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DO YOU May 23. 2016

역지사지를 의심하며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모험>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 일이 있었다. 아빠의 사업 실패와 실직 상태가 이어지며 가난은 대학시절 정점을 찍었었다. 며칠 점심을 거르는 나를 의아해하는 친구에게 어렵사리 돈이 없는 사정을 털어놓자 친구는 “야! 다 마찬가지지. 나도 돈 없어. 다음 용돈 받을 때까지 거지야”라고 간단히 말한다. 내 처지를 몇 마디 더 설명했지만 친구의 반응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친구는 나름의 방식으로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려는 것이었을 터다. 그러나 그 대화를 나누며, 아무리 선의와 의욕을 갖고 있다 해도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에 빠졌더랬다.


   같은 맥락에서, 공자가 말한 ‘역지사지’나, 내가 원치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말라는 ‘서(恕)’ 사상에 대해서도 의문이 있었다. 저차원적인 비유지만 내가 만두를 싫어하니 남들도 싫어할 것이라고 역지사지하는 것이 맞겠는가, 내가 만두를 싫어하니 남들에게도 권하지 않으면 그것이 恕를 행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역지사지나 恕나 내 입장이 기준이 되는데, 아무리 수련을 하고 경험을 쌓는다 해도 내 기준으로 남을 대하는 방식이 항상 선일 수 있을까 싶었다. 


   실제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제발 역지사지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외치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내가 왜 여태 놀다 뒤늦게 쫓겨 철야하는 동료를 도와 철야를 해야 하는지, 왜 회사에 충성과 헌신을 바쳐야 한다는 것인지 동의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이런 의문에 대해 역지사지해 보면 쉽게 알 수 있지 않느냐며 당연하게 얘기할 때면 역지사지가 사람 여럿 죽이는구나 싶었었다. 너야말로 역지사지 좀 해 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렇게 보면 아무리 역지사지를 해도 서로가 자신의 입장을 기준에 두는 한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던 중 접한 책이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이다. 저자는 장자 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강신주다. 장자는 소통을 강조한 철학자였는데, 통한다는 의미의 ‘통’보다는 비운다는 뜻의 ‘소’를 중요하게 여겼단다. 통하려면 우선 자신을 비워야 한다는 의미다. 즉, 자신의 입장을 기준하지 않아야 비로소 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의 오랜 의문이 풀리기 시작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입장을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 또한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그래서 저자 강신주는 타자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에 비유할 수 있다고 한다. 책 제목에도 이러한 생각이 압축되어 있다. 나와 다른 사람들(차이)을 이해하는 것(횡단)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일(모험)이지만 그럴 때에 인간이 인간다워질 수 있다(즐거운)는 뜻으로 풀이된다. 타인을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지만 불가능하지는 않겠구나, 그리고 그 시작은 내 입장에서 벗어나는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조삼모사 이야기가 새롭게 조명된다. 흔히 조삼모사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데 쓰이지만, 장자는 이 우화를 통해 타자성(他者性)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 입장에서는 어차피 하루에 도토리 일곱 개가 정해져 있으니 몇 번에 나눠 먹나 똑같아 보일 수 있지만 원숭이 입장에서는 아침에 세 개를 받느냐 네 개를 받느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타자성이며 이것을 인정해야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조삼모사를 이렇게 해석하다니! 


   5년 근속이 보장되는 계약직으로 근무할 때였다. 단, 회사는 계약 연장 심사 기한을 따로 정해 필요한 경우 중도에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회사의 방침은 첫 계약기간은 2년으로 하고 2년이 지나고부터는 1년 단위로 연장심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나와 같은 계약직군들은 반발했다. 기분도 유쾌할 리 없었지만 구체적 불이익도 많았다. 예컨대, 육아휴직이나 장기 교육훈련, 해외 교류 프로그램 같은, 제도 이용 후 1년 이상 근속을 의무로 하고 있는 복지 제도는 원천적으로 이용이 불가능해진다. 그러나, 계약직이 아닌 동료들에게는 조삼모사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어차피 5년 보장이 기본인데 연장심사를 1년마다 받든 2년마다 받든 똑같지 않느냐는 입장이었다. 설마 우리 회사가 중도에 계약을 해지할 일이 있겠냐는 이야기와 정규직이라고 복지혜택을 전부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도 이어졌다. 역지사지 즉, 자신의 입장으로 타자를 해석하려는 것을 일종의 폭력으로까지 봤던 장자의 철학이 구체적으로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장자 식의 조삼모사 해석과 접근이 절실했다.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에는 장자의 여러 우화들이 등장한다. 그중 하나가 노나라 임금의 바닷새 이야기다. 바닷새를 너무나 좋아한 노나라 임금은 바닷새를 궁으로 데려와 매일 술과 고기를 내리고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며 아꼈으나 바닷새는 며칠 만에 죽고 만다. 이 우화를 통해 장자는 타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방식대로 정성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타자의 삶의 방식에 닿으려는 몸무림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 강신주의 해석을 덧붙이자면 '장자는 개체의 삶을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유한 것으로 긍정한 철학자이며, 개체의 삶을 부정하고 초월적 가치를 숭상하는 것은 한낱 꿈일 뿐이니 그 꿈에서 반드시 깨어나야 한다고 강조한 철학자'다.


   “타자는 자신의 선입견으로는 결코 파악될 수 없는 존재다. 타자와 만날 때마다 자신을 새롭게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나를 재구성하고 나를 둘러싼 한계를 확장해 낼 때 삶은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을 것 같다.     


   이 글은 강신주가 여러 저서에서 언급한 장자에 관한 이야기를 구분하지 않고 적었다. 다시 들춰 정확히 인용할 만큼의 부지런을 떨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읽어볼 만한 책은 아래와 같다. 


■ <관중과 공자>, 강신주, 사계절

■ <장자, 차이를 횡단하는 즐거운 모험>, 강신주, 그린비

■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강신주, 오월의봄


매거진의 이전글 아나키스트의 정체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