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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Mar 07. 2016

퇴직 ‘세리머니’는 생략합니다

   다니던 직장을 떠날 때 마땅히 치러야 할 의식이 있는 걸까. 그러한 의식은 왜 필요한 걸까. 20여 년간 여섯 번의 이직을 했다. 길게는 10년, 짧게는 1개월 남짓 다닌 직장이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한 번도 같이 일했던 사람들을 찾거나 전체 부서를 돌며 인사를 했던 적이 없었다. 여느 때처럼 출근해 여느 때처럼 퇴근을 했더랬다.     


   <인맥관리는 밥을 먹여주지 않더라>에 쓰기도 했지만, 거래를 기본으로 하는 관계에 여간해서는 관심이 안 생긴다. 언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데 인사해 둬서 나쁠 게 뭐 있느냐고들 하지만, 주변을 둘러봐라. 그렇게 드라마틱한 만남은 흔하지 않다. 예전에 알던 사람이 생각지도 않게 어느 날 나를 돕는 일이 있을 거라고 믿어지는가. 10여 년 전에 퇴직 인사 한번 성의껏 한 걸로 10년 후 곤란에 처한 내가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되는가. 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도 남들에 비해 참으로 덜한 것 같다. 평소, ‘내가 무슨 짓을 해도 10%는 나를 좋아하고, 10%는 나를 싫어하며, 나머지 80%는 내게 관심이 없’다는 내가 만든 이론을 신봉하는 터라, 내게 관심 없거나 나를 싫어하는 90%를 위한 일에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된다.


   10년 다닌 직장에서 퇴직을 앞둔 무렵, 나보다 몇 개월 앞서 퇴직하는 분이 계셨다. 출근 마지막 날 최근 몇 년간 보던 중 최고로 멋지게 차려 입고 평소보다 더욱 꼿꼿한 자세로 전 층을 돌며 한명 한명 악수를 나누는 그분 모습을 보면서 나는 퇴직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잠깐 고민을 했다. 결론은 하던 대로 하자는 것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어차피 볼 사람은 퇴직을 해서도 계속 볼 것이고 그간 안 보고 지낸 사람들은 퇴직하면 더구나 안 볼 것이 틀림없다는 결론이 바뀌지 않았다. 그분의 퇴직 세리머니가 나빠 보였던 것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 속에 그분의 기대도 보였기 때문에 부질없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던 것 같다.


   모든 것에 생로병사가 있듯 인간관계에도 생로병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만나고 헤어지는 일에 유난한 마음이 잘 안 든다. 관계라는 것이 어차피 부질없으니 기대를 갖지 말자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히려 관계 맺기에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다. 내 경우, 타고난 호기심 때문일 거라 생각하는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나도 모르게 호감이 생기곤 한다. ‘딱 봐도 아니’라며 나를 타박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지내다 안 맞으면 그때 안 보면 된다는 생각이다.


   나와 잘 맞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구를 사귀자면 일단 관계 맺기를 시도해야 한다. 그다음에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 만남의 생로병사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상처니 배신이니 뒤통수니 하며 곱씹을 필요 없이 말이다. 맺어지고 흩어지는 것이 인연의 속성일 바에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할 일 아닌가 싶다. 여섯 번의 이직을 하는 동안 별다른 퇴직 세리머니 없이 마지막 퇴근을 했다. 다니는 동안 각별했던 사람들과는 퇴직 후에도 계속 만나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이어온 10년 지기, 20년 지기들이 곁에 있으니 이만하면 나는 충분하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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