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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 YOU Jun 20. 2016

기씨녀의 이름은 무얼까, <세상을 바꾼 여인들-기황후>

   기황후라는 존재를 처음 알게 된 때는 내가 중학생 내지 고등학생이던 무렵이었다. 신문 칼럼에 소개됐는데 고려 말 원나라에 공녀로 끌려가 황후의 자리에 오른 대단한 여인이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인물이라고 적혀 있었다. 신데렐라 스토리와 성공 스토리를 다 갖춘 인물이라니!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었지만 별다른 자료가 없었다. 칼럼에는 기황후를 기씨 집안의 딸이었다는 의미로 ‘기씨녀’라고만 칭하고 있었다. 

   한참 잊고 지내다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에서 다시 기황후를 접하게 됐다. ‘고려사’와 ‘원사’, ‘원사 후비열전’ 등의 기록을 인용해 기황후의 일대기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에서도 그녀의 본명은 찾을 수 없었다. ‘원사’를 통해 기황후의 몽골식 이름과 황후의 시호는 전해지는 반면, 고려사는 기황후의 오라비와 친족들이 기씨 소녀의 권세를 등에 업고 벌인 악행을 중심으로 기술하고 있고, 기황후에 대한 기록은 짤막한데 그마저도 훗날 고려를 치려했다는 부정적인 부분만 적고 있다. 결국 기황후의 본명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는 점만 확인했다. 아쉽다.


   고려사가 그러한 탓에 <세상을 바꾼 여인들>에도 기황후가 어떻게 공녀로 차출되어 원나라로 가게 되었는지는 나와 있지 않다. 공녀 차출이라는 비극의 역사와 시대상을 적은 기록들을 통해 기황후도 비슷한 길을 걸었을 것으로 유추하고 있다. 이야기는 ‘기씨 소녀’가 연경에 도착한 이후부터 구체적이 된다. 당시 고려 출신 환관들은 황제의 신임을 얻고 권력을 갖는 수단으로 황제를 사로잡을 수 있는 여인들을 물색해 바쳤다고 한다. 기씨 소녀는 고려 출신 환관 고용보의 눈에 띄었고, 고용보는 그녀를 황제 순제의 다과를 내는 궁녀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씨 소녀는 황제의 총애를 얻게 된다. 본격적인 권력 투쟁의 시작이기도 했다.

   첫 번째는 황후 타나시리와 그 일족과의 싸움이다. 타나시리는 기씨 소녀를 질투해 채찍질을 하기도 했단다. 황제는 기씨 소녀를 제2황후로 책봉하려 했고, 이에 타나시리 가문은 아예 황제를 제거하려 했으나 사전에 발각되어 멸문하게 된다. 이후, 황제가 다시 기씨 소녀를 황후 자리에 앉히려 하면서 두 번째 싸움이 시작된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원이 워낙 대제국을 이루었던 나라라 이민족에 대한 배척이 약했을 것이고, 그런 덕에 고려의 공녀 출신 기씨 소녀가 황후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으로 짐작했었다. 헌데, 황후는 몽골족 내부의 옹기라트 가문에서 맞는 것이 칭기즈칸 때부터 내려온 전통이었단다. 그래서, 타나시리 가문을 제거했어도 원나라 분위기는 기씨 소녀를 황후로 받아들일 정도까지 관대하지는 않았고, 결국 황후 자리는 옹기라트 가문의 빠앤후두에게 돌아간다. 그 사이 기씨 소녀는 황자 아유시리다라를 낳아 입지가 더욱 탄탄해졌고, 결국 새 황후와 황후를 지지하는 세력까지 몰아내고 황후 자리에 앉는다. 

   그즈음 원나라는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기근으로 아사자가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었고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을 비롯한 한족들의 봉기가 거셌다. 반면, 순제는 원사에 기록되어 있듯 ‘정사에 태만하였’다. 다른 책에서 본 바로는 순제가 라마교에 심취해 정사를 돌보지 않았고 재정도 파탄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기황후는 자신의 아들 아유시리다라에게 황제 자리를 양위하는 것으로 원나라의 체질개선을 도모했지만 순제가 거세게 반발하자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았다. 결국 순제가 죽고 불과 1년 후 원나라는 연경을 주원장에게 내주고 북쪽으로 쫓겨나 북원을 세웠다가 역사에서 사라진다.      


   책을 읽고 보니 기씨 소녀는 황제의 사랑을 받아 황후에 오른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가 단지 순제의 총애에만 기댔다면 황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권력다툼의 틈바구니에서 진즉에 죽음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원나라의 풍습을 존중하며 현지화 전략을 썼고, 고려 출신들을 주축으로 세력화에 힘썼으며, 한 때 정적이었다 해도 유능한 인재의 경우 중용하여 높이 쓰며 화해의 정치를 표방했다. 실권을 장악한 후에도 멈추지 않고 군사권까지 장악하며 확실한 권력을 손에 넣는 치밀함은 그녀가 사랑꾼이 아니라 지도력과 실행력이 있는 전략가이자 정치가임을 보여준다. 더욱이 기황후는 자신의 권력을 백성을 구휼하는 데 사용한다. 저자는 공녀 출신이기에 백성들의 고초에 누구보다 공감했다고 해석했는데, 나는 '세력화'에는 '민심'도 포함되어 있기에 취한 행동 아니었을까 생각해 봤다.    그럼에도 기근이 나아지지 않자 원나라가 처한 구조적 위기를 감지하고 근본적 체질개선을 위해 순제를 폐하고자 한 것은 해 봄직한 시도였으나 중간에 멈춘 것이 아쉽다. 저자 역시 이것을 실수라고 평하고 있다. 북원 수립 이후 기황후의 아들인 아유시리다라가 황제에 즉위했지만 기황후에 대한 기록은 없다.     


   <세상을 바꾼 여인들>은 역사에서 제대로 조명되지 못한 여인들을 묶어 소개한 책이다. 기황후 챕터는 게 중에서도 분량이 짧다. 기황후에 대한 나의 호기심을 채우기에는 부족하다. 저자는 고려사가 기황후 오라비들의 행위를 부정적으로 기술한 것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쳐 기황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 하며, 기황후의 잘못이 있다면 오라비들 단속을 못한 것이겠다고 풀이하고 있다. 어디나 측근들이 문제다.


   얼마 전, 드라마 <기황후>가 방영될 무렵 역사왜곡 논란이 일었었다. 기황후의 오라비들이 고려에서 벌인 악행과 공민왕이 오라비들을 처형하자 기황후가 공민왕의 폐위를 선언하고 고려를 치기 위해 원나라 군대를 보낸 일을 두고 일어난 비판이었다. 역사를 두고 펼치는 드라마적 상상력이 무한정 허용될 수는 없겠지만, 한편으로는 기황후라는 매력적인 인물에 대한 빈약한 기록이 상상력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녀로 간 기씨 소녀가 원나라 황후가 된 것은 분명 고려에서도 엄청난 일이었을 터다. 헌데, 기황후의 이름조차 기록하지 않고 기황후 가문에 대한 처결의 정당성만을 상세히 기록한 고려사. 작위(作爲)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자꾸만 상상력이 발동한다. 책을 읽고 난 지금도, 고려에서 문하시랑평장사를 지냈다는 기윤숙의 고손녀이자, 총부산랑을 지냈다는 기자오의 딸이자, 온갖 비리와 악행을 저지른 기철, 기원, 기륜, 기주, 기삼만, 기유걸 등등의 누이이자 친척인 ‘기씨 소녀’가 궁금하다. 그녀를 둘러싼 못된 인사들 이야기 말고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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