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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Feb 22. 2016

팀장들의 마음의 소리

실무자 시절, 팀장은 내게 “자기 PR을 좀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했었다. 나는 일 열심히 하면 되지 누가 나를 알아주길 바라고 PR에 에너지를 쏟는 건 낭비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수년 후, 내가 팀원에게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일 열심히 하고 잘 하는 거 알겠는데 자기 PR도 좀 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헌데, 속마음은 이런 거였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보고를 좀 하던가 무슨 수를 냈으면 좋겠어’.


실제로 예전 나의 팀장도 1년쯤 지난 후에는 정색을 하고는 “앞으로 무조건! 네 업무의 3분의 1은 보고하는데 할애해라. 문서든 메일이든 구두든 상관없으니까, 보고를 네 업무의 중요한 부분으로 생각해서 챙겨달”라고 했더랬다. 자기 PR 하란 말을 못 알아들으니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팀장들이 듣기 좋은 말로 하는 얘기들에는 사실 숨은 뜻이 있다. 주변의 관리자들에게 사례를 모아봤다. “당신 일 많이 한 거 알아. 올해는 쉬엄쉬엄 하면서 후배 양성을 했으면 좋겠어”라는 말은 ‘언제까지 실무를 할 생각인 거야? 진급은 안 할 거야? 계속 실무만 붙들고 있겠다는 생각이라면 진급은 포기해’라는 의미일 확률이 크다.


“업무를 종합적으로 보는 훈련을 해 봐”는 ‘도대체 지금 하는 일이 뭔지 파악은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에 다름 아니고, “프로세스를 챙기기보다는 기획업무를 더 신경 써 봐”는 ‘루틴하게 돌아가는 프로세스에 따라 일하는 건 신입도 할 수 있어. 당신 연차에 그것만 하겠다는 건 곤란해’라는 뜻일 수 있다. “슬로우 스타터라는 거 알겠는데, 시동 거는 순간을 조금만 당겨주면 좋겠”다는 말은 ‘왜 우리가 너를 기다려줘야 해’ 혹은 ‘나나 되니까 기다려주지, 다른 팀 가면 힘들걸? 좀 더 빠르게 몰입해줘’라는 뜻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조금만 유연했으면 좋겠”다거나, “일할 때 융통성을 좀 발휘하면 좋겠”다는 말은 ‘제발 고집 좀 그만 부려!’라는 절규다. 고집부리는 팀원만큼 힘든 팀원도 없다고들 덧붙인다. “지금까지 개인플레이어로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모습을 보여줬어. 이제 연차도 있으니 팀플레이어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면 좋겠어”라는 말은 ‘혼자 일하지 말고 동료들과 소통하고 도우면서 일하면 좋겠’다는 뜻이고, “업무 오거나이징에 신경을 쓰”라는 말은 ‘두서없이 일하지 말라, 체계를 좀 잡고 일하’라는 이야기다.


의미 전달을 정확히 하기 위해 마음의 소리는 과장을 심하게 했음을 먼저 밝힌다. 진짜 마음의 소리는 ‘내 얘기를 알아들어 줘. 변화 발전해 주길 바라’이다. 그래도 좀 덜 추상적으로 얘기할 수 없겠나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팀원과 팀장 관계라는 게 마냥 솔직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그 속에서 수용도를 높일 수 있도록 나름의 노력을 해 보는 것이다. 실제로 나의 팀장이 나더러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 보고를 자주 하든가 무슨 수를 좀 내”라고 하면 삐뚤어지고만 싶을 것 같다.


팀장들이 꼭 애정이 넘쳐 조언을 하는 것은 아니다. 팀장 본인 편하자고 팀원들에게 이런저런 주문을 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마저도 애정이 없거나 바뀔 가능성이 없어 보이면 굳이 붙잡고 앉아 조언을 하게 되지는 않는다. 조금만 유연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좋겠다는 말에 “그건 팀장님도 마찬가진데요?” 했던 팀원이 있었다. 알겠다고 하고는 신경 끊고 지냈던 경험이 있다. 관리자로서는 한정되어 있는 관리 코스트를 배분할 수밖에 없는데 인풋 대비 아웃풋이 기대되지 않는 곳에 비용을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애정이 있고 변화 발전할 가능성이 있어 보일 때 마주 앉게 된다.


팀장의 조언을 듣고 삐뚤어지고 싶을 때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좋겠다. ‘어쨌든 내가 발전가능성이 있다고는 보고 있구나’라고. 마음이 조금 가라앉으며 팀장의 말 속에서 내가 취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가늠해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번 글을 쓰면서 사례 조사에 응한 팀장들은 이렇게 말한다. “포기하기 전에, 그러다 도태되기 전에 알아듣고 변화해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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