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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Mar 30. 2016

아나키스트의 정체

<1918-1945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

   ‘아나키스트’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건 고등학교를 다닐 무렵이었던 것 같다. 아나키스트가 뭔지 전혀 모르는데 이건 어감부터 완전 멋있었다. 찾아보니 ‘무정부주의자’란다. 그럴 리가 없다. 아나키스트가 무정부주의자라니. 어감 상 전혀 매치가 안 되지 않는가. 왠지 신뢰가 안 간다. 이건 아닌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고는 아나키스트는 잊고 학업에 매진(....)했다.


   그리고 20년이 흘러 마주한 책이 이덕일의 <1918~1945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 였다. 재미없을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이 책을 산 건, 어떤 역사도 잊혀지면 안 된다는 생각과, “꼭 한번은 정리해야 할 이야기”였다는 저자의 사명감에 동감한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뜻밖의 수확이 있었다. [대일 항쟁기 아나키즘 운동사] 챕터였다.


   아나키즘을 무정부주의로 번역한 건 일본 도쿄대에 재학중이던 게무야마 센타로의 ‘짓’이었다. 아무리 아직 배우는 학생이라지만 이토록 센스가 없다니! 여하튼 그의 번역으로 인해 동아시아에서는 아나키즘이 무질서나 혼돈을 뜻하는 것으로 오해받아 왔다고 한다. 이제 제대로 알아보자!


  “아나키즘은 그리스어의 ‘아나르코 anarchos’에서 나온 말로서, ‘없다(an)’와 ‘지배자(arche)’라는 뜻의 합성인데 글자 그대로 지배자가 없다는 뜻이다. 아나키즘은 각 개인, 지방, 조직이 자유롭고 동등한 권리 속에서 서로 연합해 정부를 구성하자는 것이지 정부 자체를 부정하는 사상은 아니다.”. 각각이 자유롭고 동등한 권리 속에서의 연합이란다. 여기에서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와 선명한 입장차가 생긴다. 

   “아나키즘 연구가 다니엘 게렝은 아나키스트와 마르크시스트의 관계를 ‘형제이자 적’이라고 표현했다.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형제지만 좌파 전체주의를 공격한다는 점에서 적이다.”, “미국의 아나키스트 아돌프 피셔는 ‘아나키스트라면 누구나 사회주의자지만 사회주의자라고 반드시 아나키스트는 아니다’라는 말을 남겼다. 양자를 가르는 기준은 좌익 전체주의에 대한 입장차에 있었다. 아나키즘은 우익은 물론 좌익 전체주의도 강하게 비판했다. 흔히 ‘공산주의가 이론은 좋지만...’이라고 말하지만, 아나키즘은 공산주의 이론 속에 전체주의의 씨앗이 내재되어 있다고 비판하는 사상이다.”.


   이렇게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이 이 책에서 얻은 수확이었다. 이제야 어감이 산다. 아나키즘은 현재로서는 번역 없이 그냥 아나키즘으로 적는 게 맞을 것 같다.      

   이 책은 일제강점기 다양한 사상적 기반을 갖고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과 그들의 지향을 다룬 책이다. 따라서, 당시 조선과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이 억압과 제국주의에 어떻게 맞섰는지가 주요 내용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지금 이 순간’의 ‘행동’을 중요시했기 때문인지 읽으면서 청년시절처럼 가슴이 뛰었다. 


   그리고, 1년 후 영화 <암살>을 봤다. 의열단장 김원봉(조승우)를 대중문화콘텐츠 전면에 배치한 것부터, 이 영화는 아나키스트에 대한 꽤나 깊은 이해와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를 읽고 <암살>을 보면 백 배는 재미있고, <암살>을 보고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를 읽으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영화의 장면을 갖고 아나키즘을 좀 더 이해해 보자. 여기서부터는 영화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린다. 경성 아네모네 바의 일본인 바텐더는 “조선 독립을 지지합니다”라고 말하고, 사라진 속사포를 대신해 작전에 나섰다가 사망한다. | 실제로 아나키즘은 국제연대조직이었고,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이 전체주의 일본제국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들의 대일 항쟁 사건에는 대부분 일본인들이 동지로 참여하고 있었다고 한다.


   암살 작전을 위해 아네모네 바에 도착한 안옥윤(전지현), 속사포(조진웅), 황덕삼(최덕문)은 그날 저녁 언제 죽을지 모른다며 술을 마시고 다 함께 춤을 춘다. | 이 장면은 엔딩 장면이기도 했다. 의열단은 자신들의 희생을 전제로 독립을 달성하려 했던 직접행동조직이었다. 언제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현재를 즐기는 초연함이 있었고 그런 모습이 소녀팬을 모으기도 했다고 한다.


   뺀질대기만 하던 속사포는 하와이피스톨(하정우)의 저격에서 살아 돌아와 혼자서라도 작전을 수행하겠다고 한다. 아네모네 마담이 “그 몸으로?”라며 만류하자 속사포는 “이거(작전) 몸으로 하는 거 아냐”라고 한다. 안옥윤 역시 쌍둥이 언니 행세를 감행한다. 미쳤냐는 하와이피스톨에게 “나는 식장에 들어갈 수 있잖아. 신부니까”라고 답한다. 이미 죽을 각오다. | 일제 강점기 아나키스트 단체가 도심에 뿌린 선언을 보자. “혁명은 결코 언어와 문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유혈과 전사의 각오 없이는 안 된다”. 해방 후 살아남은 독립운동가들은 의열단을 이렇게 회고한다. “의열단원들은 서로 죽으러 국내로 들어가겠다는 자세가 있었다. 나중에는 제비를 뽑기도 했다”. 1922년 상해에서의 일제 군부 실세 다나카 가이치 저격 작전을 두고도 의열단원 오성륜, 김익상, 이종암이 앞다투어 결행을 자청해 김원봉은 순서를 조정해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암살 작전의 대장을 여자인 안옥윤으로 정하는 장면도 아나키즘이 가진 개인의 동등한 권리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안옥윤이 쌍둥이 언니 방에 걸린 웨딩드레스를 보고 질겁하며 흐느끼는 장면도 정말 좋았다. 만약 평범한 여자의 삶을 동경하며 서글프게 흐느끼는 설정이었다면 실망스러웠을 것 같다. 말이 좋아 정략결혼이지 식민통치 하에서 자유로운 개인일 수 없는 여성의 억압적 상황에 대한 아나키스트 안옥윤의 감성이 폭발한 장면이라고 내 식대로 생각하며 감동했다.


   염석진(이정재)이 상해에서 밀정 신분을 숨기고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는 장면에서 당시의 극장 내부 모습이 잠깐 나온다. 스크린에는 관변 뉴스 같은 것이 나오는데 김구에게는 60만원, 김원봉에게는 10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는 내용이다. | 아나키즘의 특징은 혁명의 결정적 순간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 이 순간, 목숨을 던져 직접행동에 나서기 때문에 일제는 아나키즘을 가장 두려워했다고 한다. 김원봉에게 걸린 현상금도 일제가 건 최고 액수였단다.




   개인의 사상적 지향과 무관하게, 몰랐던 아나키즘에 대해 제대로 알 수 있었다는 점과 영화 암살을 백배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해 주었다는 점에서 <1918~1945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는 내게 뜻밖의 선물 같은 책이다. 그리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치열했던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경외의 마음도 새삼 들었다. 영화 <암살>에서 하와이 피스톨을 따라다니던 영감(오달수)는 안옥윤을 살려 보내며 “어이! 우리 잊으면 안 돼~!”라고 한다. 그에 답하는 차원에서 <1918~1945 잊혀진 근대, 다시 읽는 해방전前사>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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