면 나는 그렇게 볼 일이 아니라고 답하게 되곤 한다. 그래서 후배의 웃음은 “또야? 또 내가 잘못이라고?” 같은 의미였다. 20년 전 나의 멘토가 늘 ‘니가 잘못했네!’하며 한 번도 내 편을 들어주지 않았던 기억과 겹친다. (이전 글: ‘고민을 의논할 선배가 있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참고).


유명 웹툰 <송곳>의 대사인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는 그 심오함을 덜어내면 갑을 관계에만이 아니라 관리자와 실무자 관계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후배가 성토한 팀장이 만약 나의 친구라면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걔 회의 때 얘기하는 거 들으면 속 터져. 큰 그림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지나가는 대학생들 붙잡아 물어도 나올 수준의 얘기를 아이디어랍시고. 내가 기획안 쓰면서 말이라도 되게 만들어 놓으면 백데이터 조사라도 좀 선선히 할 수 없나? 뭐 하나 쉽게 ‘네’ 하는 법이 없어. 지난번엔 갑자기 대표실에서 대표 외부 강연 때 쓸 참고자료 만들라고 해서 그거 만드느라 협력사 미팅 좀 가라고 했더니.. 어휴.. 너도 그 얼굴 표정 봤어야 돼.”.


물론, 위에 적은 것은 관리자와 실무자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관계에까지 접어들어 죽자고 으르렁거릴 때나 나올 법한 얘기다. 좀 더 사실에 가깝게 말하자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관리자들은 별 생각이 없을 확률이 크다. 


내 경우에 빗대면, 회의 때 직원들 얘기를 들으며 ‘구슬은 다 나왔는데, 이걸 어떻게 꿰지?’ 하는 생각을 하는 편이다. 그걸 찾기 위해 자료조사를 시킬 때도 있다. 구슬을 꿸 방법만 찾으면 회의 때 나온 의견들을 보배로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구슬을 꿸 때 누가 어떤 의견을 냈었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다 중요하지도 않다. 내가 냈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그냥 회의 때 나온 얘기들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헌데, 관리자와 실무자가 서로 궁합이 안 맞으면 이런 상황에서 오해가 쌓인다. 나의 팀원들 중에도 회의 때는 얘기 안 듣고 며칠 있다 딴 소리 한다고 나를 오해할 법도 하다. 그래서 ‘나랑 똑같다’고 답했던 거였다.


더 크게 보면 이런 거다. 예컨대, 심각하게 떨어진 매출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영업팀 직원은 자신이 맡고 있는 거래처 관리를 중심으로 고민할 것이고, 팀장은 아예 새로운 영업 수단이 없을지를 고민할 것이다. 본부장이라면 변화를 이끌만한 직원을 수혈하는 인사이동까지를 고민할 것이고, 대표라면 기술개발, 생산, 마케팅, 영업, 서비스지원 전체를 개편하는 방안까지 염두에 두며 고민할 것이다. 전체 조직 개편을 고민중인 대표에게 직원이 ‘제가 맡고 있는 거래처 사장님이 되게 적극적이시라 인근 아파트 단지 부녀회랑 협의해서 매주 매대를 설치하려고 하는데요’라고 얘기해 봐야 머리에 안 들어오는 거다. 조직개편 고민이 다 끝난 후 ‘매대 설치 시도해 보’라 한다고 왜 처음에 내 말 안 들었냐 할 건 아니지 않은가.


모든 상급자가 유능하고 선량할 리는 없다. 다만, 시야를 넓히려 노력할수록 얻는 게 많다는 건 확실하다. 상급자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말이 아니다. 내 관점에 머물러 있는 한 누군가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오히려 독이 되는 경우가 많다. 노나라 임금의 바닷새 사랑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바닷새를 사랑한 나머지 궁에 데려와 술과 고기와 음악을 내렸는데 며칠 만에 바닷새가 죽었다는 장자의 우화 말이다. 그러니 내 식대로 팀장을 이해하려 들 일이 아니다. 기존의 틀을 깨고 관점 자체를 확장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상황판단이 가능하다. 헌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실무자 시절 나는 상급자 입장에서 보면 똘똘하지만 대하기 껄끄러운 유형일 거라고 스스로 생각했었다. 불만을 드러내고 따지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방점은 ‘똘똘하지만’에 있었다. 헌데, 처음으로 파트장이 되고 일주일도 안 됐을 때 나는 그저 엄청나게 피곤한 직원이었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서는 데가 바뀐 거 하나로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게 된 것이다. 그 후 180도라 해도 과언이 아니게 바뀌었다.


예컨대, 팀장이 결재를 늦게 해 주면 당장 성토에 나섰었는데 이제는 “팀장님. 지난번 올린 문서 아직 결재 전이시죠. 제가 뭘 좀 더 수정할까요?” 하고 묻고 있는 거다. 깜빡 잊은 경우면 미안하다며 바로 결재가 나고, 다른 급한 건을 먼저 처리 중이었으면 사정을 설명 듣고 기다리면 됐다. 팀장 입장에서의 우선순위가 있고, 내가 올린 결재는 그중 하나일 뿐이고, 내 것이 늦는다고 따지는 나의 속도 마냥 순수하지는 않을 때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 문서 빨리 결재하라 따진들 득 될 게 없다는 걸 파트장이 되고 나서야 알게 된 것이다.


이런 이야기 끝에 후배는 말한다. “에휴, 이제 의견 따위 안 내려고 했는데, 계속 내야겠네요.”. 그러나, 이러한 갈등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주 낮은 수준이라도 관리자 역할을 해 보는 것이다. 금세 관점과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후배에게도 이렇게 말했다. “됐고! 빨리 승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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